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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Sandra Cisneros, <The House on Mango Street>

by Jaime Chung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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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Sandra Cisneros, <The House on Mango Street>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 있지 않지만, 이 책은 미국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생들에게 흔히 추천되는 책 중 한 권이다. 국내에는 2003년경 <망고 스트리트>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고 2008년에 개정판이 나왔지만 이제는 둘 다 절판됐다. 제목 그대로 망고가(街)의 한 집에 사는 멕시코계 미국인 소녀의 이야기로, 딱히 무엇을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없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돼 있다. 초중등 학생들에게 권해진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단어 및 표현 수준이 굉장히 쉽고 짧다(대부분이 구어체로 되어 있다). 어린 원어민 학생들뿐 아니라 영어를 배우는 초급 학생들이 읽기에도 괜찮을 정도로 아주 평이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꿈과 희망이 넘치는 ‘전체 이용가’ 이야기냐면, 그렇지 않다. 물론 중간중간에 아이다운 귀여운 에피소드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멕시코계 소녀가 겪는 일은 몹시도 현실적이다. 12살인 이 소녀는 강제로 입맞춤을 당하는 등 성희롱도 자주 접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는지. 게다가 이 망고가가 있는 동네는 무척 가난한 동네라서 ‘5달러만 주면 네 친구가 되어 주겠다’ 하는 아이도 있고,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게으른 아빠를 둔 알리시아(집안에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대학에 가는 똑똑한 소녀!)도 있다. 8학년(미국 기준이니까 만 13세-14세)도 되기 전에 결혼했다는 여자애 이야기도 나온다. 남편이란 자는 제정신인가…

이 책이 인기가 있다 보니 여러 판본이 나와 있는데, 내가 읽은 판본은 저자가 직접 쓴 서문이 앞에 실려 있었다. 이게 또 명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힌다. 저자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읽은 책들에서 자신과 같은 집 또는 공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거기에서 저자는 큰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책에서 쓰이는 언어는 저자가 자라면서 쓴 언어와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이 언어와 반대되는, 가장 ‘시적이지 않은(un-poetic)’ 언어를 골라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한(ugliest)’ 주제를 골라 이야기를 썼다. 자기의 개인적 기억,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섞어서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학문적인 영역 내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기본이 되는 것이 백인 남성의 것이다 보니, 저자는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인 자신의 ‘타자성(otherness)’을 의식하며 소설을 썼다. 소설의 주인공인 소녀 이름이 에스페란자인데 그 에스페란자가 당신 작가 본인이냐고 물으면 저자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말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신, 즉 독자는 에스페란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누구에게나 타자성이 조금은 있어서 에스페란자 같은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책이 쉬운 영어로 쓰였다고 해서 내용까지 동화책처럼 밝고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읽고 나니 왜 이 책을 초등학생, 중학생들에게 추천하는지 알 것 같다. 짧으면서도 간결하게 현실을 잘 보여 주어서 그런 듯. 단순히 ‘영어 원서 독파!’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문학성도 있는 작품도 접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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