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Dolores Claiborne(돌로레스 클레이븐)>(1995)

동명의 스티븐 킹 소설에 기반한 영화. 자기가 일하던 부잣집의 마나님 베라 도너번(주디 파핏 분)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돌로레스 클레이븐(캐시 베이츠 분). 이 소식을 들은 돌로레스의 딸 셀레나(제니퍼 제이슨 리 분)는 뉴욕에서 메인 주의 작은 섬마을, 리틀 톨로 돌아온다. 돌로레스는 딸에게 자신은 베라를 죽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릴 적의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아직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는 셀레나는 이를 믿지 않는데…
원작과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원작은 원작 소설 리뷰에서도 썼듯이, 돌로레스가 세 사람(경찰 두 명, 속기사 한 명) 앞에서 진술을 하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아예 돌로레스의 딸 셀레나를 기자로 만들어서 돌로레스의 사건을 직접 대면하게 한다. 취재는 아니지만, 다른 유명인 또는 사건 사고를 많이 인터뷰해 본 셀레나는 자기 어머니가 무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조(데이빗 스트라탄 분), 그리고 자신의 어릴 적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라고는, 어머니가 크림이 담긴 그릇으로 남편 조의 머리를 때려서 크림이 그의 얼굴과 상체에 뚝뚝 흐르던 장면 정도. 그래서 셀레나의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억세고 폭력적인 아내 앞에서 기도 잘 못 펴는 술꾼 아저씨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원작 소설과 달리 거의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태도로 돌로레스를 대한다. 나는 이게 정말 불편했는데, 두 가지 이유로 그랬다. 첫째, 나는 원작 소설을 읽었으니까 조가 자기 딸내미 셀레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영화 속 셀레나는 기억 못한다고? 둘째,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까지 자기 어머니에게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적대적으로 굴 일인가? 내 안의 K-유교걸은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지. 그게 너무 끔찍한 기억이어서 자기 보호를 위해 뇌가 억지로 그걸 덮어 두려고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어머니를 몰아세워? 떼잉!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이 영화에서 불편했다. 아무 데서나 담배를 뻑뻑 피우고,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것 같은 약물들을 여러 통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술도 마신 후에 그 약을 복용하는(⚠️ 주의: 이러면 절대 안 됩니다! 정신과 약은 술과 같이 먹지 마세요!) 자기 파괴적인, 노이로제가 오기 직전의 위태위태한 상황의 캐릭터. 나는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한 건 보고 싶지 않았다고요… 아니 이미 돌로레스는 남편 조에게 받은 폭력과 가난과 끊임없는 노동 등으로 물든 힘든 세월을 보냈잖아요… 딸내미까지 이렇게 나쁜 년으로 만들기 있냐고요…
어쩌면 그게 이 작품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대사, 이 작품의 핵심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인들, 그러니까 베라, 돌로레스, 그리고 셀레나는 각각 한 번씩 “때로는 나쁜 년이 되는 게 여자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Sometimes, being a bitch, is all a woman has to hang onto.)”라는 대사를 한다. 베라는 자신의 남편과 관련해서, 돌로레스 역시 자기 남편과 관련해서, 그리고 셀레나는 자기 엄마한테 ‘나쁜 년’이 된다. 앞의 두 여인은 이미 세월을 살 만큼 살아 왔고, 남편이 있었기에 가부장제 속에서 ‘나쁜 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셀레나는 ‘남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고(영화 앞부분에 셀레나가 자기를 비롯한 기자들에게 기사를 분배해 주는 편집장과 자는 사이였다는 암시가 나오긴 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기에 돌로레스를 상대로 ‘나쁜 년’이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소개하려고 했는데(쉽지 않았다), 이 점만큼은 확실히 해 두고 싶다. 이 영화는 나쁘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 비한다면 아쉬운 점이 많다. 원래 소설에서는 돌로레스와 조 사이에 아이가 셋 있는데, 첫째 딸 셀리나(같은 이름이지만 소설에서는 ‘셀리나’로 표기) 외에도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은 조 주니어, 막내가 피트. 조 주니어는 아버지와 달리 똑똑하고 착한 아들인데, 후에 정치인이 되었고, 피트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 했으며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했다. 돌로레스의 아이가 셋인지 하나인지 정도는 이야기를 그렇게 크게 바꾸지 않지만, 영화 후반에 나오는 법정 장면 비슷한 것은 정말 원작을 많이 바꾸기에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조사(inquest)하는 자리일 뿐인데 이걸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가 피고를 변호하는 장면처럼 바꾼 게 내 눈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신경이 쇠약하고 어머니에게 적대적이던 셀레나의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게다가 돌로레스가 베라를 진짜로 죽였는지 하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조가 어떻게 죽었나 하는 진실도,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임팩트 없고 긴장감이 원작 소설만 못하다. 어쨌거나 원작 소설이 진짜 최고이니까, 굳이 이 영화를 봐야겠다면 소설을 먼저 읽고 난 후에 볼 것을 권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감상/영화 추천] <Hit Man(히트맨)>(2023) (0) | 2025.12.17 |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Roofman(루프맨)>(2025) (1) | 2025.12.10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Harrigan’s Phone(해리건 씨의 전화기)>(2022) (1) | 2025.12.08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2024) (1) | 2025.12.05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ses(더 로즈: 완벽한 이혼)>(2025) (0) | 2025.12.03 |
| [월말 결산] 2025년 11월에 본 영화들 (1) | 2025.11.26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Prisoners(프리즈너스)>(2013) (0) | 2025.11.03 |
| [월말 결산] 2025년 10월에 본 영화들 (0) | 2025.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