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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Yulin Kuang, <How to End a Love Story>

by Jaime Chung 202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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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Yulin Kuang, <How to End a Love Story>

 

 

드디어 끝냈다! 좋은 평을 많이 들어서 시작한 로맨스 소설인데, 음… 내 개인적 평가를 늘어놓기 전에 일단 간단히 책을 소개하겠다. 이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헬렌 장.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동생 미셸이 그랜트 셰퍼드라는 (헬렌과 동갑인) 남학생의 차 앞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랜트가 고의로 미셸을 살해한 것도 아니고, 미셸이 자기 의지로 그저 운 없었을 뿐인 그랜트의 차 앞에 뛰어들었을 뿐이지만 헬렌의 부모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헬렌은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은 슬픔을 안고 대학에 진학, 글쓰기를 전공하며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바탕으로 한 ‘Ivy Papers’라는 하이틴 시리즈 소설을 써서 대박이 난다. 소설은 이 하이틴 시리즈가 영상물로 만들어지게 되어, 헬렌 본인이 각본 작업에 참여하는데 마침 또 TV 쇼 각본 작업을 해 오던 그랜트가 이 ‘Ive Papers’의 작가 팀에 합류하게 되며 시작한다. 나머지는 다 예상 가능하시듯, 둘은 (정확히는 헬렌이 그랜트에게 거의 일반적으로) 으르렁대다가 사랑에 빠지고,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내가 로맨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독자로서 ‘와, 이 커플 너무너무 귀엽다/예쁘다/사랑스럽다/부럽다’ 같은 긍정적 감정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가야지 작가 또는 로맨스 소설 입장에서 만족스럽고 성공이라는 정도는 알겠다. 그런 점에서 이 로맨스 소설은 나에게 성공은 아니었다. 내가 이 책을 킨들로 읽으면서 88%, 심지어 97%인 시점에서도 ‘아니, 이거 왜 안 끝나?’(심지어 97%였을 때는 정말 딱 한 쪽만 넘어가면 ‘감사의 말’이 나오는, 정말 끝의 끝이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소설에 그렇게 몰입을 못 했는지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둘이 ‘연애 계약’을 맺는 것은 괜찮지만, 그 시점이 내 기준에서 보면 너무 늦었다. 내 동생을 (고의가 아닌 정말 불행히도, 억수로 재수없게, 사고사로 죽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나에게 그렇게 불쾌하거나 이상하거나,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의 아픈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해서,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둘이 이미 으르렁대다가(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랜트는 상대적으로 젠틀하고 예의 바르게 구는데 헬렌이 거의 일방적으로 불쾌하게 굴다가) 사랑에 빠져서 섹스까지 여러 번 하고 난 후에야 헬렌은 ‘아아, 이러면 안 돼. 각본 작업, 프로덕션이 끝나면 다시는 못 볼 사람이야’ 하면서 둘 사이에 ‘각본과 프로덕션이 완전히 끝나 제작사 측에서 헬렌에게 해 준 숙소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는 헤어진다’라는 조건을 내걸기로 한다. 사랑에 빠질 것을, 감정이 깊어질 것을 우려하기에 너희는 이미 몸을 섞어도 여러 번 섞지 않았니? 로맨스라는 장르만큼 보수적인 장르가 없고(왜냐하면 결국 대다수의 독자인 여성이 로맨스에서 원하는 것은 이만큼 사랑받는 ‘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내 위치를 보장받느냐 하는 것이기에), 또 한 ‘유교 걸’ 하는 내가 보기에 이렇게 늦게 ‘연예 계약’을 들이미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섹스하기 전에 해라, 이것아! 이 말을 꺼낸 시점은, 다시 말하지만, 섹스도 여러 번 했고, 각본 작업이 끝나기까지 4주 남은 시점이다. 각본이 완성되면 프로덕션이 시작되지만, 프로덕션은 각본 팀이 전부 다 그 자리에 모이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이 맡은 화를 담당하는 형태라서 예전만큼 상대를 자주 볼 수는 없게 된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진짜 만날 수 있는 건 4주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얘긴데, 학생들 방학도 그것보다는 길다. 내가 보수적이어서 그런가, 이미 섹스도 여러 번 한 시점에서 ‘사랑에 빠질까 두려워’ 운운하는 게 나에겐 우습게 보였다.

 

둘째, 나는 이 둘이 떨어져 있을 때 말 한마디 안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잠시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헤어진다는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울고불고 난리를 피울지언정, 일단 진짜로 헤어지게 되면 미련을 두지 않는 타입이다. 만약에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았다면, 즉각 그 상대에게 읍소한다. 하지만 이 주인공들처럼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상대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헬렌과 그랜트는 여차저차 해서 헤어지지만, 헬렌이 LA에서 뉴욕으로 돌아간 후 기차역에서 만날 뻔하다가, 거기에서 또 4개월가량 지난 후 ‘Ivy Papers’ 드라마의 홍보 시즌이 시작되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 후에야(이것도 막 바로 만나는 건 아니고, 그랜트가 먼저 피하는데 길게 스포일러를 하진 않겠다) 둘 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마침내 이어진다. 이 ‘yearning’(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갈망’이라는 요소)에 대해 말하자면, 남자 쪽이 좀 더 구질구질하다. 그랜트는 그동안 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4개월간 헬렌 생각을 하며 엄청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이게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상대가 그리웠으면 계속 연락을 하든지. 둘 다 연락은 하나도 안 하고, 심지어 이 홍보 시즌이 올 때까지 다른 작가들이 다 있는 그룹챗에서도 말을 안 섞은 듯하다. 그러면 뭐 서로 각자 인생 살면서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다는 건데, 그게 건강한 짓인가 아닌가는 심리 상담사가 아니어도 다 안다. 그리우면 그립다, 다시 잘해 보자, 이렇게 말하는 게 어려워? 나는 4개월이든 6개월이든 그 감정을 그냥 안에만 묵히고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내가 구질구질하고 멍청이 같아 보여도 일단 붙잡으려고 노력은 (헤어짐 선언을 당한 이후 즉각적으로)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깔끔히 포기하는 편이어서 이게 너무너무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왜 말은 안 하는 건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표현을 해야 상대가 알 거 아냐! 이런 걸 로맨스라고 표현하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이런 걸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처럼 그리는 게 정말 맞아? 나 같으면 4개월 후 시점에 이미 ‘그래, 나랑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이지. 하, 사랑했다. 행복해라…’ 할지언정 다시 그 사람과 뭘 어떻게 해 볼 마음은 안 들 거다. 왜냐,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 사람을 붙잡으려 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안 됐다면, 우린 인연이 아닌 거다. 그 사람을 글자 그대로 ‘잊을’ 수는 없어도,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느끼진 않을 거다. 4개월이면 마음 정리하기에 충분한 시간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렇게 말 한마디 안 하고 서로 끙끙 앓고만 있는 게 진짜 건강하고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거 맞아? 이게 로맨스인 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난 로맨스 안 하고 만다.

 

책 끝에 있는 ‘감사의 말’을 보고 알게 된 건데, 저자인 율린 쾅이 에밀리 헨리의 <People We Meet On Vacation>(국내에 번역되어 정발된 버전의 제목은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이다)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어 대충 트레일러를 봤을 때 ‘도대체 왜 이 책을 이렇게 바꿔 놨어?’ 했는데 범인이 너였구나! 애초에 원작부터가 ‘이런 게 친구면 나는 친구 없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긴 했는데(진짜 ‘친구’랑은 안 할 알콩달콩한 짓을 하면서 옘병, 둘만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함) 영화는 그걸 좀 더… 유치한 버전으로 바꿔 놨다는 인상을 받았다. 애초에 원작도 엄청 좋아한 건 아니고, 그냥 ‘TBR(To Be Read,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있던 책 하나를 끝냈다는 느낌이었기에 영화까지 볼 생각은 아니고, 그래서 내가 잘못 생각했더라도 나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율린 쾅 씨는 이거 외에 다른 미드나 영화에도 많이 제작/감독/각본 등에 참여했던데, 그냥 나랑은 안 맞는 분인 듯. 이 책을 드디어 끝내서 정말 너무너무 다행이고, 빨리 다른 재미있는 책으로 넘어가야겠다. 취향에 따라 이 소설에 대한 평이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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