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하나, <금빛 종소리>

김하나 작가가 읽은 고전에 관한 에세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충분히 좋은 책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고전 다섯 권을 시도해 보고 싶거나 다른 이들의 해석이 궁금한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모든 이들을 위한 ‘정답지’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건 꼭 읽어야 한다!’ 하는 책 목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종종 BBC랄지 <가디언> 같은 언론에서 내는 ‘꼭 읽어야 할 고전 500권’ 같은 건 챙겨 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 목록 중 내가 몇 권을 읽었는지, 내가 독서를 고려해 볼 만한 책이 몇 권이나 있는지(그래서 목록이 ‘괜찮은지’ 아닌지)를 세어 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목록에 큰 신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독서란 결국 취향의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의 추천은, 내가 신뢰하는 몇몇의 말이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김하나 작가는 <금빛 종소리>에서 자신이 읽은 고전 중 다섯 권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나도 이에 대해 리뷰를 썼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 의사>까지. 다 좋은 책이겠지만 내 의견은 이렇다. 첫 번째, 일단 나는 로마에 관심이 없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패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뭐 어떻다고요? 옛날옛적 로마(내가 딱히 관심 없는 시대), 그것도 게이 남자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오해는 마시라. 게이가 싫다는 게 아니라, 삶의 어떤 층위에서도 여자를 의미 있는 존재로 두지 않는 여성 배제적 세계관에 내 에너지와 관심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까. 게이라도, 같은 지구를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협력하고 공존하고 살 수 있지 않나. 그런 거에 관심 없는 게이는 나도 관심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무엇을 회상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시대의, 게이, 황제, 이 세 가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도대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을 가졌을까? 내가 이걸 읽을 일은 없을 테니 그걸 알게 될 일도 없겠지.
둘째, 그것을 제외한 네 권은 다 읽었지만, 굳이 이 책들에 대한 남의 생각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저자도 이 책들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한 작품들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겠지. 하지만 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독서 권장 목록’에 그다지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데다가 내 취향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라, 내 취향이 아닌 건 누가 너무 좋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셋째, ‘좋은 책’,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는 것은 취향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고 정치적, 문화적 배경도 영향을 미친다. 그 단적인 예가, 저자가 프롤로그 격인 글에서 지적하듯, <스토너>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내가 여기서 언급한 작가들 — 마르셀 프루스트, 리처드 플래너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찰스 디킨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유진 오닐, 샬럿 브론테, 진 리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앤 K. 롤링 — 은 한 명 빼고 모두 서양인들이다. 그 한 명은 러시아인이며, 영국 작가가 네 명, 미국 작가가 두 명, 나머지는 프랑스, 호주, 아르헨티나 작가들이다. 아마도 내가 책을 읽어 온 취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그 취향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이 작가들 중 영어로 글을 쓴 사람은 열 명 중 일곱 명이다. 사람들은 막연히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책은 그 작품성을 가리려고 해도 드러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처럼 저자의 생전에 혹평을 받은 책이라 해도 후대에 재평가되어 정당한 지위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근래에 나온 이 분야의 인상적인 사례는 존 윌리엄스가 쓴 『스토너』의 운명일 것이다. 196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스토너』는 초판 2000부가 다 팔리지 않았고 소수의 긍정적 평가를 얻었지만 곧 잊혔다. 이 열정적이지만 고요한 분위기의 소설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 묻혀 사실상 사라지는 듯했다. 작가는 삼십 년 뒤인 1994년에 사망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 조금은 뜬금없게도 유럽에서 슬며시 『스토너』가 재조명되기 시작하더니 초판 발간으로부터 사십팔 년이 지난 2013년에야 영국 서점 체인 워터스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유럽에서 얻은 명성이 뒤늦게 미국으로 되돌아갔으며, 《뉴요커 매거진》에서는 이 소설을 소개하며 ‘당신이 들어 보지 못한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헤드라인을 쓰기도 했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한 작품의 가치란 그 안에 내재하는 것인가? 독자들이 읽어 주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는 분명히 가치 있고 잘 쓰였지만, <폭풍의 언덕>이나 <스토너> 비슷하게 이러저러한 ‘어른들의 사정’들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있을 테다. 그렇다면 ‘이 책은 너무너무 대단해요! 꼭 읽어야 해요!’ 하는 말에는 정말로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웬만큼 책을 읽었다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그저 참고서 정도로만 여기고, 오히려 ‘내가 최고로 꼽는 책 다섯 권’ 같은 나만의 독서 철학을 써 보는 것이 어떨까. 나에게는 이 블로그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책을 읽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감상/책 추천] 들개이빨, <진짜진짜최종> (1) | 2026.03.13 |
|---|---|
| [책 감상/책 추천] Yulin Kuang, <How to End a Love Story> (0) | 2026.03.11 |
| [책 감상/책 추천] 어맨다 몬텔, <합리적 망상의 시대> (0) | 2026.03.06 |
| [책 감상/책 추천] 그래디 헨드릭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1) | 2026.03.02 |
| [월말 결산] 2026년 2월에 읽은 책들 (1) | 2026.02.27 |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야구 좀 못해도 내일은 온다> (0) | 2026.02.23 |
| [책 감상/책 추천]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 (0) | 2026.02.20 |
| [책 감상/책 추천]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0) | 2026.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