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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로이스 덩컨,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by Jaime Chung 202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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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로이스 덩컨,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영화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의 원작 소설. 사실 영화는 이 소설에 아주 느슨하게 기반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자세히 서술하기로 하고, 일단 줄거리를 먼저 보자.

 

명문 여대인 스미스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아 놓은 줄리, 줄리의 남자 친구 레이, 뛰어난 외모로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일하는 헬렌, 헬렌의 남자 친구인 잘나가는 운동 선수 배리, 이렇게 네 명의 고등학생들은 어느 날 밤 파티가 끝나고 차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를 타고 있던 한 소년을 차로 친다. 당시 운전대를 잡은 것은 배리. 이 애가 죽기라도 한다면 자기의 운동 선수 생활은 끝장이라는 생각에 그는 차에 탄 친구 셋과 같이 그 자리를 그냥 뜨기로 약속한다. 피해자 아이를 두고 가자니 양심에 걸렸던 레이는 익명으로 911에 전화하지만, 그도 이름을 밝히지는 않는다. 응급차가 도착해 아이는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결국 소년은 사망하고, 이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 이 일 때문에 줄리와 레이는 서서히 멀어지고, 레이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 사건으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줄리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쓰인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영화는 대놓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슬래셔(slasher)이지만 소설은 서스펜스물이다. 다행히 영화만큼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영화는 사실 나도 무서워서 안 봤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게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 책이 정말 오래됐구나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배리가 죽어도 싸다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 포인트 먼저. 이 책이 (영화의 영향도 있고 해서) 꾸준히 인기가 있어서 작가가 개정판을 내놓을 정도로 현재에도 읽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낡았다’라는 느낌을 떨치기가 힘들다.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된 게 1973년이라면 믿으시겠는가. 애초에 1997년에 영화로 만들어질 때만 해도 그 시점에 이미 24년, 약 사반세기나 지난 후였다. 근데 이제 2026년에 이걸 읽으니 정말 꼭 짚어서 뭐라 하기는 어려운데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긴다. 구식 표현, 요즘 사람들이 안 쓰는 말투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은근하게 1970년대의 사고방식이 묻어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배리는 헬렌에게 정착하거나 올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헬렌에게 변명이라고 한 말이, ‘나는 내 아내가 일하는 게 싫어’다. 참고로, 내가 읽은 판본에는 책 뒤에 원작자가 다른 작가랑 한 인터뷰가 딸려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원작자는 그게 당시 기준으로 봐도 낡은 사상, 구차한 변명이라고 밝히긴 했다. 하지만 이거 외에 진짜 께름칙한 건 이거다. 헬렌이랑 같은 아파트에 사는, 헬렌에게 관심을 가진 콜리라는 남자가 헬렌에게 라디오를 켜 보라고 다소 강압적으로 말하는데, 이게 정작 별거 아니지만 되게 가부장적으로 느껴졌다. 고작 뉴스를 듣게 라디오를 켜 보라는 사소한 일을 시키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아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는 분위기가 풍겼고, 또 헬렌이 이를 따랐다는 말에 ‘obediently(고분고분하게, 공손하게)’라는 표현을 써서 정말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남캐가 시키는 일을 여캐가 했다는 사실을 굳이 이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헬렌의 언니인 엘사는 뚱뚱하고 틈만 나면 헬렌을 질투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요즘에 이런 설정으로 소설 쓰면 욕 먹기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낡은’ 언어가 좀 불편했다.

 

두 번째, 배리는 진짜 죽어도 싸다(아쉽게도 죽지는 않지만). 헬렌은 진심으로 배리를 사랑하는데, 배리는 헬렌을 두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배리네 엄마도 ‘아드리맘’ 감성의 소유자다. 배리와 헬렌이 사귀기 시작했을 때 헬렌이 배리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그걸 받은 배리네 엄마가 헬렌에게 “우리 아들은 쫓기는 거 싫어해. 걔가 너한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너에게 전화를 걸겠지(Barry is a boy who doesn’t react well to being chased. If he wants to talk with you, he will do the calling.)” 따위의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한다. 그리고 또 ‘헬렌 같은 몸매를 가진 여자애는 브라라도 해야지(“A girl with a shape like that,” she had said, “might at least wear a bra.”)”라고도 했다. 배리 놈은 또한 헬렌이랑 관계가 깊어지자 부담을 느끼고, 헤어지자고 하고 싶었는데 정작 헤어지자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냥 자기가 먼 데로 진학하면 알아서 관계가 흐지부지될 줄 알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렌이 방송국 리포터가 되어서 잘나가니까 자기도 덩달아 가치가 뛴 것처럼 흐뭇해한다. ‘내가 이 정도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남자야!’ 하는 심리랄까. 이 배리 새끼 때문에 진짜 짜증이 나서 킨들에다 이렇게 메모를 남길 정도였다. “하 씨🦶, 그냥 헬렌 놔줘라 이 🐶씹쌔야!! 이거 호러물 아냐? 난 왜 이걸 읽으면서 공포보다 짜증을 더 느끼고 있는 거야?” 그렇다. 이 소설을 호러가 아니라 고구마로 만든 것은 다 이놈이다. 읽는 내내 배리가 죽기를 바랐는데, 죽지 않아서 무척 안타까웠다. sork 등장인물의 죽음을 이토록 바란 적이 있던가…

 

앞에서도 영화와 소설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원작자는 이 점에 상당히 실망한 듯하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슬래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쾌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줄리와 비슷하게, 로이스 던컨의 딸이 1989년, 정체 불명의 범인에 의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해당한 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나는 폭력적인 죽음이 꽥꽥대고 킥킥대며 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As the mother of a murdered child, I don't find violent death something to squeal and giggle about).”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애초에 책에서는 아무도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차에 치인 불쌍한 피해자 소년만 제외하고).

 

자신의 책이 무척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점에 저자가 속상해하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저자가 자신의 작품이 영화에 어떻게 들어맞을지를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내가 읽은 판본에는 저자가 다른 작가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책과 영화가 다른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저자는 ‘캐릭터와 플롯 기믹(plot gimmick)은 내 것인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서 “심지어 이 이야기의 핵심인 이중신분 반전도 빠졌다(Even the double-identity twist, which was the crux of the story, had been omitted)”고 했다. 나는 여기에서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약간 잃을 뻔했다. 문자 매체와 영상 매체가 다른 게 이해가 안 가시나요? 아니, 작가님.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그거야말로 제일 말이 안 되는데요. 줄리가 데이트해 온 버드라는 남자가 알고 보니 헬렌에게 관심 있는 척하던 콜리라는 남자랑 동일 인물이었다는 반전은 책에서나 통하는 거잖아요! 독자는 작가가 구축한 세상, 인물, 사건 등등에 대해 전적으로 작가의 묘사에 의존하니까, 작가가 말하지 않으면 저자는 절대 모른다. 한 등장인물이, 예를 들어, 금발인지 갈색 머리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시아인인지, 작가가 묘사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독자의 철저한 의존이라는 기본 틀이 있어야만 버드랑 콜리가 사실 동일 인물이었다는 트릭도 성공하는 거 아닌가. 영화였다면 줄리가 만나는 버디가 헬렌이 만나는 콜리랑 똑같은 배우라는 점으로 너무나 쉽게 들통 났을 텐데. 뭐, 버디가 가발 쓰고 콘택트 렌즈 끼고, 마치 슈퍼맨이 평범한 직장인인 클락 켄트인 척하듯 정체를 숨기고 다녔다는 설정으로 연기한다고요? 그럼 더 우스꽝스러워졌을걸. 애초에 소설 내에서도 헬렌이랑 줄리가 버디-콜리에 대해 이야기를 좀 자세히 했다면, 아니면 서로 사진을 보여 줬다면 먹히지도 않았을 이런 반전을 멱살 잡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대단한데요. 영화에서 이 기믹을 어떻게 쓰냐고요! 작가로서, 아니 나 같은 독자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영상물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아실 거 아니에요. 아무리 자기 책이 많이 달라져서 속상하기로서니 말이 안 되는 걸로 우기지는 맙시다.

 

이 책의 번역본이 있었다면 내가 2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걸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었겠지만, 국내에는 이 책 번역본이 없다. 게다가 이 저자의 책은 딱 세 권 번역돼 있는데 전자책은 한 권도 없다. 영화는 보기 무서워서 소설로 읽은 건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는 느낌. 이 작가의 책은 이제 읽을 일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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