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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맹장미, <결혼 탈출>

by Jaime Chung 2026.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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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맹장미, <결혼 탈출>

 

 

요즘은 이혼이 흠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결혼 ‘탈출기’를 써낸 이 저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저자는 원체 독립적이고 당당하며,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페미니스트였다. 당시 남자 친구이던 J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했을 정도로. J는 예상치 못한 그의 고백에 감동하여 그만 눈물을 흘렸다…면 좋았겠지만, 그가 ‘결혼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아니, 결혼에 어울리는 여자가 대체 뭔데?”라는 그의 질문에 J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너라는 사람을 좋아해.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좋아. 그런데 너는 결혼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야. 너는 한국에서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속박되는 걸 못 견딜 거야. 남들 다 하는 일에도 의구심을 가질 거야.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어려워. 그런 사람은 결혼에 맞지 않아.”

요약하면, ‘너 같은 페미니스트는 대한민국에서 결혼해서 못 산다’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떳떳하게 여겨왔고 J도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J가 저렇게 말하는 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J는 이런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그가 좋아하는 나의 특징을 결혼 부적격 사유로 꼽은 것이다.

 

그렇게 그의 청혼은 거절당했으나, 어쨌거나 둘은 결혼했다. “결혼이라는 게 그렇다. 상대가 미적대도 한 사람이 하자고 밀어붙이면 어찌어찌 이루어진다. 나중에 다시 말하기도 하겠지만, 결혼에 이르는 길이 사회적으로 너무도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결혼식까지의 과정은 몹시 순탄했다. 이 사회가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여기로 이렇게 가시면 결혼 완료입니다’ 일사천리의 융단을 깔아두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 같았고 나는 가장 큰 물살을 타고 편안하게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보편적 형태의 식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게 진행했음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의 모부는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마디에 당장 상견례 날짜를 잡았고 상견례 이후 결혼 준비는 가속도가 붙었다. 동성끼리는 그렇게도 어려운 결혼이 이성 부부에게는, 서로에게 확신도 없는 부부에게조차 이토록 쉽다. 결혼에 대한 망설임, 불안, 고민 같은 걸 지속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자, 자, 이럴 시간이 없다고. 어서 일어나 움직여!’ 하고 몰아치듯 떠민다. 거쳐야 할 형식, 과정, 준비가 건건이 마련되어 있고 거기에 쫓기다 보면 어느새 나는 ‘딴-딴-따단-’ 소리를 듣고 있다는 말이다.

동성 커플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결혼이, 서로에게 확신이 없는 이성 커플에게는 이토록 쉽다는 말이 나에겐 가장 큰 충격이었다. ‘정상성’을 요구하는 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성 커플에게도 결혼을 재촉하는구나. 이성 부부이기만 하면, 그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는 건가? 동성 커플들에게도 이 고난을 허하라!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결혼식을 올린 바로 다음 날부터 그는 후회했다고 한다.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고, 여전히 둘은 주말 부부 형태로 살고 있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바뀌었다. 결혼 전에 원래부터 그를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J의 어머니는 결혼 이후 그에게서 ‘며느리’의 역할을 기대했다. “화분이 예쁘다고 사진을 찍어 보면, 화분 옆에 찍힌 식탁 위 반찬 수가 적다는 답변이 왔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우정을 나누던 정⃝⃝이라는 여자는 어디 가고, 시모만 남은 것인가.

 

그는 원래 외식이나 시켜 먹는 음식을 싫어하고, 직접 정성스럽게 제철 재료로 요리해 먹는 걸 좋아했다. “내 자취방 냉장고에 인스턴트 음식 하나 없이 딸기와 두부, 달걀과 봄동 등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것을 본 친구들은 감탄하듯 “야, 너 정말 자신을 사랑하네.” 했다.” 하지만 시모와 어른들은 이 모습을 “가족들을 잘 해 먹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고, 그가 “훌륭한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 실제로 결혼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동네 사람 다 먹일 크기의 반찬통들이 내게 주어졌다. 결혼한 여자인 나는 모두를 먹이고 돌볼 의무를 즉시 떠안았고 그 돌봄의 대상에 나 자신은 없었다. 결혼한 여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식재료를 챙기리라는 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경우의 수인 것 같았다. 그러한 주변의 인식과 달라진 나의 위치를 깨닫자 곧 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모두를 봉양함으로써 ‘칭찬’받되 내가 응당 수행하는 것과 같은 돌봄을 누구에게도, 하물며 자신으로부터도 받을 권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나 큰 인식의 차이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혼자일 때 정성스러운 요리로 스스로를 잘 챙기던 여자도 결혼을 하고 나면 자기 자신은 버리고, 남편과 (만약 있다면) 아이들,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여자를 가전 제품 따위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여자 ‘가전 제품론’은 정말 옳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정말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남편 J에게 있었다. 그가 저지른 짓을 여기에서 내가 다 말하는 것은 저자에게 예의가 아닌 듯하니, 간단히 요약해서 이렇게만 말해 두겠다. 바람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다른 여자를 성추행한 몹쓸 놈이라고. 이 둘 중 한 가지만 일어나도 아내 입장에서는 큰 충격을 받을 텐데, 이 놈은 두 가지를 다 했다. 그러니 결혼 ‘탈출’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제 내게 호기롭게 프러포즈를 하던 때 같은 패기는 없다”는 그는 수월치 않은 이혼 과정 이후, “이혼을 출구 없는 곳으로부터의 절망적인 탈출이 아니라 내 의지로 인한 탈주, 나은 선택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토록 독립적이고 멋지고 강한 여성이 이런 거지 같은 남자를 만나 이 힘든 일을 겪어야 했다니, 정말로 안타깝다. 정말 답은 4B뿐인가. 결혼할 만할 가치가 없는 남자들은 제발 불쌍한 여자들 괴롭히지 말고 그냥 혼자 살다 죽었으면 🙏 비혼 결심을 다지고 싶을 때, 또는 큰 용기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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