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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by Jaime Chung 2026.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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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지음,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내가 사랑하는 정지음 작가(<언러키 스타트업>, <젊은 ADHD의 슬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오색 찬란 실패담>)의 신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이다. 아주 솔직하게 평하자면, 글쓰기에 관해 나름대로 팁을 주고 ‘이렇게 한번 해 보세요’ 하고 제안하는 부분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자신의 경험을 풀어 놓는 부분은 공감할 만하고 재미있다. 그러니까, 1장 ‘우리 모두 글 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와 2장 ‘마음에서 종이까지 이르는 방법’은 약간 옛날 <경찰청 사람들>(근데 이거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에서 실제 형사분들이 어색하게 대사를 치는 걸 보는 느낌이다. 저자가 최선을 다해 글쓰기에 관해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마음은 깊이 느껴진다만, 어째 약간… 연기가 익숙하지 않은 연기자를 보는 것 같달까… 교과서적인 멘트라고 해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건 아니겠으나, 경직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저자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기대했던, 정지음 작가 특유의 현란한 말솜씨도, 다행히, 어디 가지 않았다. ‘무용한 쓰기의 유용함’이라는 꼭지에서 그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아무 말이나 적어댄 노트 이야기를 한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역경이 닥칠 때마다 노트에 뭔가를 휘갈겨댔다. 주로 가족 욕이었는데, 동생을 패서 노예로 삼겠다거나 언니를 예수님 곁으로 보내버리겠다(나는 평생 무교였다)는 식의 부적절한 범행 예고였다. 죄송하지만 부모 욕도 있었고, 아무렇게나 지어낸 꿈결 같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요술공주가 된 정지음, 공룡이 된 정지음, 전투기가 된 정지음… 광기의 콩트 메들리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든 일단은 외동이었다. 엄마는 내 공책을 훔쳐볼 때마다 심란함에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성미가 게걸스러운 둘째 딸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러나 나는 역설적으로 나쁜 말을 적음으로써 나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입으로 나불대는 욕설에는 별다른 카타르시스가 없었다. 가래침 같은 말일수록 뱉고 나면 공허했다. 일회성 배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은 달랐다. 단 한 문장이라도 얼기설기 쓰고 나면 못난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태도를 바꾸곤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때리겠다고 쓰면 때리지 않아도 괜찮아졌고, 복수하겠다고 적고 나면 곧 복수를 잊게 됐다. 나는 교무실의 구경거리가 될 만큼 수학과 영어를 못했는데, 그 사실이 딱히 창피하지도 않았다. 숫자와 알파벳으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한글로는 끝도 없이 긴 얘기를 적을 수 있어서였다.

아니 미친 거 아니에요 정말ㅋㅋㅋㅋㅋ 그래도 이 ‘잡문’들은 저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인격 성숙에 도움이 되어 주었다.

성인이 된 후 자매들과의 사이는 저절로 좋아졌다. 그러나 피붙이들과의 싸움이 끝나자 이제는 세상이 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특히 20대 초중반에는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이 거지 같은 세상은 나한테 왜 이리 요구하는 게 많은지, 저 사람은 어쩌다 저리 미쳐서 남을 괴롭히는지, 나의 상식과 타인의 상식은 왜 이렇게까지 다른지, 왜 나 빼고는 다 마음까지 넉넉한 부자인지… 매순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투성이였다.

그럴 때 확 떠나버리고 싶은 세상에 나를 계속 묶어둔 것도 글이었다. 당시 나는 백지에 울부짖음 같은 말들을 두서없이 쓴 후 찢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쓰는 것보단 찢는 데 더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다. 놀랍게도 쓰기만 할 때보다 쓰고 나서 박박 찢어버릴 때의 쾌감이 열 배는 더 컸다. 갈비뼈 속에 쌓여 있는 비밀들을 좍좍 찢어 버리고 나면 인생과의 전쟁에서 잠정적 휴전을 따낸 것 같은 안도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 짖다시피 지어낸 문장들의 합을 글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글쓰기는 내 삶에서 가장 유효한 마술이었다.

(…)

때론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할 잡문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하는 글이란 없었다. 쓰는 즉시 없애도 나 자신, 단 한 명만큼은 그 글의 주인이자 손님이고 증인이었다. 그때는 글 값이 싸도 너무 싸다는 데서 묘한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글 값이 금값이었다면 그렇게 함부로 쓰지도, 없애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의 무쓸모를 슬픔으로 느꼈을 테고, 결국 아무것도 안 쓰면서 살아가길 택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만 읽는 글은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었다. 나조차 나를 혐오할 때도, 온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을 때도, 흰 종이만큼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내가 토해내는 사소한 불평불만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백지와 대화하며 삶을 정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니 글 값은 싸도 글이 주는 가르침은 비싼 셈이다.

아니, 바로 앞에서 이렇게 웃기다가 갑자기 또 이렇게 진지한 통찰로 감동을 준다고요? 온탕 냉탕 왔다 갔다 하는 이 재미가 바로 정지음 작가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비슷한 사례로, ‘눕기의 미덕’도 있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려니 도저히 작업이 안 됐는데, 아예 누워서 글을 쓰니 마음이 편해져서 글이 더 잘 나온다는 얘기다. 이 꼭지도 아주 자연스럽게 웃음에서 통찰과 감동으로 흐른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에도 교실에선 잠만 잤다. 뒷자리 친구가 내게 마취총을 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10대 때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어른들이 나를 학습시키기 위해 책상머리에 봉인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갑자기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앉히지 말고 눕혔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래도 잠이 들었겠지만, 잠에서 깨어난 후엔 뭐라도 깨우쳤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베개와 이불에 파묻힌 채 휴대폰 메모장을 켜니 그동안 틈틈이 써 놓았던 단발성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다. 책상에서 궁리할 땐 막혀 있던 생각들이, 누워서 바라보자 저절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결 풀어진 몸을 따라 문장들도 저마다의 길을 찾는 것 같았다.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라는 심리적 압박감이 사라진 덕분인 듯했다. 마음이 편해지니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아마도 나의 효율성은 긴장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높아지는 모양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누워 있으면 허리는 편했지만, 목과 어깨, 팔은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뻣뻣해졌다. 휴대폰 화면을 계속 응시하기 위해 턱살을 겹치고 있자면 목주름이 생기는 느낌과 함께 자괴감도 느껴졌다. 게다가 누워 있으면… 자주 잠이 들었다. 창작과 낮잠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못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단점들은 1시간마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는 식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종이책 기준) 268쪽이라 그렇게 얇은 책은 아니인데 재미있어서 짧게 느껴진다. 웃으면서 읽다 보면 ‘국어 사전을 가까이 하고 의식적으로 다양한 표현을 쓰려고 노력해 보자’이나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쓰면서 결국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 것인지 나에 대해 알게 된다’ 같은, 내 글쓰기 세계를 넓혀 주는 작은 조언들을 접할 수 있다. 글쓰기가 업이 아닌 사람이더라도 즐겁게 읽고 한두 가지 정도는 배워 갈 것이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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