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에리카 산체스,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멕시코계 미국인 유색 인종 여성 작가의 전기적 에세이. 이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정말 글쓰기에는 ‘쓰지 말아야 할’ 한계나 남들이 ‘읽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금기 따위는 없다는 진실을 실감한다. 이 에세이는 전반적으로 저자의 전기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솔직하고 대담하다.
<Crying in the Bathroom: A Memoir(화장실에서 울기: 회고록)>라는 원제의 책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이라는 제목과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게 되었다. 국내 제목만 보면 고통으로 망가지는 영혼들의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이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저자는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 젊은 유색인 여성, 양극성 장애 환자라는 세 가지 짐을 졌지만 그것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서 힘을 찾는다.
내가 제일 좋아한 꼭지는, (‘나의 질이 망가졌던 해’라는 대담한 제목의 질 이야기 후에 나오는) ‘광대 되기’이다. 저자는 이 장을 통째로 유머와 웃음이라는 주제에 할애하는데, 여기에서 저자의 유머관이 드러난다. 외모를 가지고 별명을 짓는 멕시코인의 문화는 내가 접한 ‘백인 미국인’들의 문화와 상당히 다르지만, 그 직설적임이 신선하고 적어도 뒤에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쿨함이 있다.
멕시코식 유머 중에는 개인의 신체적 외양을 잔인할 정도로 관찰한 내용이 많다. 외부인에게는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농담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척하지 않는 우리의 솔직함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내숭을 떨 만한 인내심이 없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백인은 불편한 상대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멕시코인이라면 면전에다 욕을 해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 내 뒤에서 흉을 보는 것보다 내게 직접 표현하기를 더 바란다. (내 앞에서 말하라고, 수전.) 만약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사람이 있다면 멕시코인은 하나같이 그 사람을 대머리, ‘뺄론pelon’이라고 부를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게 삼촌의 이름인 줄 알았다. 머리가 벗겨졌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살이고 그 말이 애칭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나는 멕시코에 자주 갔었는데, 한번은 별명이 ‘말 헤초mal hecho’인 남자애가 있었다. 말 그대로 ‘모자란 녀석’이라는 뜻이다. 당사자는 그 별명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바가지머리에 몸집이 작고 통통한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언젠가는 마을 사람 중에 ‘고두라스goduras(’뚱보’의 복수형이다!)’라고 불리는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 역시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 별명을 얻었고 마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멕시코에 갔을 때 고모가 내게 ‘라 쿨파la culpa(여성형으로 실수, 죄를 뜻한다)’라 불리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왜 그분을 라 쿨파라고 부른대요, 고모?” 내가 물으니 고모가 이렇게 설명했다. “왜냐면 아무도 그 여자를 가지려 하지 않거든!” 나는 하마터면 마시던 걸 뿜을 뻔했다. 대단한 언어유희였다. 냉소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이 멕시코인의 감각이다. (멕시코의 부자들도 이런 감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멕시코의 상류층 문화는 내게 타지키스탄 문화만큼이나 낯설기 때문이다.)
멕시코인, 즉 유색 인종이라는 저자의 정체성은 그의 유머 감각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나 나처럼 유색 인종들은 인종에 관한 농담을 백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차별 받는 유색 인종인 것도 서러운데, 유색 인종인 데에도 뭔가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내 직업 영역에서 드문 유색인이자 유일한 멕시코인일 때가 많아졌다. 나의 유머는 수많은 코미디언이 그러하듯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들이 그렇게나 대책 없는 인간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인종 관련 농담을 즐겨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심지어 인종에 관해 아무 문제 없는 언급만 해도 움찔대는 백인 앞에서 그런 농담 하길 좋아한다는 것도. 불편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게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나와 함께 일하던 어느 백인 남성이 별 뜻 없이 흑인 동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내가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아, 그러니까 그 흑인black 남자분 말인가요?”라고 방어적인 태도로 묻자 사색이 되어서는 이 구체적인 표현을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 자기의 노력이 들통난 데 대해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인사부에 보고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영 몹쓸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억압을 극복하고 심리적 압박을 해소하며 억눌린 공포와 욕구를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내가 백인들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게 이 때문일까?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 걸까? 이게 내가 이토록 인종차별적인 사회에서 유색인으로 사는 게 어떤 느낌인지 표현하는 방법인 걸까? 저질스러운 나의 농담에 대해 프로이트는 어떻게 이야기할까? 내가 저질스러운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걸까? #생각중
아래 인용문은 이 회고록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여성도 웃길 수 있는가?’ 당연한 거 아니야? 이걸 질문해야 알아? 내가 보고 자란 코미디 쇼에 나온 그 여자 코미디언들은 그럼 다 뭔데?
정말로 지긋지긋한 게 뭔지 아는가? 여자도 웃길 수 있느냐는 논쟁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여자들은 정말 웃긴데. 남자들이 우리의 유머를 재밌어하느냐는 별개의 이야기다. 이 끔찍한 여성혐오의 세계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웃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뭐든 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나의 솔직함과 유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여성인 내가 불손하거나 웃기는 인간이어도 괜찮은지에 관한 인식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코미디는 공격적이고 남성적이며 위협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이 웃기는 역할을 맡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똑똑하게 구는 것, ‘부적절한’ 일을 들먹이는 것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섹스나 신체의 기능에 관해 떠들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이런 성향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모든 여성이 이런 걸 즐기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유머 감각을 지닌 남성도 넘쳐난다. 성별은 유머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
(…)
그러나 자주 인용되는, 유머가 여성을 덜 위협적이고 사회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의견은 어떻게 된 걸까? 남자들은 왜 웃기는 여자를 무시하거나 두려워할까?
세계적인 투덜이이자 지성인으로 유명한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여성이 웃기지 않는 것은 남성이 웃긴 여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원성을 산 바 있다. 우리의 지성을 마주하면 남자들은 오줌을 지리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히친스는 일부 괜찮은 여성 코미디언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은 “거구이거나 사내 같거나 유대인이거나, 이 세 가지 면모를 두루”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명복을 빈다만, 정말 개소리가 아닐 수 없다. 어찌나 지루하고 멍청한지 분노에 잠겨 기절할 때까지 비스킷이나 집어 먹고 싶을 정도다. 코미디계에서 여성이 과소평가를 받는 이유는 내가 ‘혐오와 성차별로 보낸 수천 년’이라 부르는 것에 있다고 보는 편이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가 뭘 알겠나? 나는 한낱 멕시코인 여자일 뿐인데.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일 공감한 건 이 부분이었다. 내가 생긴 것은 만만해 보일지 몰라도 말투는 거칠기 때문이다. 이런 데서 저자와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다니…!
사람들은 자주 내 거친 말투에 놀란다. 조용히 아이를 돌보거나 집을 청소해야 할 것처럼 생긴 조그만 유색인 여성이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게 충격을 받는 듯하다. 나는 대체로 친절한 편이지만 입은 아주 더럽다. 말끝마다 “망할”이 붙는다. 꼭지가 돌면 사나운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늘 ‘성숙한 인간the bigger person’이 되는 게 어려웠다. (아니, 왜 그래야 해? 으엑.)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회고록이라 젊은 시절의 혼란스러움과 방황도 있고, 임신 중절 사건, 그리고 정말 나중에 진짜로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어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경험까지 모든 게 다 있다. 마지막은 거의 저자의 딸에게 바치는 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회고록이라 그런지 진짜 십 몇 년쯤 되는 기간을 저자와 함께 여행한 기분. 제목 때문에 너무 슬프고 어둡고 괴로운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 유색 인종 여성 작가의 삶에 한번 관심을 가져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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