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희정, <죽은 다음>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 대신 인생을 살아 줄 수 없고, 결국엔 내가 아닌 타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어떨까? 우리가 죽으면, 그때도 혼자일까? 노련한 인터뷰어로 많은 이들을 인터뷰해 논픽션을 써 온 작가 희정이 이번에는 장례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뿐 아니라, 본인도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노동하면서 직접 경험해 보았다. 그래서 더욱 생생할 뿐 아니라 통찰도 깊다. 아래 인용문들이 내가 방금 언급한, 죽음은 혼자일 수 없다는 통찰을 보여 준다.
그러니 사람은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다음 날 출근을 하고, 메일을 열어 거래처와 일정 조율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주말에는 요양원을 찾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유언이라는 걸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내가 죽음에 관해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혼자 죽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뜻하는 한자 ‘사(死)’는 ‘부서진 뼈 알(歹)’ 자와 ‘사람 인(人)’ 자를 합쳐 만든 글자이다. 백골이 된 시신 앞에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이다. 죽는 이 옆에는 사람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살았거나 임종을 지킨 이가 없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최초의 누군가가 주검 위에 흙을 덮은 순간부터 죽음은 1인칭이 아니었다. 죽음만큼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다.
시신은 수습되어야 하고, 죽은 이의 신변은 정리되어야 하며, 그 죽음은 알려지고 애도받아야 한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다. 사람의 몫이라는 건 노동을 의미한다. 손과 발, 눈과 입, 관절과 오장육부, 모든 것을 동원해 처리하고 정리하고 기억한다. 그 노동이 집중되는 시공간은 장례이다.
이 책은 특히 실용적이기도 한데, 3장 ‘성복(고인의 친족들이 정해진 상복으로 갈아입는 상례의 절차)’이 그러하다. 저자는 이렇게 의도를 밝혔다.
이번 장은 얼마 전의 나처럼 장례식장과 상조업체*의 차이조차 모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꽤나 실용적인 내용이다. 당신이 남은 이로서 장례를 치를 때 더 빛을 발할 실용성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운이 좋다면 우아하게 죽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우아하게 장례를 치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임종과 죽어가는 이의 곁을 지키는 임종은, 단어만 같지 전혀 다른 일이다. 장례는 움직이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계산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그 일이 무서웠다. 판단 하나하나에 돈이 따라붙는데, 그 결과는 금전적 손해를 넘어 감정적 치달음으로 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내 돈 쓰고도 이토록 뭔지 모르겠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평생 겪지 않고 모른 채 지나치고 싶지만, 생명은 유한하기에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하나 알아가기로 했다.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저자는 장례를 치러야 하는 사별자가 장례식장에 가기까지 무엇을 처리해야 하는지, 또 빈소를 마련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문을 받으면서는 또 무슨 일이 사별자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주 잘 설명했다. 사망진단서 없이 장례를 시작할 수 없다는 거 아셨는지? 고인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면 병원 원무과에서 이를 발급해 줄 것이고(앞으로 사망진단서가 필요한 곳이 많으므로 미리 여러 장을 받아 두자), 고인이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는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시체검안서를 떼어야 한다. 그가 의료 시설에서 죽지 않았기에 검안의를 통해 ‘사망’을 증명하는 절차라고 한다.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를 발급받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기억하시라.
사망진단서(또는 시체검안서)를 발급받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주소지를 확인하자. 고인의 주민등록상 주소를 써야 한다. 돌아가신 장소를 쓰면 안 된다. 주소를 잘못 기재할 경우, 화장장 예약에 차질을 빚게 된다. 화장장이 설치된 지역의 관내 거주민 할인도 놓칠 수 있다. 당신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가 지자체와 국토부, 보건복지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국가의 인구 기초 단위라는 걸 확인한다. 경찰 공권력을 만나게 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자. 돌연사의 경우 고인을 부검해야 할 수도 있다.
고인이 사망한 장소를 쓰는 게 아니라니… 인간의 죽음까지도 행정적인 문제가 될 수 있구나. 이런 걸 어디 가서 배워서 준비하겠느냐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미리 알아 둘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실용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가 여성 장례지도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이라 상주가 될 수 없었던 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한 ‘정상 가족’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국가를 비판한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여자니까 이 일을 잘 할 수 없을 거라고? 여자니까 무조건 상복으로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고인의 직계 가족이 아니니까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장례 문화가 필요하다. 전통이라는 건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으니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자로서, 우리는 살면서 죽음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죽을 때까지는 혼자일지 몰라도, 죽고 나서는 우리는 절대 혼자이지 않을 것이니,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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