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원도, <죽지 마, 소슬지>

<아무튼, 언니>와 <경찰관속으로>로 내 눈물을 쏙 빼놓고 <농협 본점 앞에서 만나>로는 나를 배꼽 빠질 정도로 웃게 만든 원도 작가의 신작. 전작 <파출소를 구원하라>에 이어 이번에도 주인공은 경찰이다. 경찰 변하주는 변사 현장에 감식을 나갔다가 돌아와 집에서 자고 있었다. 그러다 깨어 보니 제 눈앞에 어떤 반투명한 여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소슬지. 공교롭게도 하주가 고작 몇 시간 전에 현장 감식을 마친 그 변사자였다. 이런 줄거리를 기가 막히게 요약한 본문 표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퇴근 후 집에서 자다 깨보니 눈앞에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표현해 봐도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 제목 같았다. 심지어 생면부지의 귀신도 아니고 죽음의 행정 처리를 밟아준… 구면이라 하기도 애매한 사이.
그렇게 해서, 변하주는 소슬지가 ‘성불’(이든 뭐든 어쨌든 빨리 자기 집에서 나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돕게 되는데…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아, 그러면 둘은 티격태격 하다가도 결국 소슬지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아 왔음을 깨닫고 소슬지가 성불하겠구나’ 하고 대충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뭐, 별로 틀리지 않은 말이다.
개인적으로 줄거리가 막 엄청 특이하거나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 있어야만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왜 원도 작가의 이번 소설이 나에게 딱히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자꾸 똥 애기를 해서? 변하주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이고, 소슬지도 죽음 이후, 즉 귀신이 된 이후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은 하주의 똥 냄새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항문기적인 거 안 좋아해요… 나는 이런 거 질색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어쨌거나 딱히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이 별로였던 건 아니다. 사실 나쁘지는 않았는데, 내가 워낙에 원도 작가의 에세이로 그를 처음 접했고, 거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상대적으로 그의 소설에서는 그만큼 강렬한 느낌을 못 받는 것 같다. 아, 진짜 내가 처음 접한 세 권이 개쩔었는데… 소설도 좋지만 나는 원도 작가의 솔직한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꾸준히 원도 작가를 응원하련다. 제발 다음에는 에세이를 써 주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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