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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은경, <아무튼, 명상>

by Jaime Chung 202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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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은경, <아무튼, 명상>

 

 

<아무튼> 시리즈 신작. 이번에는 명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상에 입문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저자는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었는데(심지어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으로 잘 알려진 광고업에서 일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명상과의 만남은 이러했다. 저자는 모 브랜드의 담당자 때문에 정신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대표님이 그 브랜드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그 무렵, 지치고 힘든 저자를 본 상무님이 회사 옆 요가원의 열흘짜리 체험권을 슬쩍 챙겨 준다. 그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점심시간에 진행되는 명상 수업을 듣기로 한다. 명상 선생님은 늘 짧은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은 ‘열차를 놓쳐서 수업에 늦을 뻔했다. 그 순간에 내가 초조해하는 걸 알아차렸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며 올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도착했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단다.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내게 감정은 늘 ‘당하는’ 것, 그래서 마음은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었다. 세상과 타인 그리고 사건이 내게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우울을 안겨주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때 내 안에 두 개의 씨앗이 심겼다. 하나는 나도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다른 하나는 회복의 단초가 될지도 모르는 명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사랑이 시작되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사랑은 상대를 알고 싶은 호기심과 그에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 시작되니까.

그날 이후 명상 수업에서 잠들지 않고 안내를 따라가보려고 애썼다고.

 

명상이라고 하면 다들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가부좌를 틀고(사실 명상할 때 꼭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다. 무릎에 안 좋아요) 눈을 감고 있으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고요하기는커녕 소란하기만 하다. 저자는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인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최신 기술과 신경과학의 발전은 이 원숭이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뇌 영상에서 우리가 휴식할 때 작동하는 신경망을 발견한 것이다. 이 신경망은 특정한 작업을 수행할 때는 활동이 줄어들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발하게 켜졌다. 연구자들은 이 흥미로운 부위에 ‘기본모드신경망(DMN, 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쉬는 동안 더 바삐 움직이는 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봤더니 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과거를 돌려 보거나 미래의 일을 걱정하거나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일들 말이다. 내가 명상 시간에 오늘 수업에 온 것을 ‘후회’하고 남과 ‘비교’하고 명상이 맞지 않는다고 ‘자책’하는 것처럼 마음은 끊임없이 나라는 이야기를 만들고, 붙잡고, 다시 써내려가고 있었다.

DMN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 신경망 덕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배움을 얻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멍 때리는 순간에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것도 이 DMN 덕분이다. 다만, 문제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DMN이 과도하게 활성화될 때다. 뇌는 지금이 위험 상황이라고 판단해 과거를 곱씹으며 단서를 찾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더 나은 대책을 세우려고 한다. 뇌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나를 보호하려는 행위다. 하지만 이 과정은 오히려 현재의 나를 더 불안하고 지치게 만든다.

(…)

아무것도 안 하면 뭐가 되냐고 조급한 마음이 올라오지만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바로 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시간’이었다. 해결하고 움직이려는 것을 멈추고 그저 존재로 머물러보는 일. 그것을 두고 행위 모드(Doing mode)에서 존재 모드(Being mode)로 전환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불안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생각을 불안한 채로 있게 두는 것,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당장 답을 알 수 없는 일은 그저 모른 채로 놓아둘 줄 아는 힘. 그런 힘을 기르는 것이 명상이 하는 일이었다.

이 행위가 역설적으로 불안과 스트레스의 강도를 낮춰주고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는 것 역시 신경과학이 증명했다. 꾸준한 명상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DMN을 안정시키고 뇌에서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영역을 강화한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 여행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으로 더 잘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명상이나 마음챙김 같은 류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게 ‘그거 그냥 정신 승리 아니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렇게 보려면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을 구분해야 생각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 보자. 저자는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남편은 전우였지만 서로 다른 형태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무리 함께하려 애써도 육아의 무게 추는 언제나 내 쪽으로 기울었다.”라고 썼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매일을 전쟁같이 살았는데, “아이의 울음을 쉬이 잠재우는 건 익숙한 엄마 냄새, 엄마의 품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대학원 1학기 수업은 어찌어찌 마쳤지만, 출산이 겹쳐 2학기는 휴학계를 제출해야 했다. 남편이 일주일짜리 출장을 떠난 어느 새벽, 아기는 밤잠을 좀처럼 길게 자지 못하고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깼다. 저자는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분노는 그라데이션으로 커졌다. 그 끝에 미움과 원망이 자라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법문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내 마음의 위치뿐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자 분노의 불씨에 바람을 불어 점점 불덩이를 키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울음을 멈추고 자리를 다시 수습한 뒤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뀌고, 어깨 위로 기댄 아이의 몸이 무거워졌다. 깊은 잠에 든 것 같았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붉은색과 푸른색이 겹친 새벽 하늘이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새근새근 소리와, 품에 안긴 아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때 내게 남아 있는 마음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상황은 똑같았다. 남편은 없고, 몸은 여전히 힘들었다. 바뀐 것은 내 마음 하나였는데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 법문을 많이 듣고, 연습해보기로 했다. 법문을 듣는 건 내 안에 씨앗을 심는 일이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싹을 틔워냈다. SNS를 보다 부러움에 휩싸일 때 “질투는 보리심(깨달은 마음)을 연습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라는 가르침을 떠올렸다. 물론 그보다 질투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직시하는 게 먼저였다. 그냥 무시해버리고 싶은 감정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의 실체를 확인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선원장 스님이 떠올랐다. 삶을 어떻게 명상으로 만들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수행일지를 내밀며 법문과 명상을 권하셨던 모습이.

내가 이걸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남편은 일주일이나 출장을 떠났는데 왜 내(저자 입장에 처한 상황이라 가정하고)가 혼자 애를 돌봐야 해?’였다. 나라면 이게 얼마나 공평하지 못한 일이고, 여성이 육아에 자신을 갈아넣도록 요구되는지 분노를 표현할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라고 목이 터져라 외칠 것이다(실제로 이 저자의 남편분이 육아에 얼마나 참여하는지는 여기에서 우리가 다루는 ‘그래서 명상이 정신 승리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니 따지지 말자. 이 일을 그냥 예시로만 생각해 주기를).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여자들이 육아와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과도하게 많은 일을 떠맡는 것도 사실이다. 내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당장 이 상황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그런다고 갑자기 남편이 출장에서 뿅 하고 돌아와 애를 봐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이게 문제 아닌가. 저자처럼 이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돌보며 분노를 잠재우고 아름다운 새벽 하늘을 감상하며 깨달음의 기회로 쓰는 게 지혜롭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개인의 책임, 개인의 태도 변화로 고칠 수는 없다. 빈부 격차라든지 남녀 차별 같은 문제는 분명히 사회적이고 공적이며 제도적인 문제다. 그건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는 좀 더 구분하기가 어렵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도 이혼하지 못하겠다는 아내, 이런 건 근본적으로 여성 혐오적인 사회에서 기원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서 사회적 문제라고 봐야 하나? 글쎄,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문제 아닌가 싶다. 약간 곁다리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고민을 법륜 스님이 많이 듣는 것 같은데, 그분은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라고 법문하시기 때문에 정신 승리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분은 스님이시니까 아무렴 개인적인 면에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을 해 주시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나. 같은 질문을 변호사에게 했다면 이혼을 강력하게 권하며 자기 명함이라도 건네주겠지… 여튼 이 둘을 잘 구분하는 게 지혜가 아닐까.

 

저자는 여러 가지 명상 기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명상의 역사 등도 조금씩 알려 준다. 명상을 본격적으로 하는 이들이 보면 ‘이런 기초적인 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한 가지 주제에만 다루는, 짧고 얇은 <아무튼> 시리즈다. 아주 깊지는 않아도 명상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이 보기엔 적당하지 않나 싶다. 일단 해 보고 좋으면 각자 알아서 명상에 대해 더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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