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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릴리아 아센, <파노라마>

by Jaime Chung 2026.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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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릴리아 아센, <파노라마>

 

 

2050년쯤, 프랑스인들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비밀과 사생활을 가능케 하는 불투명한 벽을 싹 다 없애고 투명한 건물들을 지어 살게 된다는 미친 설정으로 시작하는 소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언어의 위로>를 쓴 곽미성이 번역했다. 솔직히 이분 덕분에 알게 되고 읽은 책인데, 음, 결론부터 놓고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얼처구니없이 과감한 설정이 흥미를 돋우긴 했으나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그래서 범인이 누구고 사연이 어떻게 된 건지 별로 안 궁금할 정도로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줄거리를 좀 풀어 보자면 이렇다. 2029년, 쥘리앙 곰스라는 인플루언서가 어릴 적 자기를 성폭행한 삼촌에 대한 진실을 폭로한다. 그는 삼촌이 어린 자신을 성폭행함으로써 자기 삶을 짓밟았다며, 삼촌 목에 칼을 꽂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가 체포된 후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며 석방을 청원한다. ‘리벤지 위크’, 즉 ‘복수 주간’이라는 의미의 해시태그가 퍼져 나가며, 범죄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경찰과 적법한 권력에 의해 처벌되지 않았던 “쓰레기들”이 제거된다. 이 움직임이 얼마나 크고 충격적인지, 심지어 프랑스 대통령도 권좌를 버리고 도망칠 정도였다. 이때 가브리엘 보카라는 변호사에 의해 ‘투명화시민운동’이 발족된다. 복수 주간 동안 자신의 가해자를 처벌한 피해자들에게 죄를 묻지 않고, 이 동안에 일어난 모든 범죄 행위를 사면한다는 내용의 특별법도 제안한다. 24시간도 되지 않아 그 청원에 300만 명이 서명한다. 투명화시민운동은 정부의 운영에도 영향을 끼친다. 행정부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고, 사법부는 해체된다. 투명화시민운동의 핵신 인물인 건축가 빅토르 주아네는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다시 말해 벽으로 가려진 곳”에서 폭력이 시작된다며, “공공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사생활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다. 그리고 정말로 20년 사이에 프랑스인들은 투명한 유리로 된 집에 살게 된다.

이런 개미친 설정이 종이책으로 치자면 한 20쪽만에 모두 간략하게 설명되고,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 이런 ‘투명화’ 시대에 사는 루아예뒤마 가족의 행방 불명이다. 아니, 이렇게 급진적인 설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는데 어떻게 정신을 차립니까. 그래서 소설의 초반은 무척 흥미롭다. 서술자는 경찰인 프랑스 여성인데, 투명화에 따른 변화들을 고스란히 체감하고 있다. 공적인 면에서 보면 이제 범죄가 많이 줄어들어서 경찰이 가졌던 권한은 ‘안전관리인’이라는 명칭 변화와 함께 줄어들었다. 사적인 면에서 그는 불륜을 하던 남편 다비드가 (투명화로 인해) 더 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게 되었으므로 애정 없고 냉랭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이 부유한 지역에서 그는 어떻게 이 사건을 조사할 것인가.

 

이 소설은 범죄 소설이고 사회 소설이자 ‘폭력, 범죄가 제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 실험이기도 하다. 근데 그게 성공적이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요. 물론 폭력이나 범죄는 인간의 본성이기에 (어느 정도 억제는 할 수 있을지라도) 100% 제거될 수 없으리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 실험을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텐데, 내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중간부터 흥미를 잃었다. 오랫동안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을 끝냈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게 정말 재미있고 개쩌는 스릴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취향은 다른 거니까. 알라딘이나 교보 문고 같은 온라인 서점에는 오직 종이책만 있는데 밀리의 서재에서는 전자책도 제공하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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