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아마 <파과>로 가장 잘 알려진 구병모 작가의 이 소설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그의 작품이다. <파과>보다 한참 전에 <위저드 베이커리>로 이름을 알린 이 작가의 작품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처음엔 이름만 보고 남자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이는 ‘곽두팔’풍의 필명일 뿐이고 여자 작가분이시라고. 안-심.
나는 이 소설을 국내 매체가 아닌 뉴욕타임스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됐는데(놀랍게도 이 리뷰는 <외계인 자서전>의 작가인 마리 헐린-버티노가 썼다!), 처음엔 ‘이게 벌써 번역이 되어 해외에 알려졌다고? 얼마나 좋기에?’라는 생각이었다. <네 이웃의 식탁>의 영어판 제목은 <Apartment Women>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공동주택으로, 최소한 아이 셋을 낳을 것을 약속한 젊은 부부들만 받는 곳이다. 이곳에 입주한 네 부부는 이렇다. 단희는 싹싹하다고 할까, 사회가 요구하는 ‘인싸’다움이 아주 최고치에 오른 듯한 여성으로, 이곳의 리더 격이다. 단희의 남편 재강은 차가 접촉 사고로 인해 수리를 받는 동안 요진과 카풀을 하게 된다. 요진은 영화 각본을 쓰는 남편 은오가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동안 친척 언니네 약국에서 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 교원은 남편 여산과 어느 날 밤 부부 싸움을 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윗집, 아랫집 주변에 다 들렸을 정도다. 효내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밤을 새워 작업하느라 이곳 부부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에 자주 불참할 수밖에 없다. 효내의 남편 상낙은 그를 대신해 회의에 나간다. 이 네 부부들은 단희의 제안으로 ‘공동 육아’를 시작한다. 과연 이 꿈 같은, 미래 세대를 위한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주인공이 네 쌍의 부부라 이름이 좀 헷갈리긴 했지만(아이들도 나오는데 그것까지 세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져서 아이들 이름은 내 기억에서 삭제했다. 그냥 나올 때마다 맥락을 따라 눈치껏 이해했다.) 무척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과연 현대 사회에서 공동 육아라는 게 가능할까?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들을 한곳에 몰아놓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저들끼리 놀면서 저절로 크는 게 아니지 않나. 필수적으로 이 아이들을 돌보고 감독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리고 사실 이런 과정에서 제일 힘든 건 인간관계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친해지는 관계도 관계인데, 그나마 얘네들은 어리니까 대충 어르고 달래기가 된다고 해도, 성인과 성인인 부모들끼리의 관계는 더욱 복잡할 것이다.
내가 제일 놀란 것이 그 복잡한 관계를 섬세하게 잡아낸 작가의 능력이었다. 이런 게 번역을 통해 잘 전달될까 싶을 정도로(위에 언급한 리뷰를 보면 다행히 잘 전달된 것 같다) 아주 미묘한 순간들이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조효내는 그만한 걸 못 챙겼다. 붙임성이 없다든지 사근사근한 성격이 아니라든지 같은 기본적 성향과는 다른 문제로, 못하는 게 아니라 성의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홍삼이나 건강식품을 취급하는 업자라면 비타민 한 통 정도 내밀 수 있었고, 받는 입장에서도 그것의 소매가가 만만치 않으리라 짐작하는 만큼 상식 있는 자라면 두 번째부터는 반기기보다는 극구 마다하며 마음만 간직하게 마련이었다. 조효내의 경우는 자기가 삽화를 넣었다는 그림책 한 권 주위에 돌리는 법이 없었다. 그녀 말로는 썩 알 만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책이 아니라 민망하기도 하고, 박스 세트로 움직이는 전집에서 자신이 참여한 낱권만 따로 빼 오기 어렵다는 이유였으나, 비슷한 또래의 이웃 아이들에게 그림책 한두 권 건네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필할 수도 있고 그만큼 일상에서 배려를 받을 가능성도 높아지는 법인데 그만한 수고를 들일 줄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관절과 같은 것이라 활액이 없이는 삐걱거리며, 그에 따른 통증과 불편을 실제로 느끼고 감당하는 쪽이 으레 따로 있다는 게 단희의 주된 불만이었다. 어디까지나 뭔가 인사를 못 얻어서가 아니라 공동주택에 살면서 그 정도가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라고 단희는 믿었다.
이도 저도 사정이 안 되고 본인이 둥글지도 않아 어렵다면, 경우에 맞는 화법만 갖추어도 그만이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엄마란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조금 전만 해도 ‘밤을 새워서요’ 다음에 ‘죄송해서 어쩌지요’ 정도 한마디만 뒤따랐어도 됐을 일이다. 역시 엎드려 절 받자는 게 아니라 그게 인간관계의 스킬…… 이전의 기본 예의다. 조효내 개인의 무질서한 성향을 간과하고 그의 직업으로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사회생활 경험이라곤 전무하며 방에 들어앉아 개인 작업만 해 온 사람 티를 있는 대로 내지 않나.
단희가 워낙에 사회 생활 만렙이라 효내가 상대적으로 아싸 같아 보이는 것도 있는데, 혹시 나도 효내처럼 경우 없어 보일까 두려워하며 읽었다. 근데 또 효내가 뭐 악의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서 이런 ‘윤활유’를 모를뿐인 거라서 약간 애매하긴 하다. 효내 말대로, “홍대 앞 빌라에서 살 때는 처지가 비슷한 전세 난민들끼리 가능한 한 서로 터치하지 않고 지냈는데, 실험공동주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에서는 빌라와 규모 차이도 별로 없건만 ‘공동’이라는 이름이 유난히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실험’은 어디 있는지 잘 알 수 없었고 거기 관심 가질 형편도 아니었다.” 단희와 효내의 갈등은 성향이 정반대인 두 사람의 충돌이랄까.
다음 예시는 아마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부분이다. 단희의 남편 상낙의 차가 수리를 받게 되어 한동안 요진의 출근길에 카풀을 하게 된 상황. 상낙이 어느 순간부터 은근히 요진에게 작업을 거는 것 같은 발언을 하고, 요진은 여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아 하는지 고민한다. 두 개의 인용문 중 첫 번째가 구체적 상황, 두 번째가 요진의 마음속 생각이다.
“천천히 드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손가락 두 개가 슬쩍 꼬집는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묻은 빵가루를 털어 주는 것도 같은 움직임으로 볼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순간 요진은 경직되었다. 남은 빵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지금 스친 감각에 경악하여 그대로 떨어뜨리는 게 나은지 알 수 없었는데 물론 빵에는 죄가 없었다.
“재강 씨는 안 드세요?”
그것은 그에게도 빵을 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조금 전의 접촉을 아예 일어나지조차 않았던 사고로 간주하고자 말을 돌린, 형식적인 물음이었다.
“저는 일하는 동안 위에서 이미 먹었어요. 요진 씨 다 드세요. 잘 먹으니까 예쁘네.”
태어난 시율이를 품에 안고 요진은 먼저 출산한 친구들이 습관처럼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봐야 진짜 어른이 돼. 그 전에는 결혼하고 둘이 잘 살아 봤자 소꿉장난이고. 처음 요진은 그 말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향한 격려인 줄 알았다. 출산과 함께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고 개성이나 욕망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 두는 데 익숙해졌지만 적어도 세상에 값진 생명을 내놓은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이를 악무는 위안의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그 말들은 자기변호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 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흔히 정상 내지는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경로를 거쳐 통과한 이는, 타인과의 어지간한 신체적 접촉 정도로는 눈을 부라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일일이 그래 봤자 성격 까다롭다는 조소를 감당하고 비참함을 곱씹는 쪽은 자신이라는, 차라리 스스로를 오브제로 간주했을 때 피로의 역치가 그나마 높아진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한 자로서의 체념, 그 끝에 마침내 일말의 안식처럼 찾아드는 무감각 같은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억세고 드세고 몰염치하며 수치도 모른다고 운명 내지는 표본처럼 간주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 새치기와 엉덩이 들이밀기는 기본, 대중교통에서는 가방을 던져 자리를 확보하고, 마트에서는 목청 높이며 먼저 앞줄로 나가 덤을 획득하는 — 은 어쩌면 그와 같은 시선이나 무신경한 촉지의 중첩을 통해 형성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시율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순간 온 피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니 요진은 고의든 실수든 자신의 얼굴에 닿았음이 분명한 신재강의 손가락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터였다. 세상 모든 남자의 손가락은 그것이 어디에 닿았든 간에 잠시 앉아 앞발을 비볐다가 떠난 파리에 불과하며, 파리채를 제때 휘두르지 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카풀을 하는 이웃집 여자의 볼을 만지면서 ‘잘 먹으니까 예쁘네’라고? 미친놈 아닌가. 그런데 이런 불쾌한 접촉에도 ‘왜 이러세요, 하지 마세요’ 같은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스스로를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로 만드는 반응을 보이는 게, 요진이 이런 사소한 폭력을 과거에 많이 접했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에 공감 못하는 여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듯.
최근에 X(구 트위터)에 자동 번역 기능이 탑재되어, 한국 또는 아시아 여자들만 이러고 사는 건 줄 알았던 구질구질한 현실이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경험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어 충격받은 분들(예시 하나)이 여러 분 계실 것으로 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읽히면서 영어권 독자들도 이딴 게 한국만의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되겠지… 겸사겸사 한국 (여성) 작가들이 뛰어난 것도 같이 알아 주시면 좋고. 어쨌거나 전 세계 모든 여남들이 읽어 보면 좋을 소설. 종이책 기준 198쪽으로, 짧은 편이라서 더 좋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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