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Companion(컴패니언)>(2025)

아이리스(소피 대처 분)와 조시(잭 퀘이드 분)는 슈퍼마켓 오렌지 매대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커플이 된 그들은 조시의 친구 캣(메건 수리 분)과 그 애인 세르게이(루퍼트 프렌드 분), 조시의 다른 친구 일라이(하비 길렌 분)와 그 애인 패트릭(루카스 게이지 분)와 어느 호숫가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이 별장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줄거리만 봐도 뭔가 감이 오지 않는가. 나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이 영화를 소개하는 트윗을 통해 이게 ‘AI 여자 친구’를 소재를 한 이야기를 알았기에 반전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방금 공식 트레일러도 살펴봤는데 이것만 봐도 눈치 빠르신 분들은 대개 이게 뭔지 감 잡으실 것 같다. 아이리스가 조시의 AI 여자 친구, 또는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섹스 로봇이라는 반전을. 사실 이것 하나에만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고(그러니까 아이리스가 AI 로봇이었다는 사실이 알고 보니 <식스 센스(The Sixth Sense)>(1999)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의 큰 반전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이야기가 길어서 이 정도는 트레일러를 통해 알게 되어도 영화의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에라 그리어의 <Annie Bot>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간단히 소개하자면(앞의 링크를 통해 내가 이 기가 막힌 소설에 대해 쓴 리뷰를 더 자세히 읽어 보실 수 있다), 섹스 로봇이 찐따 인셀에게 지배당하다가 탈출을 도모하는 이야기인데, 같은 섹스 로봇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Annie Bot>은 좀 더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이 영화는, 반면에, 씁쓸한 뒷맛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해피 엔딩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Annie Bot>이 훨씬 더 잘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컴패니언>도 인간보다 도구 취급을 받는 여성의 처지를 은유하는 장면, 대사가 많지만, 이걸 여성 서사 영화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페미니스트가 좋아하는 영화 TOP 20’에 들 것 같지는 않다. 나쁜 영화는 아니고 재미도 있고 스릴도 넘치지만 여성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만든 거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오히려 내가 놀란 건 패트릭 역시 남성형 섹스 로봇이었다는 사실이다. 게이들이 얼굴과 몸매를 엄청 따지는데, 통통한 편인 일라이가 패트릭처럼 핫한 남자 친구를 만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면, 님이 저보다 빨리 반전을 알아차리셨겠군요… 반전을 알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말이 된다. 사실 아이리스가 섹스 로봇이라는 사실은 좀 더 알아차리기가 쉽다. 아이리스라는 이름 자체가 ‘시리(Siri)’를 뒤집은 것이고(’구 구 돌스(Goo Goo Dolls)’의 <아이리스(Iris)>라는 명곡에서 따왔다고 주장하려는 듯 이 노래가 아이리스가 배달되는 장면에 플레이되긴 하지만), 조시가 아이리스를 ‘빕붑(Beep-boop, 컴퓨터가 내는 뿅뿅 하는 소리를 흉내내는 의성어)’이라고 부른다거나, 조시가 아이리스에게 날씨를 물어보면 아이리스가 AI 같은 목소리로 날씨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 등이 이를 암시한다. 아이리스가 AI 섹스 로봇이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조시와 아이리스가 호숫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조시 본인은 맨손으로 덜렁덜렁 별장으로 걸어가는데 아이리스가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양손에 낑낑거리며 들고 가는 장면에서는 화가 났다. 와 저런 개찐따 새끼가 있나. 아무리 로봇이라고 해도 저렇게까지 기본적으로 ‘괜찮은 남자’인 척도 안 하네? 네가 그러니까 인간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이 자식아 🤬
어쨌거나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스릴 있으며 적당히 볼만한 영화. 적어도 보고 나서 짜증이 나거나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근데 이제 여성형 섹스 로봇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만들면 안 될까. 그런 취급을 받는 여성의 입장을 은유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재생산함으로써 이런 현실을 고착하는 효과도 있는 듯한데. 어쨌거나 이 영화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런 류의 고전 중 고전인 <스텝포드 와이프(The Stepford Wives)>(1975년작이 원작, 2004년작은 리메이크)도 좋아하실 듯. 이게 좀 더 상위호환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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