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마쓰다 아오코,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어느 날, ‘아저씨’들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간 아저씨들에 시선에 불편함을 느껴 왔던 소녀들은 이제 자유를 누리게 되는데… 소설은 어느 날 ‘아저씨’들이 사라진 미래의 모습과 현재 일본을 살고 있는 몇몇 여성들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아저씨’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약간의 소란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아저씨’들이 동요했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응당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극성스럽게 난동을 피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이변도 없이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으므로 ‘아저씨’들이 난동을 피우는 모습은 기이하게만 여겨졌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아저씨’ 특유의 농담이거나 몸 개그이겠거니 생각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디 ‘아저씨’의 말과 행동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신들에게만 닥친 상황임을 깨닫고 초조해진 ‘아저씨’는 한층 소란을 피웠다.
호들갑을 떤들 이렇다 할 효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머지않아 사람들은 ‘아저씨’들이 소녀들을 보지 못해 저지르는 괴상한 언행을 보고,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라며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아저씨’에게는 더 이상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한편 소녀들은 처음에는 꽤나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즐겁게 무리지어 등하교하는 소녀들에게 부딪혀 휘청거리다가 다시 또 부딪히기 일쑤였고, 전철 안에서 소녀가 앉아 있는 자리를 빈자리로 여겨 그 위에 철퍽 앉으려 하곤 했다.
제정신이야?
웃기지도 않아.
소녀들은 분노했지만 이내 순응하는 법을 터득했다. 어쨌거나 소녀들에게는 ‘아저씨’가 보였으니까. 이는 크나큰 이점이었다.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띄면 움직임을 예측해서 피하면 그만이다. 식은 죽 먹기였다.
‘아저씨’가 소녀들을 보지 못하는 현실은 소녀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가히 극적이라 할 만했는데, 다만 소녀들은 그 변화, 정확히 말하자면 차이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저마다 자신의 감각으로 알아냈다.
그것은 자유였다.
소녀들이 가장 먼저 실감한 것은 그들을 주시하는 시선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었다.
뺨에, 속눈썹에, 목덜미에, 가슴에, 교복 치맛자락에, 허벅지에, 발목에 어떠한 것도 들러붙거나 엉겨 붙지 않았다.
끈적끈적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들은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세일러복도 체육복도 ‘아저씨’에게 보여질 일이 없는 이상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세일러복이었고, 체육복이었다. 그저 몸을 감싸는 천에 불과했다. 학교생활에 필요한.
소녀들은 ‘아저씨’의 시선이나 언행을 숨 쉬듯이 경계하던 날들을 잊어버렸고, 굳었던 몸과 마음은 서서히 풀려갔다.
어른들은 소녀들에게 ‘아저씨’로부터 몸을 지켜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딸이 외출할 때마다 잠재적인 불안과 공포로 곤두섰던 신경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가히 축복할만한 변화였다.
위의 인용문만 봐도 감이 오겠지만, 여성주의적인 소설인 데다가 현대 사회의 여성 혐오적 현실을 은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비유가 아니라 너무 있는 그대로, 그냥 대놓고 말해서 은근한 맛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읽고도 여성이 얼마나 억압받고 살고 있는지 감이 안 온다면 그 사람은 독해 능력이 없거나 눈치가 제로에 수렴할 정도일 테니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런 인용문들을 보시라. (일본) 사회 내에서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주 대놓고 말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이다.
게이코 옆을 웃으며 지나가는 여자아이들. 게이코와 마찬가지로 비행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저마다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아이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해외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일본 여자아이들.
게이코는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충격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일본의 여자아이들은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일본과 사뭇 다른, 누구나가 자유롭게 행동하던 나라에서 한 달을 지내다 온 게이코의 눈에 그들은 지극히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작았다.
여자아이들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못할 것만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일본의 여자아이들은 (외국 여자아이들에 비해)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라는 부분은 갑자기 웃겼는데, 생각해 보니 ‘매가리’가 아니라 ‘맥아리(기운이나 힘을 속되게 이르는 말)’를 잘못 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매가리’가 뭡니까.
‘여성 클리닉’이라는 문구에 위화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내과나 이비인후과처럼 보통 일상적으로 다니는 병원은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하고 무심결에 생각할 만큼 ‘여성 클리닉’이라는 말에는 꺼림칙함과 임팩트가 있었고, 동시에 ‘여성’의 것이라고 명확하게 정의된 병원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경구 피임약 보급률은 고작 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같은 해 다른 나라의 보급률은 프랑스가 41퍼센트, 독일이 37퍼센트, 영국이 28퍼센트라고 했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간편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나라도 있고, 무료로 나눠주는 나라도 있다고 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경구 피임약을 취급하는 병원을 찾아가서 몇천 엔을 지불해야만 한다. 열악한 접근성과 높은 가격 때문에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고 해도 전혀 신기할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약의 존재를 모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 사회는 여성이 편의를 누리는 것에, 쾌적하게 사는 것에, 선택해서 얻는 것에 왠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였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였다.
경구 피임약 보급률에 대해 이렇게 수치까지 나열하면서 서술하는 게 ‘소설’답지 않고 저자의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등장인물이 저자의 대변자나 다름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위에서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말하는데도 이해를 못한다면 희망이 없을 거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거의 이유식처럼 떠먹여 주는데도 여성의 삶을, 처지를 이해 못한다면 그냥 개선의 여지가 없는 여혐 종자라고 봐야지.
키가 149센티미터인 가가와 아유무는 애초 무시당하기 쉬운 외모였다. 이 일본 사회에서 무시당하기 쉬운 외모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유무는 몸소 배웠다. 교복은 입지 않을지언정, 이제는 ‘회사에 다니는 여성다운 복장’이라는 제복을 입게 된 아유무는 혼잡한 전철을 탈 때면 어김없이 경계했고, 밤길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제복은 어떻게 해도 벗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
극 중 현대 일본을 살아가는 인물 중 게이코가 한 여자 아이돌을 보고 반하는데, 웃지 않고 반항적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일본 여돌 중에 이런 캐릭터가 있나,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일본 여돌은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고, 상상도 어려웠다. 한국 여돌도 아니고 일본 여돌이 저런 캐릭터라고? 신기한걸. 그리고 그 아이돌은 구체적인 이름도 주어지지 않고 ⭕️⭕️이라고 불리는 것도 놀라웠다. 적당히 이름을 부여하면 안 됐던 걸까.
마지막에 약간 이야기가 음모론 비슷한,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흐르는데 그게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하다. 이걸 SF라고 봐야 하나,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나는 ‘아저씨들의 시선이 갑자기 없어지게 되는 일도 일어나는데 이 정도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소설 후반이 의견은 갈릴 수 있어도 초중반은 확실히 아주 교육적(위에서 말했듯, 여성 혐오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일일이 다 밝혀 준다는 점에서)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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