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구병모, <로렘 입숨의 책>

로렘 입숨이 뭔지는 알았는데(인쇄, 출판, 디자인 업계에서 레이아웃과 디자인과 비주얼적인 부분을 위해 채워넣는 의미 없는 텍스트) ‘로렘 입숨의 책’은 뭔가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읽은 정세랑 작가의 <아라의 소설>처럼, 구병모 작가가 쓴 짧은 엽편 소설들을 묶은 책이었다(출판사 측에서는 이를 ‘미니 픽션’이라고 소개했다). 각 작품은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로, 총 열세 편이 실려 있다.
<화장花葬의 도시>는 발음이 똑같은 ‘화장(火葬)’과 ‘화장(花葬)’을 이용한 말장난에 기반했다. 어떤 도시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에게 ‘나노 시드’를 주입하는데, 이 사람이 한평생 이 씨앗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고 난 후 남은 이 씨앗을 심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피기도 하고, 포악하게 생긴 데다 냄새도 고약한 꽃이 핀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료한 만큼 씁쓸하다고, 어쩌면 끝까지 몰라도 좋은 것을 너무 많은 사람이 대낮처럼 알게 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했다. 예를 들어 옛 성인 아무개의 환생 같다는 말로 추앙되던 의사의 시신에서 저런 사악한 꽃이 피어난 걸 보고 단순하게 충격받은 시민들은, 꽃이 사람의 성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무작위로 피어나는 모양이니 이제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례 풍습을 폐지하자며 신문고를 울렸지만, 일부 기자들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고 심층 조사에 매달린 끝에 리베이트를 비롯한 온갖 협잡은 물론 최소 25건의 강력범죄에 일명 환생 성인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선인의 유배>는 ‘빅 픽처’라는 테마를 제안받고 쓰셨다고. 정말… 글자 그대로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
<영 원의 꿈>에서는 노인 전용 열람실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주인공에게 간밤 꿈을 묻더니, 내용에 따라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한다. 어차피 백수겠다, 꿈이란 어차피 매일 꾸는 거니까 이걸로 반찬값이라도 벌어 보자는 마음으로 주인공은 매일 그곳에 나가 그 낯선 이를 만나 꿈을 파는데…
눅눅한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며 몇 가지의 가능성을 점쳐보았다. 부식비 구입에 그 돈을 썼는데 별문제 없었으므로 위조지폐는 아닌 듯했고, 우선 꿈을 사고판다는 일 자체의 허무맹랑함에 대하여. ①그는 노인 열람실(이라고 붙어 있었지만 실은 로비)에 일없이 있는 젊은이가 딱해 보여서 꿈을 핑계로 적선했다. ②그는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이고 자신이 메시아 내지는 구원자라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가족의 지갑을 빼와서 함부로 돈을 뿌리는 것인데 나는 그가 건넨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도둑으로 몰린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일부터 그 자리에 나가지 말아야겠지. 둘 중 어느 쪽 가능성이 더 높을까.
<동사를 가질 권리>는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제일 짧은 듯.
<날아라, 오딘>은 전쟁에 이용되는 동물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화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이 보살펴 온 애완동물을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 풀어 주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예술은 닫힌 문> 소개는 저자가 쓴, 이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가 담긴 짧은 문단으로 갈음한다.
모 방송사 토너먼트 경연대회 2차 예선에서 60초 어필에 실패한 아티스트는 지옥의 불구덩이라고 부르는 무대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물론 추락시키는 게 아니라 기계가 안전하게 내려준다. 무척 잔인한 탈락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서바이벌 예능을 요약한 게시물들을 둘러보니 그 정도는 약과였다. 인구도 현저히 줄어드는데 사회문화 전반은 더욱더 서바이벌 경쟁과 승자 독식에 미쳐 돌아간다. 이런 사회에서 예술은 얼어 죽을…… 같은 마음이 든다.
<입회인>은 ‘미래에도 개인간 결투 문화가 남아 있다면?’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약간 찡한 이야기.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에 이 편지를 네 앞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딸, 네가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누구와 싸우더라도, 아빠의 마음이 항상 너와 함께한다는 걸 잊지 말아주렴. 죽음을 자초하지 말고, 자신이 지나치게 비겁해지지 않는 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모욕을 주는 자들을 섣불리 용서하지 않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진심 없는 화해에 서둘러 응하지도 않기를 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세상은 너를 무너뜨리거나 해코지하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기를.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요즘에도 여전히 쥐가 나오는 주거용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제일 큰 공포가 아닐까…
남자는 약간 쭈뼛거리며 민망해하는 듯한 어조로, 오 이거는, 문화 유적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의 어머니는, 오 그러게. 옛날 주말 가족 드라마에서나 나올 거 같은데 이거 너무 정겹다. 막 안방에 봉황 나전장 있고 그런 거 아니죠? 그녀가 그 어머니의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여 예? 하고 반문하자 곧 손사래를 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개장롱 말이에요. 괜한 소리 했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아들은 더한층 맞장구를 치며,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이 정도는 못 본 거 같아. 사장이 듣기에도 조금만 더 놔두면 그 아들 입에서 〈기생충〉 집의 찬장이랑 타일이 꼭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 같은 소리가 나올 것처럼 보였는지, 자 그러면 이쪽으로 와서 안방 구조 한번 보시고요, 하며 말을 돌렸다. 한편 이제 곧 남자와 결혼할 예정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본인도 만약 아이를 낳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이 여자와 같은 꼴이 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와 아기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그녀는 공연히 추레한 옷깃을 가다듬는 시늉을 하며 눈을 피하고 싯누런 우유 자국이 밴 아이의 오가닉 면 턱받이를 끄르곤 했다.
<롱슬리브>는 팔이 길었던 학창 시절 친구를 떠올리며 살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책의 표지에도 그려진, 한쪽 팔로 머리 뒤통수를 휘감아 자기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인물인 듯.
그 애의 팔이 얼마큼이었는가 하면, 오른팔을 머리 뒤로 돌렸을 때 팔오금이 왼쪽 귀에, 손가락은 콧등에 닿을 정도였는데, 그건 팔만 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뼈와 근육의 구조 및 그것을 움직이는 방식이 곡예단의 기예에 가까움을 뜻했다. 그런 자세는 아무나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그 애는 중학교에 올라와 처음 자기소개 및 장기자랑 시간에 팔로 제 목을 한 바퀴 감는 기술을 선보이는 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시도했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은 ‘과연 세상에 버려도 되는 말/개념이라는 것이 있을까’를 상상해 보는 단편이다. 어떤 단어를 지우면, 그 행위 또는 개념을 없애 버리면, 정말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까? 그 단어가 가리키는 행위가 사라짐으로써 생겨나는 어떤 ‘나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원은 자신의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지만, 하나의 도시에서 한번 신의 사전을 펼쳐 지운 말은 원래의 자리에 되살릴 수 없다. 그리하여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비롯한 인간들은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놓아버린다. 놓아버린다는 것이 자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살은 스스로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저 삶이 천천히, 자신을 구성한 최소한의 요소와 성분을 잃을 때까지 거추장스러운 몸을 내버려두는 것이다. 정복 욕망으로서 일종의 공격성을 필요로 하는 섹스 또한 자취를 감춘다. 사람들은 오로지 잠에 빠져든다. 잠자는 행동이 누군가에 대한 공격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가장 안전하고 무해한,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행위로 모든 본능 가운데 수면만이 충족되고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누더기 얼굴>은 투명 인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얼굴’이라는 주제를 살렸다.
<지당하고도 그럴듯한>은 ‘픽션’, 그러니까 허구의 창작물에서 ‘그럴듯한’, 또는 현실적인 것을 따지고 드는 고정관념 또는 편견을 타깃으로 한다. 상상 속 어떤 인물이 과연 ‘말이 되는지’ 따져묻는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자연스럽다’, ‘그럴듯하다’라고 보는지에 달려 있지 않는가. 그것도 결국 편견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
<시간의 벽감壁龕>을 읽으면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가 본 적 없는 곳을 정말 우리가 온전히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은 인용문을 가져와서 보여 드렸다. 워낙에 인기가 있었던 책이라 혹시나 아직도 안 읽으신 분이 계신가 싶긴 하지만, 그렇다면 축하드립니다. 이 신선한 작품들을 처음으로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시겠군요. 크레마, 리디, 교보샘, 만권당 등 웬만한 이북 구독 플랫폼에는 (밀리 빼고!) 다 있으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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