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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by Jaime Chung 2026.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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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내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유일무이한’ 성장 소설. 파주에 사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 시절, 졸업 이후 사회인이 되어 사는 동안 이들 사이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렸다. 다 읽고 나면 정말 내가 이들과 같이 자란 친구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비롯한 주인공들은 (대체로) 2번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친해졌다. ‘오리지널 버스 멤버’는 ‘나’, 송이, 수미, 민웅이, 찬겸이, 이렇게 다섯 명인데, 주연이는 나중에 합류했다. 주연이의 오빠인 주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주연이네 집에 자주 가서 만나고 사귀기까지 했지만.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원체 그러하듯, 군데군데 귀엽고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주인공들 중 한 명인 송이는 센스가 탁월해서, 유행이 오기도 전에 멋들어진 패션을 스스로 구축해서 입고 다녔다. 송이를 처음 소개할 때의 이 문단을 보시라.

송이는 어떤 옷이든 소화할 만큼 원체 비율이 좋았다. 송이뿐만 아니라 송이의 언니들과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송이는 딸 넷 중에 셋째였는데, 자매들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똑같은 얼굴을 복사해놓은 것 같아서 처음엔 사실 충격을 좀 받았었다. 송이의 얼굴에 대해 말하자면 부드럽고 가는 머리카락 아래 말 그대로 달걀형 얼굴, 긴 실눈, 작고 약간 들린 코, 고르지 못한 치열이 뭐라 말할 수 없이 도깨비나 요정 같은 걸 연상시켰다. 귀염성 있는 얼굴인 건 분명한데 요괴과의 귀여움이랄까. 송이네 아버지를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심 감탄했다. 요괴 다섯과 사는 것치고 엄청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시네, 하고.

요괴과의 귀여움이라니, 요괴 다섯 명과 사는 것치고 엄청 행복한 얼굴이라니! 이런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찬겸이는 공부는 잘했지만 성격이 (남자애치고) 순한 편이라 그 나이대의 남자애들이 하는, 폭력을 통해 남성성을 드러내는 짓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송이와 ‘나’는 “이 똑똑하고 동그랗고 분홍색인 남자애”를 무리에 받아들여 주었다.

당시 경기도는 비평준화 지역이었으므로 찬겸이가 우리와 같은 고등학교에 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가리라 모두가 믿고 있었는데, 찬겸이는 큰 시험에 약했다. 대입시험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던 연합고사에서 큰 실수를 여러개 한 나머지 송이와 나를 따라 중간보다 아주 조금 나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 찬겸이는 살이 빠졌고, 머리를 길렀고, 전보다는 놀림을 덜 받기 시작했다. 한번 연습을 해서인지 수능은 잘 봐서 치대에 입학했고 점점 더 길어지더니 라식 수술까지 해서 지금은 동네의 대표적 훈남이자 마스코트 ‘개천 용’이다. 딸 가진 엄마들은 “너 그때 걔 좀 미리 알아보지 그랬어!” 하며 닦달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겐 그냥 돌아보면 항상 있는 분홍 생물체 같은 느낌이었다.

분홍빛만큼은 아직도 어쩌지 못했다. 본인은 뻔뻔스럽게 ‘고급스럽게 혈색 좋은 피부’로 밀고 있다.

 

수미는 문제 많은 집안에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그에게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라고 말한 민웅이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게 된다.

여하튼 사랑할 수 없는 가족들을 사랑할 필요 없다는 새로운 지침은 수미에게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어떤 해방감을 느낀 수미는 해방된 모든 사랑을 다 민웅이에게 쏟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울 만도 했을 텐데, 민웅이는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 그 무렵엔 누구나 민웅이를 사랑했다. 민웅이는 아무 방어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곁을 쉽게 주었고, 그래서 그 곁은 360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두의 골든 보이였다. 나나 송이조차도 가끔 민웅이랑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걸 좀 과시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때 탄 초록 줄 버스가 파주 왕자의 마차였다.

 

‘나’와 아무래도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주연과 그의 오빠 주완과의 인연은 이 남매가 파주에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주연과 주완의 아버지는 해외에 계셨고, 어머니만이 종종 이 파주의 집에 들러 (피곤한 모습으로) 종종 ‘나’를 만났다. 그 집에 처음 방문한 ‘나’는 집에 책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부러움과 탐욕을 느낀다. 어느 날 ‘나’는 주연과 숙제를 같이 하려고 주연네 집에 갔는데 커다란 소파에 주연의 머리 꼭대기가 올라와 있길래 놀래 주려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옆에 털썩 앉아 한쪽 다리를 그 애 무릎에 올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주연이 아니라 오빠 주완이었다. 이 둘은 그렇게 만났다. 하, 정말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십 대 청춘의 연애가 이렇게 시작한다는 게! 게다가 주완의 외모를 표현하는 문단이 또 기가 막히다.

주완이에 대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야기하게 되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 좀 해보라고 사람들은 요구한다. 그럼 나는 폴 매카트니와 로저 테일러를 섞어놓은 것 같은 외모였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비틀스 팬은 비틀스 팬대로 퀸 팬은 퀸 팬대로 독특한 미남이었겠네, 하고 반응한다. 두 그룹의 팬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말이지만 나는 사실 주완이를 만났을 당시엔 폴 매카트니도 로저 테일러도 알지 못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닮았다고 말해줬을 텐데, 그러면 아마도 기뻐했을 텐데 말이다. 앞 세대의 음악을 자연스레 함께 듣는 행운은 생각보다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국세청 모르게 젊은 부자들이 물려받는 유산과도 같다.

주완이 폴 매카트니와 로저 테일러를 닮았다는 것도 놀라운데, “국세청 모르게 젊은 부자들이 물려받는 유산” 같다는 표현은 정말 감탄이 나온다.

 

어쨌든 이렇게 잘생긴 미소년을 어떻게 안 사랑하냐고요… 십대 청춘이 모이면 반드시 그중 하나는 사랑에 빠지게 되어 있다! 여기는 두 명이나 되어서 사귀는 게 무척 귀엽다. 물론, 성장 소설이다 보니까 밝고 희망찬 내용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 밝음과 어두움이 어우러지기에 성장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시절 추억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라고 할까, 나랑 제일 잘 맞을 것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역시 주연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고 자라 편집자 일도 하고 나중에는 해외로도 가는 삶의 궤도가 나랑 비슷한 것 같아서. 하지만 역시나 무엇보다 그의 성격이 나랑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너 그래도 자리 잘 잡았다. 대단해. 좋아하는 일 하잖아. 그렇게 책을 읽어대더니만.”

“모르겠어. 우리 업계에서 자리를 잘 잡으려면 사기꾼이어야 해.”

“그럴 리가.”

“기본 교정교열도 못 보고 저자 관리도 못하는 낙하산이 허세만으로 높은 자리를 꿰차는 일이 허다해. 막상 진짜 일하는 사람들은 매출 다 올리고도 욕만 먹고.”

“그런 건 어디나 그렇지 않을까?”

“가까이 가서 귀에다 소곤거려주고 싶어.”

“뭐라고?”

“너 같은 건 가짜라고.”

“으악.”

“오래오래 살아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 몰락하는 걸 보고 죽고 싶다.”

“지독한 말을 잘도 하네.”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성질 좀 죽이라는데, 그런 사람들이랑은 말이 안 통해. 성질 죽이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왜 몰라.”

이상한 일이다. 나는 주연이가 지독한 말들을 할 때가 좋았다. 나에겐 예방주사 같은 말들이었다. 가끔은 예방주사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물렁한 기대들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해주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나처럼 모두 주연이를 좋아한 건 아니었기에, 주연이는 업무능력과는 상관없이 큰 팀을 맡지 못했고 대개는 팀원 없는 팀장에 그쳤다.

 

앞에 이게 정세랑 작가의 ‘유일무이한’ 성장 소설이라고 했는데, 저자가 리마스터판(음반도 아닌데 이렇게 표현하다니 신기하긴 했다)에 새로 쓴 작가의 말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에 한 독자분이 학생 때 이 책을 읽었지만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저를 원망하고 있다고 리뷰를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픈 이야기를 써서 죄송합니다. 변명하자면 많은 작가들이 가상의 유년을 공들여 조형한 다음 완전히 파괴하면서 작가가 되지 않나 합니다. 다시 한번 태어나는 과정이기에 딱 한번만 쓸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덜 아픈 이야기들로 보상해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불가해하게 난폭하다고 여기기에 상실 이후에 대해, 이어지는 삶에 대해 끝까지 쓰고자 합니다. 더딜지라도 확실한 회복 속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성장 소설을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니요…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작가님은 잘 쓰시니까 또 써 주세요 엉엉.

 

당연한 말이지만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좋은 소설이다. 방금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에 나오듯 이 소설의 독자가 된 후 저자를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만큼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고 마치 내 진짜 친구들처럼 느껴졌다는 뜻 아닐까. 이런 아름다운 고통은 독자의 기쁨이기도 한 법. 당연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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