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성해나, <혼모노>

대출 희망자가 많아서 도서관에서 대출하기도 쉽지 않았던 이 소설을 드디어 읽었다. 이 인기에는, 물론 이 소설 자체가 재미있는 것도 있겠지만, 아마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렇게 호기심을 부추기는 영업 멘트라니. 관심 없던 사람도 이 말을 들으면 혹하지 않겠는가. 다 읽고 나니, 이 추천사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오해는 마시라. 책이 재미없다는 게 아니고, 이 말만 들으면 <혼모노>가 넷플릭스 뺨치게 도파민이 도는 자극적인 책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렇게 자극적인 마라탕 같은 소설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그렇게 오해받으면 아쉬울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총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단편 소설집을 여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현실에서도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은 ‘예술계(또는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본다. <인간 불신>이라는 영화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김곤 감독은 시네필들과 대중의 총아가 된다. 그런데 그가 영화 촬영 중 아역을 호되게 혼낸(”눈물 연기 못한다고 애 팔뚝을 피멍 들 때까지 꼬집은 게 어떻게 실수로 포장돼요?”) 일이 밝혀지고,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의 팬들은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일부 단어(”ex. 파주 세트, A군”)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면서까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소설의 화자 ‘나’도 그런 팬들 중 한 명이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는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같이 보면서 이후 감독과의 영상 통화를 예정해 두었던 팬 클럽 사람들은 또 그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우리’의 사랑이 ‘저들’의 사랑보다 순도 높다”고 하면서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
질의응답을 마치고, 오늘 온 관객들에게 소감 한말씀 부탁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김곤은 잠시 머뭇댔다. 그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낸 뒤 담담히 말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이년간 저는 하루하루를 참담한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김곤이 말을 이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다는 것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작업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제 작품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께 죄송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송구스러우나 영현군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려 합니다.
김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하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수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스무드>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없는 한 ‘미국인’이 주인공이다. 듀이라는 (굉장히 백인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는 제프라는 예술가의 매니저인데, “한국의 스타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에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다. 그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고, 젓가락질도 익숙하지 않으며, 한국 음식이 그다지 입에 맞지도 않는다. 어느 날, 그는 종로를 구경하다가 길을 잃는데 마침 또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닳아서 번역 앱조차 쓸 수 없게 된다. “성조기와 ‘타이극기’를 들고 있는 든 이들”을 보게 된 그는 도움을 청하는데…
메인 디시가 나오는 동안 그들은 맛이 어떠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해댔고, 식재료와 소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나도 서툰 젓가락질을 관두고 포크와 스푼을 사용해 음식을 먹었다. 양배추로 만든 줄 알았던 ‘김치’는 예상외로 아삭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물렀다. 젤리처럼 미끄덩거리는 ‘무크’라는 요리는 맛도 식감도 이상했으며 매운 소고기 요리는 너무 자극적이라 씻어 먹을지 말지 수차례 고민해야 했지만, 그들의 성의를 생각해 조금씩 맛보며 식감이 재미있네요, 알싸하지만 이색적인 맛이군요, 따위의 감상을 내놓았다.
한국은 이런 나라구나.
예상과 달리 이곳은 위험하거나 두려운 우범지대가 아니었다. 아버지도 한국에 와본 적이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 김은 사포처럼 검고 얇은 종이에 밥을 감싼 뒤 단번에 삼켰다. 젓가락 대신 손을 사용해 그것을 먹기도 했다.
저 종이도 먹는 거였다니. 데코인 줄 알았는데.
종이를 아무렇지 않게 씹어 먹는 미스터 김을 보며 기겁했다. 여전히 구미는 당기지 않았으나 맛있게 먹는 미스터 김을 보니 저 얇은 종이에서 무슨 맛이 날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사포처럼 거치려나.
이 단편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도 알겠고, 그걸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걸 읽으면서 <KPop Demon Hunters(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가 정말 큰일을 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케데헌>에서 미라 역의 성우(메이 홍)가 말했듯이(참고) 이제 일반 미국인들도 김밥을 좋아하고, 매주 한국 고깃집에 다니면서 <케데헌>은 50번씩 봤을 것이다. <케데헌>이 진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한국인의 문화를 알리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이 소설은 전적으로 <케데헌> 이전에 쓰였기에(이 작품은 <현대문학> 2024년 10월호에 실렸고, 다들 아시겠지만 <케데헌>은 2025년 6월 말에 공개됐다)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무드>에서 묘사하는,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절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케데헌> 이후 이 정도로 무지하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혼모노>는 제목만으로도 가장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제목만 들으면 ‘찐’ 오타쿠들을 저격하는 소설인가 싶지만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이제 신발이 다한 무당으로, 그가 모시던 ‘할머니’ 신의 말투에 ‘혼모노’(’진짜’라는 뜻의 일본어), ‘니세모노’(’가짜’라는 뜻의 일본어. 여기서는 선무당을 가리킨다) 같은 일본어가 좀 섞여 있어서 제목이 그런 거다. 이 할머니 신은 어느 날 갑자기 그를 떠나 그의 앞집에 사는,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신애기’에게 깃들었다. 신력이 떨어진 그는 자신이 ‘니세모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 굿판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데… 결말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신애기가 조소했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그애는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단연코 제일 소름이 끼치는, 으스스한 작품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면서 ‘도대체 얼마나 악랄한 사람이 저런 건물을 설계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으신지. 이게 바로 그런 궁금증이자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다. 대통령 사저 개축까지 맡을 정도로 정부와 연이 있는 건축과 교수 여재화는 넘치는 일감을 맡길 수 있되, 말은 고분고분하게 잘 들을 학생을 물색한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게 졸업반인 구보승. 합리적이고 도식적인 설계를 하는 그를 적당히 설득해서 조수로 만든 여재화는 어느 날 (현실의 남영동 대공분실이 모델인 게 분명한) 갈월동 98번지 건물의 건축 도면을 보여 준다. 자신의 능력에 부치는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고문이 벌어질 취조실을 설계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구보승은 “주제넘지만 제가 도면을 조금 수정해봐도 되겠습니까?”라며 적극적으로 이 일을 돕기 시작하는데…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조사자가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고 자칫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기잖습니까.
희망?
죽고자 하는 사람도 빛 속에선 의지와 열망을 키웁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 흔들렸던 신념이 굳건해질 수도 있죠.
여재화 역시 빛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숙고 끝에 창을 넣은 것이었다. 한줌도 안 될 인간다움이나마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했기에. 그것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을 설계하는 여재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보승은 달랐다.
취조실에 희망은 불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의 바르지만 어조에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여재화는 생각했다.
내가 알던 구보승이 맞나. 그저 허허실실로 물렁하던 놈이?
복도 천장을 좀더 높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천장이 높아져 잔향이 생기면 취조실에서 새어나온 비명이 복도를 울리게 될 것이고, 그 소리에 다른 이들의 공포가 극대화될 테니까요.
이 역시 여재화도 염두에 두었던 설계 방식이었다. 천장이 높아지면 공간의 위압감이 높아진다는 도식은 건축에선 일반적이었으니까. 인간적인 감정이 앞서는 통에 도저히 이를 적용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고민 끝에 여재화는 결론을 내렸다. 구보승이 저렇게 거침없는 이유는 그저 뭘 몰라서라고. 건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서라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저놈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것이 부처라고, 나와 달리 저놈은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이 공간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될 대로 되라는 포기였을까, 해볼 테면 해보라는 오기였을까. 생각 끝에 여재화는 구보승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자네가 삼층 설계를 맡아볼 텐가.
여재화도 꽤 깨끗하지는 않고 때 묻은 인간이지만 그런 그를 놀라게 할 정도로, 거의 열정을 다해 비인간적인 공간을 설계하는 구보승을 보며 ‘이건 인간이 아니다’ 싶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만이 그런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참고로 한국 근현대사의 끔찍한 한 부분인 이 장소에 이렇게까지 자신의 ‘재능’을 갈아넣은 인물은 건축가 김수근이다. 한국 현대 건축사에 기여한 바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라고.
<우호적 감정>은 ‘수평적 관계’를 표방하며 직급 대신 (주로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회사가 왜 (적어도 한국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한지를 잘 보여 주는 단편이랄까. 진, 수잔, 알렉스 따위의 영어 이름을 쓴다고 직급이 없어지고 서열이 없어지나?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사람들과 섞여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딤섬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술잔을 채워주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잉태기>는 서른이 넘은 딸을 아직도 ‘아이’라 부르며, 자신의 시부(그러니까 딸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애정을 가지고 싸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아이를 정신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끌어앉고 있는 어머니라는 인물은 현실에도 많지만, 그가 갈등을 겪는 상대가 시모가 아니라 시부라는 점은 좀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에는 시모랑 싸우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래 인용문을 보고서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미더덕이 자웅동체라서 일부러 갈등의 상대를 시부라고 설정한 것 같다. 흔하지는 않아도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겠죠, 뭐…
시부와 대면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래. 서진의 이혼을 내 탓으로 돌리며 빈정대는 꼴이 사나워 일부러 발길을 끊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부는 혈색이 좋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이제 늙은 걸까. 얼어 있던 미더덕이 물에 닿으며 녹진해진다. 한때는 이게 그렇게도 징그러웠지. 저 오톨도톨한 돌기도, 잘린 손가락을 연상케 하는 몸체도, 암수가 한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닿기만 해도 몸서리치던 때가 있었는데 무뎌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담담하다. 핏줄에게 가장 좋은 것만 쥐여주고 싶다는 욕심. 아이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지는 마음. 그런 면에서 시부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닐까. 애정으로 집요하게 얽혀 한몸이 되어가는 관계. 그 사람을 향한 염오도 언젠가는 무뎌질까. 언젠가는 이 사랑을 서로 담백하게 공유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다 서진에게 이른다.
마지막 작품 <메탈>은 청춘 영화처럼 시작해서 현실로 끝을 맺는다. 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세 소년, 우림, 조현, 시우가 어떻게 세월에 따라 변하는지를 그렸다. 그래도 이 정도 결말이면 약간 희망이 있지 않나...
조수가 다 빠진 새벽의 해안은 고즈넉했다. 세 사람은 오토바이에 차례로 올랐고 바닷물이 밀려나가 해면이 낮아진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돌이켜보면 터무니없이 무모한 일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에선 해안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었고 배기량 125cc의 작은 오토바이는 그들이 몸을 틀 때마다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연석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었고 때를 놓쳐 만조가 되면 오도 가도 못한 채 길 한가운데서 잠길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이여, 나를 데려가지 말아요.
주다스 프리스트의 「Before The Dawn」을 목청껏 부르며 그들은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갔다. 의지할 것이라곤 희미한 전조등과 친구들의 웃음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달리면 우림은 더 나아질 것도 망할 것도 없는 현실에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만 같았다.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주다스 프리스트도 몰락한 동네에서 메탈이라는 꿈을 꾸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짜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리고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때까지 그들은 험한 도로를 마음껏 내달렸다.
인용문 이 부분 진짜 너무 청춘 영화 같아서 좋지 않습니까! 크으,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청춘이 자라면서, 셋이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서 음악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아쉽긴 한데, 원래 영원한 건 절대 없어(씇).
전반적으로 딱히 빼 버리고 싶은 작품 없이 고루고루 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잘 쓰였다. 넷플릭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넷플릭스가 줄 수 있는 그런 것과는 다른 결의 재미이긴 하지만 어쨌든 재미있으니 추천할 만하다. 성해나 작가를 이제 알게 되었으니 다른 작품도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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