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곽미성,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내가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프랑스어 공부 에세이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를 통해 알게 된 곽미성 작가님의 (최근작은 <언어의 위로>) 프랑스 식문화 에세이다. 솔직히 나는 프랑스어나 프랑스 문화에 큰 관심이 없고 동경이나 환상도 없는데 그냥 작가님의 글이 좋아서 읽었다. 제목의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 갔던 저자처럼) 유학생 또는 현지인이라도 같이 맛있는 식사를 나눌 이가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미식 문화’는 신선한 재료로 차린 맛있는 음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과 나누며 즐기는, 다시 말해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프랑스라고 하면 아마 가장 유명할 와인에 대한 꼭지에서 저자는 “프랑스의 여성 배려 문화는 귀족시대의 유산이다. 때문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주로 발현되는데, 그 대표적인 장소가 레스토랑이다.”라고 쓰며, 그 일례로 음식을 서빙할 때 무조건 여성에게 먼저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들었다. 연장자가 있어도, 상하관계가 분명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음식은 여성이 가장 먼저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와인 테이스팅 때는 상황이 다르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일이면서도 매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와인 테이스팅이다. 식당에서 와인을 병으로 주문하면 서버는 손님 앞으로 병을 가져와 주문한 와인이 맞는지 우선 확인하게 하고 앞에서 병을 열어 맛보게 한다. 원하던 맛이 맞는지, 혹시 디캔팅이 필요한지, 온도가 적당한지, 상하지는 않았는지를 직접 판단하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빈정 상하는 대목은 이 모든 과정의 대상이 되는 테이블 대표자 선정이다. 보통 열 번 중 일곱 번쯤의 빈도로 서버들은 주저 없이 남편을 대표자로 여기고 그의 잔에 와인을 따라 준다. 누가 테이스팅을 할 것인지를 묻는 빈도는 열 번에 세 번쯤이다. 단 한번도 “마담”의 잔에 그냥 따라 주는 경우는 없었다(2012년, 여성을 미혼과 기혼의 구분 없이 모두 “마담”으로 표기하도록 공문서 법이 바뀌면서 프랑스는 사회문화적으로도 여성 모두를 “마담”이라고 부르는 분위기다).
어떤 와인을 주문할지 남자가 결정할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사실 이것까지는 ‘뭐야, 남자 입만 입이냐’ 하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데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또한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의 성차별 중 다른 예시로, 남편과 같이 큰맘 먹고 최고급 레스토랑에 갔을 때 남편이 받은 메뉴에만 가격이 적혀 있었던 일을 제시한다. “알고 보니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 특히 옛날식 서비스를 하는 레스토랑들은 대접받는 위치에 있는 손님들이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가격이 없는 메뉴판을 제공한다고 했다. 참으로 섬세하고 감동적인 배려가 아닐 수 없지만, 그 대접받는 사람들의 범주 안에 여성이 자동적으로 속해 있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보다 좀 더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답답한 상황으로 프랑스의 서버들은 매번, 늘, 한결같이 계산서를 남편에게 주고 가는 일을 꼽았다. 아니, ‘남자만 낼 돈 있냐? 여자도 있다!’ 하는 그 마음은 저도 이해합니다. 차별이죠. 하지만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는 다 하기를 바라고, 데이트뿐 아니라 심지어 소개팅 같은 첫 만남에서도 여자가 자기가 먹은 비용을 칼같이 나눠 내기를 바라는 못난 한남들이 넘치는 2026년의 한국에서는 이런 구시대적이고 전통적인, 적어도 ‘내가 내 여자 밥 사 줄 돈도 없을 거 같아?’ 하고 내세우는 ‘남성성’이야말로 그야말로 희귀한 존재로 느껴져서, 저자가 말하는 그런 차별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다. ‘바깥일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예쁜 꽃처럼 보호받기만 해’라고 할 만한 그런 전통적, 기사도적 남성상은 요즘 너무 보기 드물어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달까.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그 정도 흉내를 내려는 남자도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이 나온 게 2018년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그 시대에는 그러긴 했겠네…
‘완벽한 여성의 식탁’에서는 요즘으로 치자면 ‘트래드와이프(tradwife)’ 같은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미미 토리송이라는 블로거 이야기가 나온다.
이 블로그는 “먹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망제Manger”라는 제목으로, 토리송 가족의 시골 미식생활을 보여 준다. 몇 해 전, 프랑스 요리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처음엔 잡지 화보를 모아 놓은 사이트인 줄 알았다. 블로그 속 사진의 색감과 구도가 전문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장면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들 사이사이에는 미미 토리송이 영어로 쓴 일상 이야기가 있다. 주변 이웃들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식사한 이야기, 아이들과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재래시장에 가서 보내는 휴일 이야기를 그날 식탁의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고, 그 안에서는 대강 널려 있는 행주마저도 아름답다. 그야말로 프랑스식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나올 만한 장면들이다.
알고 보니 남편이 사진작가라고 한다. 완성도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일상인 삶이 과연 가능한가. 아이 넷, 그중 한 명은 갓난아기인 상황에서 피곤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청초하고 우아하기만 한 토리송의 빛나는 외모를 보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 혼자서 모든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고, 너른 마당에 널려 있는 저 많은 빨래도 다 해내고 있다는 말인가? 보모도 없이 네 명의 아이를 돌보면서? 심지어 최근에 태어난 갓난아이는 오전 내내 빨래를 하고, 요리까지 마친 뒤 남편과 함께 집에서 낳았다고 한다! 아이도 없고, 살림도 잘 안 하면서도 늘 피곤함을 호소하며 추리닝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블로그의 주인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너무나 궁금해질 것이다.
이 미미 토리송이라는 블로거 주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적은 프랑스지만 5개 국어를 구사하며, 금융을 공부했으며, 한때 패션계에 종사했고 CNN의 프로듀서였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출신인 남편을 만나 파리에 살게 됐는데, 이미 각자 아이들이 있던 상태에서 큰 집을 찾다가 이 블로그 속 배경이 되는 집을 찾아 메독이라는 프랑스의 서남부 지방에 정착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렇게 그녀는 ‘코스모폴리탄’하고 ‘블링블링’한 커리어를 접어 두고,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요리에만 전념하는 가정주부의 삶을 살게 됐다.” 도대체 왜? 저자도 이렇게 썼다.
음식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미미 토리송은 모든 면에서 나와는 도무지 접점을 찾기가 힘든 사람이다. 화려한 외모와 커리어는 물론이고 시골생활, 가족관계 등의 생활환경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추구하는 삶의 모양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주 “여성으로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썼는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결정적으로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으로서의 이상적인 삶과 나의 이상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녀처럼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커리어를 뒤로하고 온종일 청소, 빨래, 육아, 요리를 하면서 살게 됐다면, 아마도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회의할 것이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니, 유행 지난 옛날 광고 카피도 아니고 이게 뭔가. 그렇게 잘나가는 커리어를 가지고 살다가 갑자기 일에 지쳤나?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집안일이 즐거워지지는 않을 텐데. 집안일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분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걸 ‘여자가 할 일’이라고 여긴다면 성차별적인 생각이다. 여자라도 기꺼이 그 일을 맡아서 하는 게 ‘내 집이니까 내가 해치워야지’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여자니까 내가 해야지’라는 마음에서라면, 글쎄, 그건 여성 혐오를 내면화한 게 아닐까? 저자도 토리송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차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자이자 작가인 모나 솔레가 그에 대해 쓴 글을 발견한다. 그는 그처럼 완벽한 집을 가꾸는 토리송 같은 여성에 대해 느끼는 모순된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미 토리송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10분도 안 돼 우울해진다. 다만 나는 바람에 부응하는 그녀의 순응성이 부럽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표준에 자연스럽게 몸을 맞추는 일, 이미 수백만의 여성들과 무엇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수백만의 모델들이 표지판을 잘 세워 놓은 지대에 들어가는 일은 (중략) 따뜻한 반신욕처럼 기분 좋고 편안한 일이다.
그렇다.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은 차라리 편하다. 개인적으로 미미 토리송이든 누구든, 여자가 집안일이나 육아를 소위 ‘완벽하게’ 해내는 일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 사람은 그게 되나 보지. 하지만 그걸 SNS 같은 곳에 올려서 전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성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아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자도 <냉장고를 부탁해>와 <톱 셰프> 같은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리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고민한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보자면 더 궁금해진다. 요리는 여성의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정작 셰프들은 왜 죄다 남성일까? 급여가 지불되지 않는 가정요리는 여자들이 해야 마땅하고, 돈을 받으면서 하는 수준 높은 요리는 남자들만이 해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인가? 한국 여성들 중에는 셰프가 없나? 그럴 리가 없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에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실력을 인정받는 한국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왜 셰프가 되지 못했을까?
프랑스 요리 예능도 그리 좋은 형편은 아니다. 우리 부부가 꾸준히 시청하고 있는 〈톱 셰프〉가 그렇다. 〈톱 셰프〉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본선에 오른 전국의(프랑스의 경우 벨기에까지) 프로 요리사들이 매회 주어진 주제로 요리 대결을 펼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마지막 우승자는 레스토랑을 열 수 있는 상금을 받는다.
프랑스판 〈톱 셰프〉의 경우, 여성 셰프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런데 한 시즌에 등장하는 심사위원 네 명 중 여성은 매번 한 명뿐이다. 지난 아홉 번의 시즌 동안 등장한 여덟 명의 심사위원 중 여성은 두 명이었다. 시즌 1부터 8년이 흐르는 동안 매번 여성 셰프가 단 한 명뿐이었다는 사실에서 최소한으로만 성평등의식을 반영하겠다는 어떤 의무감이 느껴진다.
내 말이 바로 그거다. 요리가 여성의 일이라면, 왜 잘 알려진 셰프들은 남자가 그렇게 많은가. 돈을 내지 않고 먹는 집밥은 여성이 하는 일이고, 돈을 내고 먹는 고급 요리는 남성이 하는 일이다? 에라이. 저자가 또 이 꼭지의 말미에서 지적하듯, 오랫동안 불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고된 일이라서 여자가 할 수 없다면, 한국의 대중 식당 주방에는 “이모님”들이 왜 그리 많은 것인가. 최근에 인기 있었던 요리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도 여성 셰프들인 ‘급식 대가’ 셰프와 ‘이모카세’ 셰프는 여러 번 ‘이모님’, ‘여사님’으로 불렸다(이에 대한 많은 트윗들 모음). 장난하나 정말. 같은 셰프라는 전문가인데 성별로 차별하는 짓 좀 하지 마시라고요.
전반적으로, 나처럼 프랑스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소소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프랑스 문화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아니면 그냥 식문화, 요리 얘기를 좋아하시는 분도 재밌어하실 듯.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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