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그래디 헨드릭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나는 늘 궁금했다. 프레디 크루거(공포 영화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1984) 시리즈 속 살인마)나 제이슨 부히스(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1980)에 등장하는 살인마) 같은 살인마들이 도대체 왜 ‘인기’가 있을까. ‘슬래셔(slasher)’라고 하는, 피가 튀기는 공포 영화들을 보는 것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런 살인마들을 좋아하는 건 더더욱 이해가 안 갔다. 살인마가 사람들을 죽이는 게 어떤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고, 그 끔찍한 범죄자들이 인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나? 내가 이전에 소개한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을 쓴 그래디 헨드릭스의 이 공포 소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은 이와 비슷한 생각에 기반한 듯하다.
일단 제목의 ‘파이널 걸’은, 앞의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공포 영화의 가장 흔한 트로프(trope, 설명은 여기)이다. 한마디로 이는 공포 영화에서 마지막에 살아남는 마지막 여성 등장 인물(반드시 여성이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길고 자세한 설명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짧은 설명은 이거다. ‘성 경험이 없는 순결한 여자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성 혐오적인 표현대로 하자면) ‘헤픈’ 여자들은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고, 최후에 살아남는 인물은 순결한 여자다.
이 소설은 ‘파이널 걸’들 여섯 명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서포트 그룹’ 모임을 가졌는데, 이게 벌써 16년이 된 지라 다들 지쳐 있다. 어느 날, ‘파이널 걸’들 중 한 명인 리넷이 다른 ‘파이널 걸’의 비밀을 담은, 거의 혼자 푸념처럼 썼던 책의 일부가 유출되고 다른 ‘파이널 걸’들은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파이널 걸’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가 현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리넷은 ‘파이널 걸’들을 모아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리넷을 밀쳐내는데… 이야기는 중후반으로 가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내가 제일 공감했덥 부분은, 각 챕터가 시작하기 전 ‘인용’되는 가상의 저작물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정말 그럴듯하다. 이걸 보시라.
이른바 슬래셔, 혹은 ‘파이널 걸’ 영화는 고기 분쇄기 같은 것이다. 한편에서 제작자와 제작사 대표들이 기계를 돌리면, 다른 편에서 남성 팬들이 침을 흘리며 그 폭력적이고 성적인 판타지를 덥석 받아먹는다. 포르노 고어 관중들이 간과하는 것은 이러한 영화들이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이 남성에게 짐승 취급등 당하고 얻어터지고 살해되거나, 혹은 친구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사건들 말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는 점점 강렬해지고 주류가 되어 아무도 이 유독한 나무의 뿌리에 놓인 악취나는 여성들의 시체를 지적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런 시도를 할라치면 재미를 망치는 고루한 인간이라는 비난을 산다. 나 역시 수차례 그랬다.
여성들은 대개 침묵하며, 착취에 가담한 사실을 숨긴다. 그중 누군가 반기를 들려고 하면 업계는 티셔츠와 앨범, 포스터, 액션 피규어를 더 많이 양산해 그들에게 재갈을 물린다. 거기에는 이제 유명인이 되어버린,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살인범의 얼굴이 찍혀 있다.
‘문제적’이라는 말로는 ‘파이널 걸’ 영화의 진상을 규명조차 할 수 없다.
데버라 밸린, 『여성이라는 고기, 그 즐거운 섭취』,『파이널 걸에 대한 최후 발언』 선집에서
물론, 이 소설에서 설정한 것처럼 모든 슬래셔 영화, ‘파이널 걸’ 영화가 실화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앞에서 말했듯 프레디 크루거나 제이슨 부히스 같은 유명 살인마 캐릭터가 ‘인기’를 누리는 현상이 이해가 되거나 이를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The Texas Chain Saw Massacre)>(2005) 같은 영화가 실화에 기반했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왜 ‘허구'로라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왜? 여성을 글자 그대로 성적인 고깃감 취급하는 게 재미있어서?
소설은 공포 영화에서 살해당하는 여성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여성 혐오적 문화를 비판한다. 모든 공포 영화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여성 감독이 만들었거나 (and/or) 여성주의적 공포 영화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성적 시선(male gaze)이 너무나 ‘디폴트’로 여겨져서, 관객조차들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적인 재미도 충분히 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이 주는 책이다. 공포 소설을 너무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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