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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루스 웨어, <우먼 인 캐빈 10>

by Jaime Chung 2026.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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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루스 웨어, <우먼 인 캐빈 10>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 <The Woman in Cabin 10(우먼 인 캐빈 10)>(2025)의 원작 소설. 영화가 넷플릭스에 떴을 때부터 보려고 했는데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고질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건 원작을 무조건 먼저 접해야 하는 ‘원작 먼저병’이기에 일단 책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영화 트레일러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소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벨로시티>라는 여행 잡지에서 일하는 로라 블랙록(영화에서는 키이라 나이틀리 분). ‘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어느 날 집 안에 들어온 도둑을 마주한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 주의 주말, 자신의 상사 로완을 대신해 오로라호라는 호화로운 크루즈선에 탑승하고 기사를 쓸 기회를 얻게 된다. 기사만 잘 쓰면 승진할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트라우마와 피곤을 뒤로 하고 이 일을 맡기로 한다. 생각보다는 작았던 그 크루즈선은 백만장자 리처드 불머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태우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향한다. 하필이면 이 배를 탄 게 남자 친구 주다(영화 캐스팅에 주다라는 이름 가진 캐릭터가 없는 걸 보니 영화에서는 삭제한 듯?)와 다투고 난 후라 더 신경이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로는 첫날 저녁에 바로 옆 선실, 즉 소설 제목처럼 10호실에 탄 여자가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영화는 이다음에 보고 나서 리뷰를 쓰겠지만 소설만 두고 말하자면, 음… 스릴러를 표방한 건 알겠는데 결국… 결말이 이거야? 스포일러를 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끝의 끝이 뭔가 말도 안 되는 해피 엔딩 느낌이다. 이래서야 스릴러가 아니잖아… 스릴러라고 하면 무서운 일, 심장 쫄깃한 일이 일어나고, 엔딩도 뭔가 씁쓸한 게 정석이라 할지, 대부분 아닌가. 사건이 해결되어도 뭔가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고, 이미 피해는 벌어졌고 완전한 회복이나 원상 복구는 불가능하다는 느낌이어야 할 것 같은데, <우먼 인 캐빈 10>은 마지막 페이지가 이 작품을 너무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언가를 암시하려고 그렇게 설정한 건 알겠는데… 예, 그게 바로 이걸 스릴러에서 기대할 법하지 않은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서 설명을 하려니 어려우니 비유를 해 보겠다. 다들 잘 아는 드라큘라 이야기를 가지고 이 소설에 빗대 보겠다. 이 소설은 이런 식이다. 우리의 주인공이 드라큘라 백작네 저택에 가게 되어 그의 어두운 비밀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이 죽어나가는 걸 목격한다. 어쩌면 피해자 중 하나와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도 피해를 입었을지 모르고. 어찌어찌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얼마 후, 경찰(이나 뭐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는 반 헬싱 같은 이들)이 조사를 했더니, 드라큘라 백작은 사망했고 이제 더 이상 그 동네 사람들에게 위험을 끼칠 수 없다고 한다. 다행이긴 한데… 너무 해피 엔딩 같지 않나요? 그럼 그 앞에서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던 건 다 뭔데? 드라큘라 백작이 주인공 혼자의 힘으로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그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아주 크고 무서운 존재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스릴러스러움을 받치는 토대가 아니었나. 경찰(이나 반 헬싱 같은 이들)이 그렇게 믿음직하고 도움이 될 거면 애초에 경찰에 신고하고 무사히 빠져나오지, 왜 걱정을 했느냐 이거다. 게다가 이 소설의 끝에는 드라큘라 백작의 피해자였던 한 사람이 주인공에게 감사하다며 거액의 돈을 답례로 준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해피 엔딩을 선사한다. 참 나, 스릴러 어디 갔냐고요!

 

애초에 나는 소설 초반에 로가 남친 주다와 싸우는 장면부터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로가 강도를 당해 트라우마가 생긴 건 알겠는데, 바로 전 페이지까지만 해도 남친과의 사이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로가 이렇게 날카롭게, 냉랭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로가 주다와 싸우고 난 후에 배를 타서, 크루즈 내에서 인터넷 접속이 안 되어야 로나 주다 입장에서 더 심장이 쫄깃해져서 그런 거 아닌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좀 갑작스럽게 그런 갈등을 지어낸 것 같다.

 

또 하나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건, 소설이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고 각 챕터가 날짜로 구분되는데, 그 챕터 중간중간에 이메일이나 기사 형식으로 미래의 일을 잠깐씩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게 너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깎아먹는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서 9월 20일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챕터는 그야말로 9월 20일 일요일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 챕터가 시작하기 전 주다가 로라에게 9월 22일에 화요일에 ‘연락이 없는데 잘 지내는 거 맞지?’ 하는 요지의 이메일 내용이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뭐지? 일종의 복선인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근데 그걸 섬세하게, 눈에 잘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해야지 이런 식으로 다 알려 줄 거면 무슨 재미가 있느냔 말이다… 혹시 국내에서 번역∙출판하는 와중에 편집을 그렇게 한 건가 하고 원서까지 확인해 봤는데, 원서는 파트 1, 파트 2, 그 안에 챕터 1, 챕터 2…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날짜를 파트/챕터명으로 하진 않았지만 똑같이 미래의 이메일이나 기사가,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제시된다. 크루즈선 안에는 인터넷이 안 되어서 로는 거기에 갇힌 상태나 마찬가지이니 외부의 상황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메일이나 뉴스 기사 같은 형식을 저자가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그건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왜 상황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보여 주냐고요. 일요일에 일어난 일은 일요일 챕터에 보여 주고, 화요일에 일어난 일은 화요일 챕터에 보여 주면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하는 건 그다지 좋은 복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이 보여 주는 거 같아요…

 

분량은 종이책 기준 464쪽인데, 솔직히 이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읽었는데 그런 결말이라니… 약간 허무했다. 로 본인도 자기가 본 게 맞나, 자신을 살짝 의심할 정도로 모든 정황이 안개 낀 것처럼 흐릿한 상황에서 벌어나는 심장 쫄깃한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영화는 각색을 잘했으려나. 보고 나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설은 그냥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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