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Janice Hadlow, <The Other Bennet Sister>

고전 중의 고전, 명작 중의 명작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베넷가 다섯 딸들 중 셋째인 메리 베넷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원작 <오만과 편견> 속 메리는 자기가 똑독한 걸 자랑하기 좋아하고 고지식한 성격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예쁘고 잘난 두 언니들의 그림자에 가려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하고, 인물도 별로라 평생 노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아무래도 <오만과 편견>은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너무 잘나서 다른 세 딸들에게는 크게 포커스를 두지 않았는데(리디아의 ‘그 사건’은 리디아가 얼마나 성급하고 생각이 없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이었을 뿐이라는 느낌) 여기에서 저자 재니스 해들로우는 메리라는 인물을 너드 같고 평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인물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로 해석했다.
이 소설은 크게 5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에서 메리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부는 대체로 우리가 <오만과 편견>에서 읽었을 이야기 위주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각각 빙리 씨와 다아시 씨라는 훌륭한 남편감을 얻는데, 메리는 타고나기를 인물이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는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메리는 콜린스 씨(다들 아시다시피 한정 상속제 때문에 베넷가의 딸들이 베넷 씨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는데, 이 재산을 받게 될 인물이 바로 콜린스 씨다)에게 시집 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메리는 콜린스 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결국 샬롯 루카스가 그를 차지한다.
2부는 1부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이다. 샬롯이 콜린스 씨와 결혼했고, 베넷 씨가 사망해서 콜린스 씨가 롱번 재택을 상속받는다. 그동안 베넷 부인과 메리는 자기 언니네들 집에 얹혀살았는데, 제인과 빙리 씨도 사이가 좋고, 특히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의 금슬이 무척 좋다 보니 메리는 자기의 존재가 누구도 원치 않는 짐덩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언니네 집을 떠나 이제는 콜린스 씨의 소유가 된 롱번 저택에 얹혀살러 간다. 거기에 갔더니 콜린스 씨가 책을 읽는 메리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그리스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샬럿이 이에 질투를 느낀다. 메리는 ‘사랑 없이 결혼했더라도 살아가면서 서로 알아가고, 서로 호감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건데 역시 또 내가 여기에 얹혀살아서 둘에게 부담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 이때 천만다행으로 메리는 베넷 부인의 남자 형제, 메리에게 삼촌이 되는 가디너 씨의 존재를 기억한다. 가디너 씨는 베넷 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언제 한번 런던에 방문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메리는 갈 데도 없겠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해 가디너 부인에게 편지를 띄웠더니 정말 흔쾌히 오라는 답을 받는다.
그래서 3부는 이제 메리가 런던에서 가디너 씨 내외 댁에 머물며 도시 물도 먹고, 자기 몸에 맞는 옷도 찾아 입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또 메리가 톰 헤이워드 씨라는, 가디너 부인의 친척인 젊은 신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래서 이 소설이 또 로맨스 장르인 것 아니겠습니까. 3부에서부터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오만과 편견>은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유명한데, 이 책도 첫 문장에 힘 좀 썼다.
It is a sad fact of life that if a young woman is unlucky enough to come into the world without expectations, she had better do all she can to ensure she is born beautiful. To be poor and handsome is misfortune enough; but to be penniless and plain is a hard fate indeed.
젊은 여성이 재산 없이 이 세상에 발을 들일 정도로 운이 없다면, 미모를 타고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슬픈 사실이다. 가난하지만 예쁜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불행이다. 하지만 돈이 한푼도 없고 인물도 없다면 참으로 고생스러운 운명인 것이다.
ㅋㅋㅋㅋㅋ 아시다시피, 베넷 부인은 미모 원툴로 살아온 분인 데다가 한정 상속 제도 때문에 자기 딸들이 베넷 씨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속상해하며, 딸들을 재산깨나 있는 집에 시집 보내려 한다. 위의 두 딸들을 그걸 훌륭히 해냈고, 막내딸 리디아도 (큰 사고를 치긴 했지만 다아시 씨의 도움으로) 어떻게 시집은 갔는데 (이 소설은 키티도 리디아와 비슷한 시기에, 대단치는 않지만 어쨌든 목사인 남자랑 결혼했다는 설정이다) 메리는 타고나기를 평범한 얼굴인 데다가 엘리자베스처럼 재치랄지 매력적인 성격이랄지 하는 것이 없어서, 베넷 부인에게는 메리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베넷 부인이 보기에 여자는 재치, 친절함, 쾌활함 같은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미모만이 다른 자질들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미덕이다. 그러니 베넷 부인 눈에 메리가 얼마나 부족해 보였겠는가. 위의 두 언니는 남의 눈길을 손쉽게 사로잡는 미인이고, 심지어 두 여동생들도 귀엽고 발랄한 매력이 있는데 가운데에 낀 메리만이 그냥 평범한(plain) 얼굴이었던 거다.
메리는 그래도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여러 모로 애를 썼다. 메리는 피아노 연주를 참 잘하는데, 타고난 것도 물론 있지만 성실히 연습한 덕에 솜씨가 좋아진 것이다. 여기에서도 메리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엘리자베스는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또 그 연주가 자기 마음에 들었으면 실수를 했든, 연주가 완벽하지 않았든 개의치 않고 만족하는 편이라 기교 자체는 뛰어나지 않은 데 비해, 메리는 실수 한 번도 하지 않으려고 완벽에 완벽을 기하느라 오히려 연주를 즐기지 못한다. 또한 메리가 책을 읽는 데에는 그러면 아버지인 베넷 씨에게서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도 있는데 베넷 씨는 좀처럼 메리를 칭찬해 주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저자가 메리를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만한 인물로 그린 게 무척 마음에 든다.
현대의 감수성으로 고전을 재해석한 리라이팅(re-writing) 작품답게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메리가 안경을 쓴다는 설정! 리젠시(Regency) 시대에도 안경은 있었는데 지금만큼 흔하지는 않았다(놀랍게도 이 시대의 안경에 대한 웹사이트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라). 이런 시대에 메리가 책을 읽느라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게 된다는 설정이라니!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 베넷 부인은 물론 안경 때문에 애가 더 못생겨 보인다면서, 메리가 안경을 맞추러 안과 의사를 보러 갈 때 같이 가 주지도 않는다. 너무해… 이렇게 부모님께 따뜻한 사랑을 못 받았는데도 메리가 착하게 잘 자라서 한 부 한 부 지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뿌듯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그렇다. 이게 무슨 랜선 딸 키우기인가…
이 소설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거의 700쪽(내가 본 판본은 종이책이 670쪽이었다)에 육박하는 큰 볼륨이라는 것과, 마지막 5부에서 어차피 결국 해피 엔딩 될 거 아는데 5부에서 좀 쓸데없이 질질 끌었다는 느낌인 거? 그것 빼고는 <오만과 편견> 느낌도 잘 살렸고 재미있다. 이 소설은 BBC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IMDB 페이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리 역의 배우가 딱 ‘눈에 뜨이는 미인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너드 같은 매력이 있는’ 캐릭터를 잘 살린 듯. 역시 영국이라 배우들도 막 미남미녀는 아니지만 현실감 있는 게 좋달까. 사실 나는 이거 보려고 원작 소설을 읽었다. 원작 읽고 나서 영드를 보니 물론 다른 점도 몇몇 군데 있는데(메리의 변화를 돕는 멘토 같은 역할인 가디너 부인과 만나는 시점을 확실히 앞으로 당겼다) 그래도 볼만하다. HBO Max에서 스트리밍 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사라져서 저는 Binge에서 봤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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