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챈들러 베이커, <죽이고 싶은 남편들>

‘페미니즘 스릴러 여왕’이라고 불린다고 하는 챈들러 베이커의 소설. 제목에서부터 감이 오겠지만 정말 ‘죽이고 싶은 남편들’을… 교정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이야기이므로 애초에 이걸 보고 페미니즘이 ‘안 묻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읽는 불우한 독자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변호사인 노라 랭글러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첫째 딸 리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남편 헤이든은 이미 리브를 돌보는 데 노라만큼 열심이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애를 안 보는 건 아닌데, 자기가 ‘주 양육자’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애를 보기는 하는데 노라처럼 자기가 먼저 나서서, 집안일이나 아이 돌보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른 말로 하자면 기획 노동을 안 한다는 거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바쁘고 정신없는 노라는 집안일과 커리어 둘 다 붙잡으려고 애쓰느라 중간중간 주치의와의 (노라 본인과 뱃속 아기를 위한) 건강 검진에 가서도 ‘일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내려놓으세요’ 하는 조언 따위를 받기 일쑤다. 어쨌든 노라와 헤이든은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다가 ‘다이너스티 랜치’라는, 고급 주거 단지의 매물을 보게 된다. 집이 마음에 쏙 든 노라는 부동산 중개인인 이슬라 웡을 통해 구입 의사를 밝힌다. 웡은 이 동네 사람들이 일종의 인터뷰 패널이 되어, 새 구매자를 평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을 구입할 기회를 얻기 위해, 이 동네 사람들에게 잘 보일 요량으로 이 단지에서 일어났던 화재 사망 사건을 맡게 되는데…
노라는 가정과 커리어,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노라는 현재 어쏘(associate) 변호사, 그러니까 로펌에 채용된 변호사로, 이제 파트너 변호사를 목표로 하며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꾹 참고 견디고 있다. 그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 휴가를 썼는데 그의 상사 개리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심사에 통과하려면 무엇보다 상사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얼른 집에 가서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해야 할 시간, 노라가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바쳐서 개리를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집에 가면 딸아이 리브와 남편 헤이든이 기다리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헤이든은 집안일이나 육아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는다. 가장 가시적인 일례가 아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듯, 아이를 위한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애 신발 사이즈가 국가 일급 기밀도 아닌데 자기는 그 일을 못한다고 이러고 앉았다.
리브가 칭얼거린다. 저녁이 길어진다. 결승선이 움직인다.
“리브 새 신발 주문했어?” 헤이든이 묻는다.
“아직. 할일 목록에 넣어놨어.” 노라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 근데 그 주문부터 제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매일 어린이집에서 신발을 벗게 할 순 없잖아. 문제가 커지고 있어.”
불안감이 미진을 일으킨다. “당신이 해, 그럼.” 이 집안에서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려 노력하며 말한다.
“하지만…… 나는 리브 신발 사이즈 모르는데.”
노라가 한숨 쉰다. “오늘밤에 내가 할게, 됐지?” 석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리브의 신발 여러 켤레 중 하나를 찾아 안을 들여다보고 사이즈를 확인하면 된다는 생각을 정녕 못하는 거냐고 남편을 꾸짖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른다.
헤이든 같은 남자들은 도대체 직장 일은 어떻게 하는 걸까? 직장에서 ‘저는 그거 몰라서 못하는데요’ 하면 정말 ‘응 그렇구나’ 하면서 ‘그럼 그 일 하지 마’라고 배려해 줄까? 전혀 아닐 거다. 그런데 왜 집안일은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놀라운 일은 노라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그 새집이 속한 고급 주택 단지의 디너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일어난다. 노라는 코닐리아, 페니, 테아, 알렉시스 등 그곳에 사는 여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째 신기한 게 그 여자들은 전부 여유로워 보인다. 단순히 부자인 것 같다는 뜻이 아니다. 그 여자들의 남편들이 디너 파티 음식을 가져오고, 여자들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일들을 처리한다는 거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네들끼리, 남자들이 할 법한 스포츠나 부동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집안 정리와 살림 팁을 알려 주는 웹사이트 얘기를 하고, 얼룩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을 나눈다! 이런 남자들이 있는 고급 주택 단지라니, 정말 나도 이사 가고 싶을 정도다.
이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특별하길래 이렇게 참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애도 잘 보는가? 그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집안일을 하고 육아를 한다. 미러링이라고 해야 할까. 미치지 않는 이상, 이 세상이 너무나 남자들에게 유리하고 편리하게 세팅되어 있는데 남자들이 알아서, 나서서 집안일과 육아를 하려 들까? 그들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참고로 나는 굿리즈(goodreads.com)에서 이 책 소개글을 보다가 약간 스포일러를 당해서 ‘그래서 그 전모가 어떻게 밝혀지는데?’를 (내가 예상했던 식으로 일어나기를) 내내 기대하면서 읽느라 약간 재미가 반감되었다. 굿리즈에서 이 책 찾아서 소개글 보지 마세요… 모르고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저자는 소설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에 간간히 웹사이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여 주는데 이게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 그 자체라서 어떤 오해도 있을 수가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가상의 기사(”노동인구로 편입되는 엄마들의 수가 기록적으로 늘면서, 여성들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고 하는 것.
벡시퍼드
‘창의적’이라는 말이 하루 열일곱 시간 일하기(네 맞아요, 아이 양육+생계를 위한 직장 일 합쳐서)를 의미하는 거라면, 기자 말대로 문제는 정리가 되었네요! 문제가 해결돼서 엄청 기뻐요.
엄마처럼강해지기
푸핫, 글쓴이는 기분 좋은 기사 하나 썼다고 생각할 게 분명한데 난 남은 스파게티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는 중. 사무실 문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매트 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면서 헬스장 가는 시간 줄이기? 휴대용 유축기 사서 일하는 중에도 모유 짜내기? 직장에서 쓰는 노트북 미용실에도 가져가기? 실례지만 그 매트 가져가서 책상 밑에 깔고 차라리 쪽잠 좀 자겠습니다, 감사.
조너선 SC
남자는 한 명도 인터뷰하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네요. 여자들은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힘든 게 자기들뿐이라는 듯이 행동하죠.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사실상 내가 아는 남자들 대다수가 모든 집안일의 50퍼센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거나 요즘 언급할 만한 트렌드가 아닌 걸까요. 하지만 이런 기사는 가정에서 남자들이 맡은 역할을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편집부의 더 객관적인 시각을 기대합니다.
니시
이거 읽고 이런 생각한 사람은 나뿐인가? ‘잠깐, 남자 놈들은 여자가 1달러를 벌 때 80센트만 벌어야 하는 거 아니야?’
뉴스 댓글 보면 조너선 SC 같은 새끼들이 있는 게 진짜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다 읽고 나면, 아니 최소한 책의 후반에 가서 모든 전말이 밝혀지면 ‘아니, 왜 거기에서 그런 반응을! 야,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세상의 다른 여자들 생각도 좀 해!’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세상을 꿈꾼다… 남편을 죽일 수 없다면, 이 소설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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