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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앨리스 세볼드, <러블리 본즈>

by Jaime Chung 2026.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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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앨리스 세볼드, <러블리 본즈>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The Lovely Bones(러블리 본즈)>(2009)의 원작이 되는 그 소설. 소설을 읽자마자 영화도 봤는데, 소설이 훨씬 낫다. 영화는 그 유명한 영화 비평가 로저 이버트가 혹독하게 비판할 정도로 원작을 많이 바꿨다.

 

소설은 고작 14살의 나이에 이웃집 남자 조지 하비에게 성폭행 및 살인을 당해 목숨을 잃은 소녀, 수지 새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천국’에 가게 된 그는 상실의 슬픔을 겪고, 이겨내고, 또 성장해 가는 가족 및 주변 인물들을 바라본다. 아버지 잭 새먼은 아버지의 육감을 통해 조지 하비가 범인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어머니 애비게일 새먼은 사랑하는 큰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수지의 죽음을 조사하는 경찰 렌 패너먼과 혼외 관계를 가진다. 수지에게는 동생이 둘 있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여동생 린지는 새무얼 헤클러라는 남자애와 사랑에 빠져 사귀게 된다. 막내인 남동생 버클리는 아직 어려서 아빠가 같이 놀아 주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쉽게 위로할 수가 있다. 이 외에 수지의 첫사랑이자 첫 키스 상대인 레이 싱이라는 인도계 남자애도 있고, 죽은 수지의 존재를 느끼는 루스 코너라는 여자애도 있는데 루스는 후에 일종의 영매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레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등장하고, 특히 어머니의 일면까지 보여 주는 데 비해 영화에서는 ‘이럴 거면 도대체 레이의 어머니 역 배우는 왜 캐스팅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진짜 왜? 소설은 수지의 죽음 이후 긴 세월(린지가 대학교에 가고, 졸업 후 새무얼과 집을 사서 결혼할 정도로 긴 시기)을 보여 주는데 영화는 이걸 한 1-2년 정도로 단축시켰다. 영화 마지막에는 정확히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말해 주지 않아서 배가 부른 린지가 새무얼과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헉; 얘네 고딩인데 벌써 임신한 거임?’ 하고 생각할 정도다.

 

게다가 피터 잭슨 감독은(우리가 아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만든 그 감독!) 범인이 수지를 성폭행하는 내용을 빼버렸다. 조지 하비 역을 맡은 스탠리 투치도 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고 하고. 아무래도 주연인 아역 배우(시얼샤 로년)가 어리니까 나도 그걸 직접적으로 묘사할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작의 중요한 부분을 그렇게 빼고 무마해도 되는 건가 하는 데는 회의적이다. 배우를 그런 장면에 노출시키지 않더라도, 적당히 대사나 연출 등으로 성폭행을 암시할 수도 있을 건데. 원작 작가인 앨리스 세볼드도 성폭행이라는 조지 하비의 범죄 사실을 일부러 영화에서 빼버린 데 무척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현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나아지는 게 없잖아요?

 

영화는 아무래도 시각적인 매체이다 보니까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천국’을 좀 더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었다. 천국에서 수지의 친구가 되는 할리(영화에서는 닉키 수후 분)와 예쁜 옷을 입고 그 나이 또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패션 잡지 속 모델처럼 포즈를 잡는 장면이라든지, 그림같이 푸르른 들판을 달리는 장면이라든지. 근데 영화 후반에 조지 하비에게 살해당한 다른 피해자들이 모두 수지를 만나러 오는 장면은, 글쎄,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한 소녀를 너무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로저 이버트의 비판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 나는 원작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천국이 흥미롭고 좋은데, 너무나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당한 소녀에게 일종의 보상이 되는 곳 같아서다. 범인을 잡아 벌을 주는 정의는 없을지언정, 십 대 소녀가 십 대 소녀 같은 꿈을 살아갈 수 있는 곳.

우리는 우리의 천국에서 가장 소박한 꿈을 가졌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었다. 나는 미술 수업, 할리는 재즈 밴드에만 들어갔다. 다른 수업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애들은 우리 등을 꼬집거나 냄새가 난다고 장난치지 않았다. 교과서는 <세븐틴><글래머><보그> 같은 잡지였다.

우리의 우정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천국도 넓어졌으며 우리가 같이 원하는 것도 많아졌다.

내 천국 카운슬러인 프래니가 우리의 안내인이 되었다. 프래니는 우리 엄마 정도의 나이인 40대 중반이었고, 할리와 나는 한참 지난 후에야 우리가 원하는 게 그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엄마.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수지의 엄마 애비게일은 죽은 딸의 기억을 떨치기 위해 렌과 혼외 관계를 가지고, 후에는 집을 떠나 혼자 캘리포니아의 과수원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엄청 매정하게 들리지만 소설을 같이 읽어 나가면 엄마가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기 위해 혼외 정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는 게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는 엄마가 돌아오는 이유도 원작과 달리(남편 잭이 브라이언에게 야구 방망이로 구타당해 병원에 실려 옴) 잭이 심장마비가 와서 남편 병문안 겸 집으로 돌아왔다고 바꿔 버렸다. 이렇게 다 바꿀 거면 도대체 원작 소설 왜 빌려다가 쓰는 거지…

 

어쨌거나 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더 깊고, 의미도 풍부하고, 시간적으로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영화 대신 소설을 접하는 것을 권한다. 영화를 봐야겠다면 그냥 시얼샤 로넌 보는 용도로만 봐 주시길. 소설이 훨씬 더 좋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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