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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by Jaime Chung 201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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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원제는 '브랜드(brand)와 '세뇌(하다)'라는 뜻의 '브레인워시(brainwash)'를 합친 '브랜드워시(brandwash)'이다.

세계 각국의 브랜드 회사들이 업계를 막론하고(화장품, 식품, 유통 등등) 어떤 '술수'를 써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사게 만드는지 그 눈물 날 정도로 정성스러운 노력을 낱낱히 파헤친다.

나는 원체 광고 및 홍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렇게 남의 돈을 빼앗아가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면서 약간 짠한 느낌까지 든다.

물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광고가 흔히 하듯이) 우리 모두가 가진 두려움을 이용해서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건 너무 비윤리적인 짓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니 다시 한 번 광고 및 홍보 업계에 정이 뚝 떨어졌다. 애초에 많지도 않은 정이었지만.

올해 나는 세간살이를 줄이려고 물건도 예전만큼 덜 사고 책도 웬만해서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있는데, 이렇게 나 혼자라도 좀 소비를 줄이면 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까? 아니면 나 말고 물건을 사 주는 사람들은 많으니 신경도 안 쓰려나?

 

어쨌거나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자. 책머리에 저자는 '브랜드 해독(brand detox)'에 도전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소비 다이어트로, 일 년 동안 브랜드 제품을 하나도 사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도전을 시작할 때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은 써도 되지만 브랜드가 달린 것은 하나도 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웠다.

따라서 브랜드가 붙지 않은 사과 같은 식품은 살 수 있지만 '치리오스 시리얼'이나 '잉글리시 머핀' 같은 브랜드 식품은 살 수 없다. 식품뿐 아니라 다른 모든 제품에도 같은 규칙을 적용했다.

결과는? 처음 몇 달간은 대단히 잘하다가, 6개월차에 공항에서 저자의 수하물이 분실되는 일이 일어나자 프레젠테이션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새로 사느라 망했다.

한번 브랜드 의류를 사게 되니 그동안 참아 왔던 것이 봇물 터지듯 우루루 무너졌다. 그 순간 저자는 자신이 '브랜드워시'되어 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저자는 기업들이 브랜드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돈을 벌었고, 그래서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을 어떻게 현혹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수법은 너무나 교묘해서 읽던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예를 들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정 브랜드 및 제품에 대한 취향, 또는 그 가치가 이미 7세 무렵에 개인의 마음속에 뿌리내린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브랜드는 앞으로 자신의 충성스러운 돈줄이 되어 줄 소비자를 만들기 위해 이미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밑밥을 뿌린다는 거다.

예컨대 어머니가 보사노바 음악을 좋아해서 임신 때 이런 음악을 자주 들었다면, 후에 태어날 아이도 보사노바 음악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예리한 마케터들은 이러한 현상을 활용한다.

몇 년 전 아시아의 한 거대 쇼핑몰 체인 기업은 여성들이 임신 중에 쇼핑을 많이 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산모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 이 쇼핑몰 업체는 그러한 시기를 겪고 있는 산모들을 대상으로 향기와 소리에 담긴 무의식적 영향력을 테스트했다. 먼저 의류 매장에 존슨&존슨즈 베이비파우더를 뿌렸다. 다음으로 식품 및 음료수 매장에는 체리 향기를 뿌리고, 산모들이 태어날 적에 유행했던 편안한 노래들을 틀어놓았다.

쇼핑몰 경영진은 이러한 시도가 산모와 관련된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도 함께 나타났다. 이 감각적인 실험을 한 지 일 년 정도가 지나, 흥미로운 현상을 보고하는 편지들이 엄마들로부터 쇄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그 쇼핑몰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아이들이 차분해졌다고 편지에 썼다.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던 아이들이 그 쇼핑몰에 들어오면 신기하개 조용해졌다. 그리고 60%의 엄마들은 그 쇼핑몰과 동일한 향기와 음악이 있는 다른 장소에서는 그러한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이 실험에서 '사전 준비 작업'을 받았던 미래의 소비자들에 대한 효과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차세대 소비자 세대의 쇼핑 습관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미래의 소비자에게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앞에서 나는 광고 및 홍보업을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광고 및 홍보가 너무나 자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냥 치약을 하나 팔아도 "이걸로 이를 닦으면 치아가 하얘지고 이와 잇몸이 건강해집니다." 하는 게 아니라 "이 치약을 사용해 이를 닦지 않으면 이에서 입냄새가 나서 애인이고 친구고 다 떨어져나갈걸요? 혼자 살다 죽고 싶은 건 아니죠?" 이런 식이다.

그냥 자기네 제품이 좋은 점을 어필을 하면 되지 왜 사람들에게 겁을 준단 말인가? (왜긴 왜야, 그게 효과가 있으니까 그렇지.)

그렇지만 안 그래도 이미 복잡한 세상, 왜 굳이 내가 광고 따위를 보면서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고 싶겠는가? 이러니 내가 광고 및 마케팅 업계를 극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공포 마케팅'의 술수를 이렇게 분석한다.

세균, 치과 말고 마케터들은 또 어떤 두려움을 활용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것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을 수 있다. 영국 배스 대학의 연구원들은 2008년 한 획기적인 실험을 통해 성공에 대한 희망보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소비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성공에 대한 희망은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자극을 주지 못하는 반면, 공포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논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다.

(...) <슬레이트>라는 잡지는 이렇게 지적했다. "도브의 '고 슬리브리스'(데오도란트 광고)는 1920년대에 유행했던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a) 문제를 지적한다. 소비자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b) 그 문제와 관련된 걱정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c)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다." 이 기사는 기업들이 과거에 심어놓은 다양한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들 가운데에는 '입냄새', '겨드랑이 악취', '음부 주위의 트러블' 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종류도 다양한데, "행동과학을 기반으로 브랜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빈 존스턴의 설명에 따르면, 많은 브랜드들은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파노라마식 공포(panoramic fear)'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 "통제 불능 상태가 벌어졌다고 위협하면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소비자들이 시도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이런 광고들이 효과가 좋은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공포, 둘째는 죄의식이다.

죄의식은 특히 엄마를 대상으로 많이 이용해 먹는 방법인데, 나는 특히 이게 여성에게 더 무거운 짐, 어려운 과제를 부과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전업 주부도 애를 키우는 게 힘이 드는데 일까지 하는 엄마라면 더더욱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엄마들을 대상으로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당신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지 않는 셈이며, 그런 당신은 나쁜 엄마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앉았으니 정말 내가 다 화딱지가 난다.

완벽한 모성성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것인데, 그걸 소비를 통해 실현하기를 원하는 브랜드들이 역겹다(반反소비주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다소 뜬금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는 있지만, 이게 바로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다).

스페인의 한 심리학 연구 팀의 연구 결과대로, 여성이 남성보다 죄책감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이런 식의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광고 밑 마케팅 업계는 스스로 어느 정도 윤리적인 선을 지키고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라도 자정 작용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인가?

 

이렇게 이 책에서 밝히는 마케터들의 더러운 술수를 하나하나 다 설명하다 보면 내 속이 터져서 죽을지도 모르지 중간은 스킵하고 맨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 보자.

저자는 <The Joneses(수상한 가족, 2009)>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와 비슷한 실험을 한번 시도한다.

이 영화는, 엄마, 아빠, 아들딸 모두 미남미녀에 완벽해 보이는 한 가족이 알고 보니 진짜 가족이 아니라 각종 브랜드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율을 올리기 위해 파견된 마케팅 팀이라는 내용이다. 나름대로 로맨스도 있고 유쾌한데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다(나는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에 이 영화를 봤고, 이 책을 끝내려고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가 보니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가족을 선정해서, 그들이 이웃과 친구, 동료 등에게 (연구 팀이 선정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사도록 설득하는 데 얼마나 성공하는지를 관찰해 보았다. 그들의 이름은 모겐슨 가족.

이 가족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40대 중반 아버지, 세련되고 매력적이며 유행을 이끌어가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처럼 스포츠를 좋아하며 잘생기고 인기 많은 세 아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각본 없이 생활하면서 이웃이나 친구, 동료 등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연구 팀에게 전달받은 브랜드 제품을 홍보하는 지령을 수행했다.

그 결과는? 모겐슨 가족은 연구 팀이 선정한 다양한 브랜드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고, 주위 사람들은 실제로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서 썼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실험을 통해 구전 마케팅의 엄청난 힘에 깜짝 놀랐다. 사실 그동안 나는 동료압박의 위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령 '모겐슨 가족이 이러저러한 브랜드들을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웃 주민들 중 누구도 그 물건을 사지 않거나, 또는 최소한 한 가지 브랜드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사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이웃들은 모겐슨 가족이 추천했던 것들 중 평균 세 가지 브랜드 제품들을 구매했다'는 결과는 이러한 걱정은 말끔히 날려 주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번 실험이 모겐슨 가족의 실제 소비 패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을 때 에릭과 지나, 그리고 세 아이들은 한 달 동안 떠들고 다녔던 열 가지 브랜드들 중 6개를 계속해서 구매하고 사영하고 있었다.'"

이 실험의 기초가 된 영화에서는 완전히 남남인 사람들을 가족인 것처럼 연기하게 하면서 제품을 팔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한다는 윤리적 문제가 조금 더 개입되지만, 이 실험에서는 애시당초 진짜 가족인 사람들을 데려다가 브랜드를 홍보하게 했으니 그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입소문 마케팅의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간단히 입증됐다. 그래서 저자도 "모겐슨 가족의 위력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상"하며,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모겐슨과 같은 가족들을 고용하여, 특정한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의 제품, 또는 브랜드 전체를 홍보하라는 임무를 내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니까 웃고 넘길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의심하기보다는 '그런가?' 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서 나도 걱정된다.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정말 이런 식으로까지 해야 할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광고 및 마케팅 업계가 적당한 선이라는 걸 알고 지키면서 일을 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밥을 먹듯 자연스러운 일상에 끼어들어 자기네들 돈벌이를 하려고 하니까 그게 불쾌한 거지.

어쨌거나 우리가 생각만큼 현명하고 이성적인 소비자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도 브랜드들은 우리의 지갑을 털어 가기 위해 그 수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이 소비 지상주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이 책을 읽고 광고나 홍보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광고 및 마케팅업계는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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