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윤덕노, <음식이 상식이다>
음식 전문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음식 잡학 사전>을 9년 만에 개정한 판본인 <음식이 상식이다>는 음식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책이다.
음식 문화사는 흥미롭지만 나처럼 맛이 담백하네 어쩌네 하는 묘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마음에 들 것이다.
맛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어차피 우리 주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각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나는 좋았다.
랍스터가 원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음식이었다든가, 토마토는 독이 든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 등은 음식 문화사 책을 좀 뒤적여 봤다면 알 법한 것들이다.
샌드위치나 햄버거처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들어서 알고 있을 법한 음식도 분명히 이 책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들도 많다. 예를 들어 마파두부.
나는 마파두부가 '곰보 아줌마네 두부'라는 뜻인 줄 몰랐다! '마파(마麻婆)', 즉 곰보 아줌마가 만들어 파는 두부(豆腐)라는 뜻이었구나!
마파두부는 청나라 말기 동치제 때 쓰촨성의 중심지인 청뚜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만들어진 지 약 150여 년이나 된다.
19세기 중반에서 후반 무렵 청뚜에 '만보장원'이라는 간장 집이 있었다. 성이 온 씨인 주인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가씨의 이름은 교교였다. 그녀는 어렸을 적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살짝 얽은 곰보였다.
교교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부모는 딸을 이웃마을에 사는 진춘부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온교교를 '진 씨 곰보 아줌마'라는 뜻으로 '진마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진춘부는 청뚜에 있는 만복교라는 다리 옆에서 기름 장사를 했는데, 가게가 다리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동료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그때마다 동료인 기름 장수들하테 식사를 대접했는데 주로 값싼 두부로 음식을 만들었다.
하루는 매일 두부만 먹는 것에 질린 동료 기름 장수들이 식물성 기름을 내놓으며 특색 있는 두부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진마파는 주방에 있던 고추와 두부, 후추, 양고기와 고추기름을 섞어 맵고 얼얼한 두부 요리를 만들어 냈다. 이를 맛본 기름 장수들이 모두 좋아하면서 진춘부의 집에 들를 때마다 그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춘부가 기름을 운반하다 사고로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진마파는 진흥성이라는 밥집을 차리고, 남편 동료들이 즐겨 먹던 두부 요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때가 청나라 동치제 때인 1862년이었다. 참고로 동치제 역시 천연두를 앓다가 죽었으니까 마파두부는 이래저래 곰보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전 판에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책에서 케밥을 소개한다는 점도 놀랐다. 케밥은 대개 젊은 층 위주로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하게 인지도를 얻고 있는 음식 아닌가. 그럼 점에서 센스가 있다고 느꼈다.
요즘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케밥(Kebab)'은 옛날 터키 군대의 전투식량이었다. 케밥은 쇠고기나 양고기 혹은 닭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을 한 후, 막대기에 수직으로 감아 회전시켜 가며 불에 구운 것을 각종 야채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터키의 병사들이 한때 그리스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지방을 공격하면서 야전에서 구워 먹은 고기가 케밥의 유래다.
처음에는 고기를 굽기 위해 칼을 사용했지만 전쟁터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먹기 시작하면서 칼 대신에 꼬챙이나 쇠막대기를 사용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꼬치구이인 '도네르(Doner) 케밥'과 '시시(shish) 케밥'으로 발전했다. 시시 케밥의 '시시'는 꼬챙이라는 뜻이다. 도네르 케밥은 18세기 때부터 발전된 음식으로 L자형 쇠막대기에 얇게 썬 고기를 감아 구운 후 빵에 싸서 샌드위치처럼 먹는 것이다. (...)
이 외에도 '만두'가 '만두 만(饅)' 자에 '머리 두(頭)' 자로 쓴다는 것도 나는 처음 알았다. 원래는 '오랑캐 만(蠻)' 자를 썼는데 같은 발음의 '饅頭'로 슬쩍 바뀌었다.
만두의 유래는 <삼국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중국에서 전국시대 무렵부터 먹기 시작했지만, '만두'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진 것은 삼국시대 때 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러 갔을 때부터다.
촉나라의 재상이었던 제갈곰영이 남만 정벌을 끝내고 돌아가던 중 여수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폭풍우가 몰아쳐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자 현지인이 제갈공명에게 "남만에서는 하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49명의 사람을 줄여 그 머리를 제물로 지내는 풍속이 있다."라며 남만 포로의 머리를 베어 제사 지낼 것을 권했다.
이 말을 들은 제갈공명은 그렇지 않아도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포로를 죽일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두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어둠이 걷히고 바람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이때 빚은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가 남만 정벌이 끝난 후 북방으로 전해져 오늘날의 만두가 됐고,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만두는 '오랑캐의 대가리'라는 엽기적인 이름이지만, 포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하늘을 속여 만든 음식인 만큼 '인간미'가 배어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에는 중국 요리 얘기도 상당히 많다. 전가복이라든지 동파육이라든지 여지라든지 등등. 저자가 중국에서 외국 생활을 해 봐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중국 요리를 많이 먹어 본 적 없지만, 중국어를 배우거나 중국 문화를 알고 싶은 분들이 보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책에 설명된 유래 중 틀린 것이나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대 희랍의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Herodotos)'를 계속 '헤르도토스'라고 잘못 표기하는 것이나(국어 사전을 봐도 분명히 '헤로도토스'라고 표기돼 있다), '호메로스(Homeros)'의 <오뒷세이아(Odysseia)>를 영어식으로 '호머(Homer)'의 <오딧세이(Odyssey)>라고 표기하는 게 거슬렸다. 희랍 사람인데 왜 영어식으로 써요?
그리고 '샥스핀'은 'shark's fin'인데 'shark's pin'으로 두 번이나 잘못 썼더라. 이런 오류는 수정되면 좋겠다.
맛 묘사 없이 여러 음식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살펴보시면 좋을 듯하다. 리디셀렉트에서 제공되고 있으니 이 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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