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책 감상/책 추천]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리디셀렉트에서 읽을 수 있는 신간 중에서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게 됐다.

서른 살인 저자는 4년간(현재 진행형이다) 어머니와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라는 꿈만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어서.

그래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같이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한 사람 몫의 밥벌이를 하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스물일곱 살에 이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고 (저자의 말마따나)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편견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했고 독립 출판으로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만화를 출간했다.

 

사실 20대이자 30대이면 번듯한 회사에 다니며 예쁘게 꾸미고 싶기도 하고, 자신의 '커리어' 개발에도 매진할 나이이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먹고살기'를 위한 청소일과 '자아 실현'을 위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직.

저자의 말에 따르면 청소일에 따른 벌이는 적지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니 다행이지만 사실 나라면 선뜻 그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흔한 질문을 받을 때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일.

솔직히 나는 어머니가 직장 동료인 것도 나는 부담스럽고(다행히 저자는 어머니와 아주 좋은 사이인 것 같더라), 무엇보다 청소일 같은 노동은 몸이 재산 아닌가.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하긴 하지만, 그래도 '운동'과 '노동'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게다가 보통 직장에서는 아프면 하루라도 쉴 수 있지만(연차나 무급 휴가를 사용해서), 청소일엔 그런 게 없다. 아파도 일해야 한다.

분명히, 많은 사람이 쉬이 선택하지 못할 노동 조건의 일인 건 분명하다. 물론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고.

하지만 나라면 일이 힘든 것보다는 역시 주변의 시선, 사회의 편견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도 그렇게 말하고.

 

이 책에 보면 독립 출판으로 책도 꽤 팔고(1천 부 이상 나갔다고) 조금 알려져서 삽화 의뢰라든지 강연 제의가 들어온 이야기도 실려 있다.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더니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라는 질문이 들어왔다고.

저자는 이 꼭지의 만화에 이렇게 썼다.

"저는 이기지 못했어요.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 마음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 이기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신경은 쓰였지만 견뎠던 것 같아요. 아니라고 말한다고 정말 신경 안 쓰이는 게 아니란 걸 여러 번 겪으면서 말이죠. 근데 어떡해? 난 계속하고 싶은걸. 

그래서 전 이김보단 견딤을 택했어요.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선택을, 하지만 이기질 못한다면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가지고 견뎌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멋짐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어쨌든 결론적으로! 시선 때문에 포기하진 마세요! 파이팅!"

 

우리는 어릴 적부터 직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바탕으로 고르는 것이고, 직업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거나, 거기에서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일은 일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해도, 그 '일'이 우리의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서른네 번째 <돈으로 살 수 없는 감정들>이라는 꼭지에서 저자가 쓴 글 부분만 모아 보겠다.

"청소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었지만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안 기뻤다.

예쁜 옷, 구두가 채워 주지 못했던 감정. 그건 바로 '자기 만족감'이었다.

왜 만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반복적인 노동은 다람쥐 쳇바퀴 같았고, 그 노동의 근원인 그림이 자리를 잡지 못해니 목적 없는 레이스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림으론 생계가 어려우니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오로지 생계만 눈앞에 남은 거지.

물론 생계도 아주 중요하지만, 삶의 목적이 희미해지는 건 생각보다 위험했다.

내 안의 인정 욕구와 자존감은 목적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고, 나의 성취로만 얻을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그러니 단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이럴 때 자주 인용하는 만화(그리고 동명의 영화) <디트로이드 메탈 시티>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내가 잘하는 일'이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냐? 그 두 가지가 다르지 않고 한 가지거나 또는 적어도 비슷하면 좋으련만.

때로는 그 두 가지가 너무나 달라서 인간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최근에 삶이란 이상과 현실, 남과 여, 이성과 감성 같은 대립항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고백컨대 일에 그다지 열정적이었던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해 봤지만, 노동 조건이라든지, 직장 내의 인간관계라든지 하는, 일이 아닌 외적 조건 때문에 '완벽한' 직장을 찾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물론 돌이켜보면 '아, 그 정도면 참 괜찮았는데...' 싶은 곳이 여럿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짓이고, 또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은 비록 아르바이트라고 할지라도 내가 지금껏 다닌 어느 곳보다 더 마음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진심으로 감사한다.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없고, 일도 단순하며 내가 집중만 하면 시간도 잘 가는 곳.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인터넷에서 본 짤대로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말을 외우고 다녔는데, 이제야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간에 중요한 건 그걸 대하는 내 태도가 전부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제일 인상 깊은 만화는 서른여덟 번째, <선택의 기로>였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저자가 '선택의 문'을 세 가지 두고 고민하는데 1번 문을 고르니 그 안에 또 문이 있다, '누군가 선택한 방', '친구가 선택한 방', '알 수 없는 방' 등. 

'안전을 추구하는 방', '친구가 들어간 방', '누군가 들어간 방', 등등 저자가 결국 고른 것은 '흥미를 추구하는 방'.

마지막 컷은 안색이 파래진 저자가 "이건 또 뭐야?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추측컨대 그 방 안에는 또 여러 가지 방이 이어졌을 것이다. 인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연속이니까 말이다.

 

이 좋은 책이 내게는 나의 일과 일의 의미, 일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