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대니얼 네틀, <성격의 탄생>
심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저자의 책. 책 뒷표지에는 "좋아할 수 없는 '자신'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보고서"라고 이 책을 광고하고 있는데, 나는 타인보다는 일단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1장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성격 진단표'가 제시돼 있다.
이는 정말 단순한 12문항만으로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라는 5대 성격적 특성의 수치를 평가하는 진단표이다.
"이렇게 짧고 간단한 12문항만으로 성격을 평가할 수 있다고?" 싶지만 이 표는 뉴캐슬 대학교에서 개발한 평가 도구 중 하나로, "훨씬 긴 평가 문항만큼이나 정확하고 분석적이며 유용하게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는 데 5분 정도밖에 안 걸리니까, 한번 해 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성격이 각 성격 특성의 스펙트럼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를 파악하고 나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에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건, 저자가 '최고로 좋은 성격이나 최악으로 나쁜 성격 따위는 없다, 각각의 성격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긍정적인 메시지는 여러분의 기본적인 성격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5대 성격 특성은 모두 그 수치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더 좋거나 더 나쁜 성격이란 없다(각 수치가 중간 정도라면 특별한 장점은 없겠지만 특별한 단점도 없다. 따라서 이 경우도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이 물려받은 성격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행동 패턴을 찾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여러분의 성격은 버려야 할 저주가 아니라 자기 계발의 토대가 되는 소중한 자원 ―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기만 하면 ― 이다.
예컨대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외향성이 두드러진 사람들을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각각 외향성이 높은 사람과 내향성이 높은 사람의 실제 삶 이야기를 제시하며 각각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한 외향성의 수준에 따라서도 인생은 달라진다.
이런 역동적인 변동성이 바로 이 책의 핵심 주제와 맞아떨어진다.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나쁜 외향성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수준이란 없다. 나는 에리카의 삶이 앤드루의 삶보다 가치 있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성격은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부분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말미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유혹적이긴 하지만, 나의 외향성이 지금보다 더 높거나 낮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1777년에 태어났거나, 혹은 파푸아뉴기니에서 태어났기를 바라는 것처럼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1970년 지금의 외향성 수치를 갖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낮은 외향성 수치가 그렇게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앞에서 말한 성격 진단표에서 신경성이 중상 수준으로 나왔다.
저자는 공포, 걱정, 모욕감, 죄책감, 혐오,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의 설계 특징을 화재경보기에 비유한다.
화재경보기는 불이 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화재경보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오작동될 수 있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도 경보가 울릴 수 있으며(거짓 양성 반응false positive), 불이 났는데도 경보가 울리지 않을 수 있다(false negative). 거짓 양성 반응의 결과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지만, 거짓 음성 반응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화재경보기 센서를 조절할 때, 이따금 잘못된 경보를 울리는 한이 있어도 불이 나면 '항상' 경보가 울리도록 센서의 화재 감지 수준을 민감하게 설정해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
부정적인 감정이 화재경보기 같은 것이라면,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센서를 아주 민감하게 조절해 놓은 화재경보기와 같다. 한 모집단을 통해 '쓸데없는 걱정'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았다. Y축을 사람 수, X축을 쓸데없는 걱정의 정도(비율)로 했을 때, 종 모양의 그래프가 만들어진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그 종의 꼬리 부분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가장 많은 사람이 속한 그룹의 쓸데없는 걱정의 비율이 80퍼센트라면, 신경성 수치가 높은 그룹의 쓸데없는 걱정의 비율은 99퍼센트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정말 사소한 걱정거리를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고 불안함이 높은 성격인지 나 자신을 자책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울증에 관한 이 부분을 읽고는 기분이 조금 더 심란해졌다.
왕왕 사람들은 내게 우울증이 성격 탓인지 환경 탓인지 묻는다. 이는 홍수가 물의 고도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땅의 고도가 낮아서인지 묻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종종 인생살이 때문에 우울증이 촉진된다. 따라서 누구든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우울증에 걸리지만, 어떤 사람은 훨씬 작은 스트레스로도 우울증에 걸린다. 신경성 수치를 통해 일상적인 어려움이나, 더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 부정적인 반응의 크기 ― 를 예측할 수 있다. 신경성 수치가 매우 높은 사람은, 수치가 낮은 사람조차 인식조차 못하는 사소한 위협에도 크게 반응한다. 따라서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고도가 낮은 땅에 살고 있어 수위가 약간만 높아져도 홍수를 겪는 사람과 같다(부정적 감정이 촉발되는 감정역이 낮고, 따라서 우울증에도 그만큼 취약하다).
저자는 "모든 성격에는 좋은 점(혜택)과 나쁜 점(비용)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지 중 하나다"라고 쓰고 있고신경성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며,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는 것은 사실,우리 몸과 마음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 주장에는 물론 공감할 수 있고,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의 활동역이 어떤 수준이 좋은가" 하는 것이다.
아주 낮은 사람은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위험한 일을 시도할 정도로 더 위험하단다. 실제로 숀 이건Sean Egan이라는 학자가 '고위도(해발 5,364m) 성격 연구'라는 연구의 일환으로 산악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산악인의 신경성 수치는 일반인보다 훨씬 낮았다고 한다.
등반가들의 용기를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은 신경성 수치가 낮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다분히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와 유사하게, 신경성 수치가 낮으면 경찰이나 군인 업무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직업은 상대적으로 사망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신경성 수치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그런 성격 때문에 위험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실제로 유익한 신경성의 혜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결과가 보통은 매우 부정적이라 해도 ― 예를 들면 기분 장애자의 사회 경력에 ― 기분 장애자 중에는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 특히 많다. 즉, 최소한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 중 일부는 높은 신경성 때문에 뭔가를 이룰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작가, 시인, 예술가들의 우울증 비율이 대단히 높은데, 이는 이들의 신경성 수치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경성 때문에 이들이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따라서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다양한 영역, 특히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관련된 영역에서 혁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심하게 좌절하지 않는 한 ―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신경성이 노력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일중독자, 특히 재미나 사괴적 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은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나도 이런 신경성 때문에 대학 시절 높은 성적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를 괴롭힐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든 맘 편하고 행복한 게 최고인데...
내가 이렇게 불평할 걸 네틀 선생님도 아셨는지, 마지막 9장에 이렇게 쓰셨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자신의 성격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신경성 수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성 수치가 높으면 모든 것을 고통으로 느끼기 째문이다. 다른 성격 특성의 경우, 그 수치가 낮으면 삶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그런 영향을 무시해 버린다.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과 달리, 그런 영향에 신경을 쓰거나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정도를 나타내는) 신경성 수치가 높기 때문이다. 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높은 신경성에도 장점은 있다. 그러나 높은 신경성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무시무시한 고통을 안겨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신경성 수치가 높은 경우 부정적인 감정에 그저 굴복하기보다는 '역방향' 행동 전략을 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 네...
너무 불평만 한 거 같으니,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성격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의 예시를 간단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여러분이 환경 운동에 관심이 있는데, 직접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서 환경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에는 수줍음도 너무 많이 타는 내향적 성격이라고 치자.
그러면 여러분은 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조용히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아니면 여러분이 젊은 시절을 힘들게 살았떤 개인적인 경험을 갖고 있기에 젊은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 보자.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의 친화성이 낮다는 것이다. 자원봉사나 상담은 여러분에게 맞는 일이 아니다. 상담이 매우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여러분에겐 지루하고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친화성이 낮으면 어려운 걸정을 내릴 수 있는 단호한 조직가가 될 수 있다. 여러분은 평범한 상담가가 아니라 조직 관리자가 됨으로써 젊은이를 돕는 대의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성격에 따라 개인이 가진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저자는 성격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음, 맞는 말이다.
나도 신경성이 높다는 점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머지 내 성격의 강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좋아하고 싶다면 일단 기본 5대 성격 특징에 관한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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