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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언 레슬리,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by Jaime Chung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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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언 레슬리,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미드 <하우스(House M.D.)>의 태그라인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인간이 하는 '거짓말'을 여러 각도에서 다룬다.

일단 기본적이고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짓말부터 시작해 동식물의 거짓말, 어린아이들의 거짓말, '솔직한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병' 즉 작화증(confabulation, 말짓기증) 등등 '거짓말'과 관련한 여러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말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다루듯이, 거짓말을 밝혀내는 것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거짓말쟁이를 잡아내는 일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매우 솜씨 좋은 거짓말쟁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숙련된 거짓말쟁이는 스스로 누설하는 것(혹은 통념적으로 누설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알아내고, 그런 것을 피하도록 자기 자신을 가르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한다고 추정하는 사람보다 항상 거짓말쟁이를 경계하는 사람을 면접관으로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에서 인용하는 연구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임을 입증한다.

(...) 그 결과 신뢰자들이 거짓말하는 사람을 찾아낼 가능성이 냉소자들보다 상당히 높았다.

 

이런 결과는 직관과는 반대로 신뢰자가 냉소자보다 덜 속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다른 사회과학자들의 과거 실험 증거와 일치한다. 그 이유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이들은 이미 알고 있고 신뢰하는 좁은 범위의 지인들 외에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최소 상태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학자 도시오 야마기시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사회적 위험'을 덜 감수한다. 이는 그들이 다른 사람 ― 최소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 을 상대한 경험이 적으며, 따라서 의도와 동기를 읽어내는 경험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1901년, 프로이트는 "인간은 비밀을 지킬 수 없다. 입이 침묵하면 손가락 끝으로 조잘거린다. 모든 구멍에서 배신이 스며 나온다."라고 썼다.

거짓말 탐지기에 관한 장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인용구가 아닐 수 없다.

거짓말 탐지기의 효과를 여러분이 얼마나 믿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 탐지기가 100%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거짓말 탐지기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빨라진 맥박과 증가된 심박수는 죄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으며, 숙련된 조작자가 함께한다면 그 기계는 높은 성공률(숙련된 조작자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에임스의 말이 옳다. 거짓말 탐지기가 지닌 유효성의 상당 부분은 그 자체가 거짓말 ― 결코 오류가 없다는 거짓말 ― 자체에 토대를 둔다. 거짓말 탐지기의 주된 결점은 전적으로 믿을 만한 거짓말의 생리학적 신호가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가 측정하는 모든 증상은 수많은 정직한 사람이 같은 테스트에 직면할 때 느끼는 단순한 초조를 포함해 다른 원인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장에서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짓말 탐지기를 연구하기도 한, '원더 우먼' 캐릭터의 창시자 윌리엄 몰튼 마스턴도 언급된다(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에 링크한 영화와 책 리뷰도 한번 참고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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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이 부정확해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말, 즉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그건 어떨까?

예컨대 어떤 사건을 조사한다고 할 때, 목격자의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라는 심리학자는 지적이고, 사리분별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뭔가를 기억한다고 맹세한다 해서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뜻하는 것응 아니라고 증언하기 위해 배심원 앞에 서곤 했다.
로프터스의 초기 발표 논문 중 하나는 자동차 사고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교통부를 위해 실시된 연구에 기초했다. 그녀는 연구 대상자들에게 차가 충돌하는 비디오를 보여 준 뒤, 그들에게 무엇을 봤는지 동일한 질문을 동사만 달리해 물어봤다. 로프터스가 연구 대상자들에게 차들이 서로 '부딪쳐 박살smashed'이 났을 때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어보면, '접촉contacted'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보다 상당히 더 높은 속도가 나왔다. 그녀의 질문이 답을 왜곡시킨 것이다.
로프터스는 우리가 기억을 정보 저장의 한 형태로서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매우 부적절하며, 이는 우리의 법 체계 운용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게 됐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 즉 '자기 기만'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그런데 자기 기만이 항상 나쁜 것일까? 우리는 정말 폴로니어스(Polonius,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 오필리아(Ophelia)의 아버지)의 "너 자신에게 항상 진실하라(to thine own self be true)"는 조언에 귀기울여야 할까?

스타레크와 키팅이 두 번의 테스트에서 얻은 합상 점수를 수영선수들의 시합 성적과 대조하자, 자기를 속이는 경향과 전국 선수권 대회 참가 자격 사이에 분명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잘하는 수영선수들은 큰 시합에서 일관되게 더 빠른 기록을 거뒀다. 후속 논문에서 스타레크는 자신과 다른 심리학자들이 '자기 기만self-deception'이라고 부른 것을 스포츠 코치들은 '선수권 대회 사고championship thinking'로 부른다고 언급했다.
자기 기만과 성취 간의 밀접한 관련은 운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학교나 사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직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이 될 뭔가를 믿는다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한다. 미국 학생들에 대한 어떤 연구는 면접에서 자신의 평균 점수를 부정직하게 과장하는 학생들이 나중에 자기가 주장했던 수준까지 점수를 향상시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쯤 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또는 '생각이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 참이 아니라고 믿기가 오히려 어려워진다.

 

'거짓말'에 대한 여러분의 원칙은 무엇인가? 거짓말은 언제나 나쁘다? 아니면 '하얀 거짓말'은 허용된다?

예컨대, 명백히 플라시보인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할까?

의사가 어떤 약이 환자의 상태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환자의 회복을 촉진하길 바라며 그 약을 처방한다면 과연 환자를 속이는 것인가? 그 의사는 물론 전적으로 정직하지 않다. 만일 그랬다면 "제가 드리는 약에는 당신의 증상을 낫게 하는 활성 성분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뭔가 믿을 게 필요하고, 이 약이 그것을 도와줄 것입니다"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환자를 회복으로 이끌어줄 효과를 손상시키게 된다. 반면 그는 노골적으로 속일 필요도 없다. 브라운 대학의 임상심리학 교수 월터 브라운은, 의사들은 때때로 환자들에게 자기가 주는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과 같은 질환을 가진 많은 사람이 이 약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말로 거짓말이 언제나 악일까? 당신이 유대인을 집에 몰래 숨겨 주었는데 나치가 당신네 집 문 앞에 와서 '유대인을 숨겨 주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때에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일까?

거짓말에 관해서라면, 칸트는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동의했다. 그것은 늘, 어디에서나, 예외 없이 잘못된 것이었다.

칸트의 주장의 근본은 개인의 존엄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 ― 살인자라 할지라도― 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칸트는 만약 우리의 친구가 살아남았다면, 그가 우리와 계속 친구로 지내길 원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거부하면 당신은 그들의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인간성은 우리 중 최악의 사람에게도 부여해야만 하는 자질이다. 그뿐 아니라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인간성을 더럽힌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확고한 원칙주의는 참 오랜만이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권 보호를 위해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살인자에게도 진실을 말하라는 이 과격함에는 솔직히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하얀 거짓말은 우리가 일상의 사회 문제에 바르는 반창고다." 그러니 내가 거짓말을 해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난 기꺼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또 그게 당연히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용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서양과 동양 사이에는 거짓말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이 내용은 좀 뻔할 수 있으니 굳이 인용하지 않겠지만 이 책은 그런 점도 다룬다는 것만은 밝혀 둔다.

 

거짓말에 대해 문화적, 사회적, 범죄학적 등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흥미롭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거들떠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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