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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빅투아르 도세르, <죽을 만큼 아름다워지기>

by Jaime Chung 201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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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빅투아르 도세르, <죽을 만큼 아름다워지기>

 

 

저자는 실제로 파리 패션 위크, 밀라노 패션 위크 등에서 여러 패션 브랜드에 런웨이에 선 전직 모델 출신이다.

그녀는 열여덟 살 때 길을 가다가 우연히 캐스팅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모델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 그녀는대입 준비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그 제의를 받고 '만약에 지원한 학교에 떨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엘리트(Elite)' 모델 에이전시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옷 안에 들어가기 위해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다이어트를 하고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나날들이.

그녀는 책 첫머리 '들어가며'에 모델으로 지냈던 세월을 이렇게 묘사한다.

외로움.

냉소적이고 비열하고 길을 잃어 방황하고 망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모두가 아름다운 그곳에서 보기 흉하고 해골 같고 구역질나게 못생긴 모습. 화려한 조명과 파우더와 부드러운 모피와 실크와 인조 보석과 레이스와 새틴과 섬세한 가죽과 18센티미터 하이힐로 장식된 죽음.

나를 잡아먹을 뻔했던 죽음.

 

모델 일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키는 178센티미터에 58킬로그램이었고, 55사이즈를 입었다.

물론 모델이 되려면 44사이즈, 때로는 33 사이즈의 옷 안에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하루에 사과 세 알을 먹는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18센티미터 힐을 신고 워킹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가 원하던 학교에서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오자 그녀는 "운명에 이끌려온 이곳에서 성공하는 것 말고는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다며, 모델이 되기를 정식으로 선택한다.

 

처음에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마음속의 어떤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만 먹어, 살쪄. 그만 먹으라니까"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체중 조절을 위해 과일이나 찐채소 정도만을 자신에게 허락했던 그녀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서도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까다롭게 굴어서 그날 밤 분위기를 망쳤다고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과한 식이 조절과 그로 인핸 자아상의 변화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 특히 동생과의 관계도 변화시킨다.

그 전까지는 두 동생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그녀가 마르면 마를수록, 더욱 말라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수록 동생들도 그런 누나의 변화를 인지하고 힘들어했다.

 

게다가 모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옷걸이' 취급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모델을 뽑는 캐스팅 담당자나 디자이너는 모델들을 손짓으로 부렸다.

디자이너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미팅에서도, 슈팅 시즌에 캠페인 사진을 찍을 때도, 모델들은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고 사람들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또한 패션 쇼에서 모델들이 옷을 입는 걸 도와주는 일을 하는 '헬퍼(helper)'는 빅투아르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오히려 놀란다. 보통 모델들은 헬퍼들을 완전히 신하 부리듯 막 대하고 무례하기 굴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는 이런저런 미팅이나 패션 쇼에 참석해 다른 모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처음에 그녀가 캐스팅되었을 때는 같은 숙소를 써야 했던 다른 두 소녀와 전혀 잘 지내지 못했다. 그녀는 날씬하고 다른 두 소녀는 (캐스팅 에이전트 눈에) '충분히 날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모델 일을 하면서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너무나 외로웠다. 아래 인용문은 다른 모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빅투아르가 느낀 점인데, 화려한 패션계에서 그녀가 느낀 공허함을 잘 보여 준다.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됐는데, 이미 이 바닥에 대해 알 만큼 다 알아서 신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모델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외로움이라고 했을 때, 내 외로움도 덜어지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외롭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빅투아르', '허니', '스위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슈팅 시즌이 되어 사진작가와 작업을 하게 된 빅투아르는 방금 촬영한 사진을 보정하는 사진작가를 보며 아이러니한 사실을 하나 깨닫는다.

에이전시로 가기 전에 포토그래퍼가 보여준 내 사진을 확인했다. 이어서 보정 작업이 진행됐다. 그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니 내 볼과 허벅지, 가슴에 살이 붙었다. 가슴뼈를 지워 예쁘게 파인 네크라인도 만들어주었다. 이 바닥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모델들이 선택받기 위해 살을 빼고 또 빼면, 그들이 나중에 마음대로 살을 가져다붙이는 거야

보정 전후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살을 조금씩 붙인 내 모습이 더 예뻤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또한 슈팅을 준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모델이 꿈인 여동생이 있다'고 수줍게 말을 꺼내자 그녀는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겠다.

"아, 안 돼!" 고민할 시간도 없이 저절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 이유도 마찬가지로 그냥 흘러나와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직업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얼마나 힘든지, 우리를 어떻게 물건 다루듯이 하는지, 1그램이라도 찌지 않으려고 먹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강박이 생기는지,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냉소, 공격적인 다른 모델, 경쟁, 외로움, 끝없는 대기 시간을 대가로 얼마나 미미한 것을 얻는지 이야기했다. 그녀는 꽤 놀란 눈치였다. 촬영하는 동안 내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모델 일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누군가를 이토록 확신에 차서 끈질기게 만류할 정도였다니, 이제 진짜 내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시간이 되었구나.

 

결국 그녀는 1년간의 모델 계약도 마치지 못하고 모델 일을 접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늘 하고 싶었던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9월에 나는 '모두가 기대'하는 뉴욕 패션위크가 아니라 소르본느에 가서 철학과 학사 1학년 수업을 들었다. 이듬해 쿠르 플로랑 연극학교에 들어갔다. 그다음 해에는 로햄프턴 대학에서 연극학 학사를 마치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나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다. (...)

이제 더 이상 춥지 않다. 생리도 규칙적이다. 짜증도 줄었다. 내가 뇌 속에 정보만이 아니라 연극과 문학을 집어넣으면서부터 뇌도 훨씬 더 잘 작동한다. 나는 큰 대가를 치르면서 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포도당과 비타민 B1, 오메가스리 지방산, 철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모두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섭취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나와 음식의 관계는 뇌도 어쩌지 못해 여전히 까다롭고 복잡하다. 폭식한 뒤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다시 폭식을 한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하다.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이제 내 삶은 오롯이 나의 것이니까.

 

패션이나 모델계, 심지어 프랑스에도 전혀 환상이나 관심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죽을 만큼 아름다워지기>라는 제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자체 발광하는 것 같고, 모든 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패션계의 모델들이 겪는 거식증이라는 치명적인 문제, 패션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보여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원래 <살 빼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죽을 만큼 아름다워지기>는 그 전작의 개정판이다.

이전 제목도 괜찮지만 <죽을 만큼 아름다워지기>는 거식증의 치명적 결과를 잘 나타내서 정말 잘 지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책 뒤쪽에 저자 빅투아르 도세르의 사진이 몇 장 실려 있는데, 전혀 거식증 환자나 너무 마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보정하지 않은 그냥 사진인데도 말이다. 사진이라는 게 얼마나 실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부해 보이게 만드는지 충격적일 정도다.

특히 갈비뼈가 도드라진 걸 볼 수 있는 수영복 정도의 차림이 아니라면, 그냥 몸을 웬만큼 가리는 옷을 입은 상태라면 더더욱 '말라'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키가 178센티미터인 사람의 체중이 50킬로그램 이하였으면 심각하게 마른 정도였을 텐데.

이래서 사진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거구나,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분명하게 보여 줄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저자가 몸소 체험한 거식증의 위험성을 잘 드러냈으니 이 책을 읽고도 거식증이 멋있는 건 줄 아는 사람은 없겠지.

패션과 모델에 대한 환상, 동경이 있다면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 보라고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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