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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by Jaime Chung 201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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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제목부터 공감 100%!

저자는 회사 생활 5년 차에 자신은 '회사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리 잡기까지 순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저자는 희망을 가지고 이 시기를 버텨 낸다.

이 책에는 그 시기를 지나온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얼마나 솔직하냐면, 자신이 처음 번역가로 시작할 때 받았던 단가까지 공개할 정도다!

'아니,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뭐, 장기적으로 업계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정보는 공개되는 게 좋으니까. 게다가 이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일 테고 말이다.

 

책 제목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법한 생각을 호소하는 이 단락에서 나왔다.

물론 내 눈에 너무나 모순적으로 비쳤던 그 모든 절차와 체계에서 분명히 존재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실제로 내가 거쳤던 모든 회사들은 그 시스템 속에서 잘만 굴러갔다. 하지만 나는 괴로웠다. 내 인생이 괴로운데, 당사자인 내게 이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민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규모나 업계, 업무의 성격과 관계없이 비슷한 성격의 괴로움을 느낀다면, 나는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게 아닐까? 한마디로 '회사 체질'이 아닌 것 아닐까?

 

책 군데군데에 저자가 그린 만화가 삽입돼 있는데, 그중 제일 내 마음에 드는 건 이거다.

첫 번째 컷: 면접장. 한 면접관이 묻는다. "취미에 요리라고 썼던데, 그 취미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죠?"

두 번째 컷: '내면'이라는 글자와 함께 물음표를 띄운 메리 캐릭터 그림. 단정한 면접 복장을 입고 앉아 의문스러운 눈으로 생각한다. '취미에서 누가 교훈을 얻어?'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건데' '취미가 뭔지 모르나 이거 바보 아냐

세 번째 컷: '현실'이라는 글자와 함께 '횡설수설'하는 메리 캐릭터 그림. "어­… 그게…요리를 하면서…' '다양한 재료들의 조화를…추구하고…"

네 번째 컷: 면접이 끝난 후 가방을 한쪽에 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메리 캐릭터 그림. '완전 망했어…다음부턴 거짓말을 좀 섞더라도 뭔가 그럴듯한 취미를 적어야지'라고 쓰여 있는 메리의 생각 풍선에 화살표가 쳐져 있고 그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진짜 취미를 점점 잊어버리는 이유가 아닐까?'

정말이지, 취미에서 무슨 교훈을 얻어.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재미있으니까 하는 일에서도 뭔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입하니까 사람들이 점점 취미를 멀리하게 되는 거 아니겠느냐고.

이런 면접관 같은 사람들은 정작 취미란 게 있기나 할까? 그리고 자기 취미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까?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 시작을 위해 번역 아카데미에 다니기 전, 조금 남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저자는 아침에 8시쯤 일어나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모닝 세트'를 시켜 먹는 게 그렇게 꿀맛이었다고.

또한 마트에서 장을 봐서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해 보는 것도 소소한 삶의 행복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그저 마냥 걷기도 하고. 아래 문단은 걷기가 주는 즐거움을 잘 묘사해서 읽는 나까지 걷고 싶어진다.

가끔씩 약속이 잡힌 날에는 운동화를 신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갔따. 집에서 도보 1시간 반 정도 거리인 망원동이나 한남동 정도는 망설임 없이 걷기를 택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내가 가장 아까워하던 자원은 바로 시간, 그중에서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운전면허가 없던 나는 늘 버스와 전철, 택시 중에서 조금이라도 이동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교통수단을 택했고, 행여 그 선택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가는 내내 세상을 잃은 듯 우울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효율 따위는 접어 두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이동 방법을 택한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두 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지금껏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거리의 풍경을 새삼 깨달았을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쫓기듯 살면서도 내가 원했던 행복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고, 저렴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주 사치스러운 행복.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수록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최대한 빠른 루트를 검색해 이용하거나 아니면 책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려 노력한다.

그런 것도 나름대로 좋지만, 그냥 걸으면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가. 삶의 아주 작지만 소중한 즐거움이니 말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단에 정말 공감했다.

 

이 책은 정말 프리랜서를 생각 중인 이들에게 꿀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 저자가 자신이 그림이나 요리, 번역, 편집디자인, 핸드메이드와 관련해 참고했던 서적들도 공개하고, 심지어 대략적인 번역 단가도 밝힌다(원고지 1매에 최저 3,500원 정도란다).

저자가 주는 충고는 아주 실용적이다. "프리랜서에 도전하려면 퇴사 전에 최소 3개월 먹고 살 돈은 미리 마련해 둬라"라고 하는데 "이 조언은 적어도 프리랜서 초보(?)에게는 틀렸습니다!"라며, "최소한 1년 먹고 살 돈은 마련해서 퇴사하세요!"라는 식이다.

"프리랜서의 대금 정산일은 보통 익월 말일이므로, 퇴사 후 3개월 만에 수입이 들어왔다는 것은 퇴사 전에 이미 일을 받아서 나왔다는 뜻", 즉 "원래 일하던 분야에서 그대로 독립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저자가 꼽는,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자질 첫 번째는 체력("앉아만 있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기 쉽거든요"), 두 번째는 원만한 사회 생활 능력("일의 성격이 아무리 창의적이라도, 그 일을 주는 건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강철 같은 멘탈"("몇 개월쯤 일이 끊겨도 초연하게 버틸 수 있어야 하죠. 솔직히 이 자질이 있으면 나머지는 좀 부족해도 될 정도예요")이다.

저자가 제시해 주는 다른 조언들도 주옥 같으니 프리랜서 지망생이라면 정말 꼭 읽어 보셔야 할 것 같다. 그 정보를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팁을 적자면, "부디 사표를 던지기 전에 금융 생활을 꼼꼼하게 점검하며 단 1%라도 필요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혜택과 상품을 하루라도 더 연장해 두길 바란다". 

왜냐하면 "프리랜서의 금융 생활이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4대 보험 유무는 업무 처리 속도를 10배쯤 높여 주"기 때문이다. 이 점 반드시 기억하시라!

 

저자는 직장을 관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 학원도 다니고, 첫 일감을 받기까지 기다린 날도 상당히 길었다. 첫 일감을 받고 나서도 다음 일까지 이어지기까지도 좀 시간이 있었고.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될 테니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여튼 프리랜서 생활이란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기다림을 버티기 위해, 또는 기회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블로그 운영이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조금씩 블로그에 쌓아 가다 보면 적어도 그 분야를 다룬 책을 계약할 때만큼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위안"을 받았고 가볍게 매일 일상툰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후에 그렇게 올린 일상툰을 통해 저자의 첫 일감을 따내게 되었으니, 저자에겐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뭐든 일단 시작해 결과물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엔 그게 새로운 기회로 가는 문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믿음이 샘솟이 않는가. 우오오오. 멋져라.

저자 말대로, "도전하는 분야와 다른 특이한 전공이나 경력은 당연히 그 자체로 플러스 알파가 되고 소소한 취미 생활 또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만화 그리는 공대생, <야·공·만>의 맹기완 작가님이나 국문과 전공의 <순정만화> 원작자 강풀 작가님처럼.

(<야밤의 공대 만화>는 놀랍게도 내 블로그에서 리뷰한 적이 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

2019/05/0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맹기완, <야밤의 공대생 만화>

 

[책 감상/책 추천] 맹기완, <야밤의 공대생 만화>

[책 감상/책 추천] 맹기완, <야밤의 공대생 만화> 인터넷에서 한 번쯤 보셨을 거다. 저자가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스누라이프'에 처음 올렸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연재를 시작했고, 결국에 출판까지 된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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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저자가 프리랜서 생활 초기에 실제로 들은 조언대로, "뭐가 됐든 프로필에 일단 쓰세요! 건강 서적을 준비 중인 출판사라면 하다못해 등산 동호회에서 활동한다는 번역가에게 더 눈길이 가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과 관련돼 있기도 하고 내게 심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을 잠시 옮겨 보고자 한다.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날들은 매일같이 이런 자기 혐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체질'이라는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자 내가 그토록 불행했던 이유들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호히 말하건대, 체질은 잘못이 아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너는 어째서 복숭아를 만지면 두드러기가 나느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만약 그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해야 한다면 당연히 남들보다 훨씬 힘이 들고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그의 잘못이 아니며, 성격이나 능력이나 인내심의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개인의 체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하는 방법밖에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쳐 찾아낸 근거를 바탕으로,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를 가진 채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불행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프리랜서를 꿈꾸는 분들, 특히 책 번역을 목표로 하신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시는 게 현실적인 정보 면에서나 프리랜서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작정 프리랜서를 시작하라고 부추기지도 않고, 그저 친절하고 자세하게 '프리랜서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꼼꼼하게 설명해 주며 독자가 과연 자신이 이 삶과 맞을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프리랜서 생활에 대해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아래의 책도 추천하니 한번 읽어 보시라.

2019/03/0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신예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책 감상/책 추천] 신예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책 감상/책 추천] 신예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지난번 리뷰를 쓴 책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나 싶지만, 요즘 리디셀렉트가 콘셉트를 이렇게 잡았는지 이런 류의 책이 연달아 있길래 비슷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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