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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베른트 브루너, <눕기의 기술>

by Jaime Chung 201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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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베른트 브루너, <눕기의 기술>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은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눕기'에 관한 문화사른 다룬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는 눕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별다른 순서 없이 늘어놓는다. '눕기'와 '자기'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마다 다른 눕기의 개념과 가구의 차이 등등.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지금 누워 있는가? 그렇다면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눕지 않을 수 없고, 종종 간절히 눕고 싶어지니 말이다. 누운 상태만큼 편안한 자세가 어디 있겠는가? 눕는 것은 신체에 가장 저항이 적게 주어지는 자세이며 가장 힘이 덜 드는 자세이다. 우리는 누운 자세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슬픔이나 그리움에 잠기고, 백일몽을 꾸고 고민을 할 수도 있다.

 

누우면 기분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눕는 자세 및 행위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위쪽(실내에서는 천장, 야외에서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움켜쥐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며, 우리의 생각 또한 부유하기 시작한다. 몸의 자세를 바꿈으로써 마음도 따라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응은 더 이상 방금 전 곧추서 있을 때와 같지 않다. 골몰하던 문제도 누워서 보면 왕왕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의 목소리나, 하물며 전화벨 소리조차 누워서 들으면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누워서 생각하면 확실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갑자기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우면 항복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어깨에서 짐이 떨어져나간 듯 홀가분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눕는 행위는 휴식이나 충전 같은 긍정적인 개념과 연관되어 왔지만, 그 말인즉슨, 눕는 행위에 '게으르다' 또는 '낭비적이다'라는 딱지가 붙은 것도 사실이라는 뜻이다.

피곤하지 않고는 드러눕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편안하게 눕는 것이 그렇게 홀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깨어 있는 매순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렇지 못한 것은 해이하고 유약하며 의욕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될 뿐이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유익한 활동을 하는 것이 요구되는 세계에서,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불을 켜놓고 일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에서, 누워 있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낭비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수평 자세를 취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열심히 살기 위해 되도록 짧은 시간 하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재충전의 의미밖에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눕기를 옹호함(In Defense of Lying)> 정도의 제목을 붙였어도 어울렸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자는 누울 필요성과 그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을 자주 옹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단락처럼.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 잠깐 낮잠 자는 것을 제외하면 눕는 건 밤에만 허용되어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밤낮을 막론하고 누워 있는 것이 창조력과 주의 집중을 고양시키는 최상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누운 자세가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 따라서 눕기가 앉기에 전혀 뒤지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일들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일이다. 나아가 창조성은 일상적인 활동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났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예술가들에겐 수동적인 시간들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많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전설적인 놋쇠 침대에 누워 글을 썼다고 편지에 적었다. 특히 그는 말년에 질병으로 인해 침실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다. 에로틱한 사건부터 치명적인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침실에서 탄생했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여기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자신의 일기 『선들과 날들(Lines and Days)』에서 독자들에게 "그냥 침대에 머물러 있으라"라고 권한다. "눈이 떠졌을 때 해가 이미 중천에 있다고 곧바로 비타 악티바(vita activa, 행동하는 삶)로 돌입할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살면서 그다지 생각해 본 적 없는 '눕기'라는 행위를 이렇게나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을 때, 바쁜 삶에서 잠시 한숨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침대, 방바닥, 또는 소파에 누워서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누워서 하늘 또는 천장을 향해 들고 읽어도 팔이 쉽게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얇은 책이니 한번 시도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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