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동환, <나의 슬기로운 감정 생활>
저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나쁜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연구 자료를 통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와 반응임을 밝힌다.
"사람의 인식에 따라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 할지라도 후르몬의 분비가 달라지고, 결국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은 같이 분비되지만, 유전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분비되는 비율이 다르다. 먹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일종의 도피 반응에 가깝다. 순간적인 행복감을 얻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먹고 나서 기분이 나아지고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면, 그래서 감정 반응이 좋아진다면 나쁜 해결책은 아니다. 특히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한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와 연관된 '나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메타 인지'이다.
메타 인지는 다시 표현하면 또 다른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힘이다. 즉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예컨대 '내가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또는 '내가 지금 즐거워하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분노, 슬픔, 기쁨, 즐거움 등의 감정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 중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고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 인지를 활용해서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을 통해 감정이 정리되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메타 인지'는 우리를 동물과는 다르게 만들며, 인간답게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된다.
자신의 감정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메타 인지'가 일단 가능해야만 감정 조절을 위한 '긍정적 가정'이 가능하므로, '메타 인지'는 감정 조절을 위한 첫 번째 단계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다음은 '메타 인지'를 통해 자신의 잠재의식을 치유하는 과정을 설명한 부분인데 다소 길긴 하지만 그래도 전부 옮겨 본다.
흙이 담긴 그릇에 물을 붓고 가만히 두면 흙이 가라앉으면서 물은 점점 맑아진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그릇의 물을 휘저으면 순식간에 흙탕물이 된다. 그 흙탕물을 가라앉히려고 계속 손가락으로 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흙을 가라앉힐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손가락을 빼고 물을 그냥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서서히 흙이 가라앉고. 물이 다시 맑아진다.
마음과 감정이 흔들리고 화가 올라오면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화를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평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긴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간은 바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메타 인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시간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갖는 것은 감정을 정리하고 평안을 찾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그릇의 바닥에 쌓여 있는 흙이 너무 많은 경우는 어떨까? 그럴 때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록 흙탕물이 일어나는 번거로운 일이 있더라도 바닥에 고여 있는 흙을 건져내서 버리는 것이 더 좋다. 완전히 다 건져낼 수는 없어도 흙의 양을 중일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더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을 통해 잠재의식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런 과정이다.
잠재의식을 치유히는 일은 우선 잠재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상처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감정들을 살피고 이름을 붙여 스스로 잠재의식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잠재의식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그동안 나를 위해서 이런 감정들을 품고 있었구나. 그것들을 붙잡고 있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니?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니? 정말 슬프고 힘들었지? 그동안 나를 위헤서 힘겨운 감정들을 간직해줘서 정말 고맙고, 또 정말 사랑한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것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제 그만 놓아주자. 다 놓아주고 이제 편안해지자.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잠재의식은 치유될 수 있다. 자기최면의 효과를 갖고 있는 이 방법은 실제로 강력한 심리 치유 기법으로 사용된다. 이제 자신의 잠재의식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자. 처음에는 과거의 상처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꾸준히 실천하면 잠재의식은 점차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서서히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것이다.
저자는만성 피로 클리닉을 운영 중인데, 이 클리닉을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자신이 우울증 초기인 것도 인지하지 못한 환자들이 꽤 있다고 한다.
"과거에 흥미가 있었던 일들이 재미가 없어지거나 모든 것에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진다면 반드시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하니 꼭 참고하시라.
책 중반에 '낙관성 테스트'가 있는데 몇 페이지 되지 않고 간단하니 꼭 해 보기를 추천한다.
'생각 습관'의 두 가지 차원, 즉 '지속성(permanence)'과 '만연성(pervasiveness)' 차원을 다루는 설문인데, 자신의 생각 패턴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좋은 일에 대해서는 '항상'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나쁜 일에 대해서는 '이번에만'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예컨대 '입시 면접을 아주 잘 치렀다'라는 문항에 "나는 원래 면접에 강하다"라고 답변하는 사람은 좋은 일에 대해서 '항상'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그날 면접 시간에 자신감이 넘쳤다"를 선택한 사람들은 좋은 일에 대해서 '이번에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어떤 일이 발생한 원인을 '전부'로 생각하는지 또는 '일부'로 생각하는지가 '만연성' 차원인데, 낙관적인 사람들은 비관적인 사람들보다 좋은 일에 대해서는 '전부'를 택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나쁜 일에 대해서는 '일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꽃을 보냈다"라는 설문에 "그 사람이 나를 매력적으로 보았다"라고 대답한다면 이런 일이 '만연성' 차원에서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라고 대답한다면 이런 일이 '만연성' 차원에서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 테스트를 해 보고 나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낙관성 점수가 낮아서 놀랐다. 그리고 내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우리는 흔히 '긍정'을 '행복' 또는 '좋음' 등의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긍정은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좋은 감정' 또는 '행복한 감정'을 갖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저자는 낙관성 훈련법도 제시하는데, 이는 자신의 생각 습관을 인지하는 것이다.
123 기법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1단계: 나에게 생긴 안 좋은 사건
- 2단계: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는 나의 생각 습관과 믿음
- 3단계: 나의 생각 습관과 믿음에 의해서 생긴 나의 감정과 행동 또는 결과
같은 사건(1단계)을 겪어도 2단계가 다르면 3단계, 즉 반응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2주간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회식 자리에서 마음이 풀려 술과 안주를 많이 먹었다고 치자(1단계).
이때 '완전히 망했어. 다이어트 효과는 전부 사라질 거야. 나는 왜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의지도 약하고 운도 지지리 없지'라고 생각한다면(2단계) 다이어트는 거기서 끝이 날 것이고 기분도 물론 형편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자제력을 잃긴 했지만 지금부터 다시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운동하면 괜찮을 거야. 다시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한다면(2단계)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이어갈 확률도 높아지고 기분도 위의 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보통은 2단계가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1단계에서 바로 3단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1단계에서 3단계까지 자신의 생각 습관과 믿음을 글로 적어 보면 자신의 생각 패턴도 인지할 수 있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 습관을 교정할 수도 있다.
"몸과 감정은 밀접하고 연결되어 있으며 유기적으로 관계를 주고받는다"라는 접근하에 마지막 4장에서는 심신 이완 요법, 감정 조절에 되는 영양소(마그네슘, 오메가3, 비타민C) 등을 소개한다.
수면의 양과 질고 감정 조절에 중요하다는 언급도 빠지지 않는데, 내가 놀란 건 이 부분이다.
잠에서 깨어나서 17~19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정신 상태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퍼센트의 상태와 같아진다. 우리나라 음주 운전 규정에 의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5퍼센트 상태에서 운전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즉 아침 6시에 기상했다고 가정할 경우, 밤 11시가 되면 이러한 정신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의 상태가 된다. 음주 운전에 대입해서 본다면 6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300만 원 이상 5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 그만큼 잠은 우리에게 필수적 요소이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의미다.
<나의 슬기로운 감정 생활>이라는 제목이 걸맞게, 슬기롭게 자신의 감정을 살펴서 나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단순히 정신적, 인지적 방법뿐 아니라 신체적(스트레칭이나 보충제 복용)인 방법도 소개하니 우선 쉬운 것부터 시작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될 것 같다.
이 책이 여러분의 '슬기로운 감정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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