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와카미야 마사코,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어쩌다 보니'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폰 게임 앱을 개발한, 82세 할머니 '마짱'의 에세이집이다.
이 할머니는 무려 1년에 한 번, 미국에 있는 애플 본사에 5,000명이 넘는 기술자와 개발자가 모이는 세계 개발자 회의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 초대받아 애플 CEO 팀 쿡을 만났다.
2017년 2월에 직접 개발해서 애플 앱스토어에 출시한 게임 앱 '히나단(Hinadan)'에 팀 쿡이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 개발자 '마짱'은 시니어가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게임 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버리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행동력이 넘치는 할머니는 놀랍게도 퇴직을 앞둔 60대 초반에야 처음으로 컴퓨터를 샀다.
퇴직을 하면 당시 90대인 어머니를 간병할 예정이었는데, '컴퓨터가 있으면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솔깃한 말을 듣고 덜컥 컴퓨터를 구입, 혼자 힘으로 설치하고 설정을 마치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단다.
그 이후로 컴퓨터의 재미에 푹 빠져 '멜로우 클럽'이라는 동호회에 가입하여 같은 시니어들과 이야기도 주고받게 되고, 후에 '시니어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 보지 그래요?'라는 제안도 받게 된다.
이 '멜로우 클럽'에 가입했을 때 뜬 웰컴 메시지는 "인생, 60세가 지나면 점점 재밌어집니다."였다는데, 마짱은 그 힘찬 메시지 덕분에 '내일은 더 재미있는 하루가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에세이집은 (현재) 83세 할머니의 지혜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나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마음에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검진 결과에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기분 좋고 즐겁게 지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그것이 제가 건강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82세에 스마트폰 게임 앱을 개발한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히 멋진데 '이 할머니, 장난 아니게 최고로 대단하시잖아!'라고 생각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15년 전에 개설한 제 홈페이지를 봤더니 자기소개란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넘쳐나는 것: 호기심
갖고 싶은 것: 시간
지금도 그때와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어서 제 일이지만 웃음이 나더군요.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할머니는 정말 대담함과 지혜를 모두 갖추어 있어서 글만 읽어도 그간 쌓아 온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길게 보면 모든 것이 플러스'라는 소제목이 붙은 단락을 읽으면 정말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느꼈다.
조금 이야기를 바꿔 볼까요? 어렸을 때 일본 무용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다지 춤이 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배우게 한 보람도 없이 쓸데없이 돈만 나갔다"라는 말을 했었지요. 하지만 저는 배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커지고 있어요.
일본 무용의 세계를 체험함으로써 일본의 고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가부키 극장에 가서도 샤미센으로 연주한 곡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러한 것은 인생에 있어서 틀림없이 플러스가 됩니다. 긴 인생에서 본다면 본전은 충분히 뽑은 것 아닐까요.
뭔가를 시작할 때 굳이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은 길고, 계속 이어집니다. 단기적으로 보고 실패했다, 좌절했다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실패는 없다. 실패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작만 해도 '성공'인 것입니다.
아니면 이런 지혜는 어떤가.
사람들은 뭔가를 해보려 할 때 기본 지식을 배우는 걸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제 요리를 해 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저는 먹고 싶은 음식을 일단 만들어 보라고 권합니다. 요리 입문서 같은 것을 사서 기초의 기초부터 배우려 들지 말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만약 요리에 흥미가 생겼다면 더 깊게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껏 요리라곤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칼 가는 방법이나 채소 써는 법부터 배우려 들다가는 계속해 나갈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취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굳이 왕도만을 고집하지도 말고, 선택지에 여러 가지 실현 수단을 넣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즐겁게 계속하는 취미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일이든 '첫 허들은 낮게 잡자!'가 철칙입니다.
이 할머니가 정말 존경스러운 건, 이 연세에도 여전히 기운이 팔팔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을 나이 탓하며 포기한다면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일단 해보자'는 정신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용기를 내서 나이의 벽을 허물고 실제로 해 보면 반드시 새로운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혹시 누군가가 비웃으면 어쩌느냐고요? 그때는 '나도 같이 웃어 주지, 뭐!'라는 정도의 배짱을 갖는 게 좋아요.
저는 오래전부터 뻔뻔하게 살고 있어서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굉장한가!
마짱은 시니어들이 다시 배울 수 있는 장으로서 '노인 초등학교'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페이스북에는 '에이티즈의 모험'이라는 글을 써서 올리고 있는데, 전자레인지에 알루미늄 호일을 넣으면 왜 위험한지, LED를 쓰면 정말 이득이 되는지 등 일상의 의문을 이야기 형식으로 해설하고 있다.
'노인 대학'이 아니라 '노인 초등학교'인 것은, '대학'이라는 단어를 써 버리면 배우는 학생도 가르치는 선생도 지식과 교양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마짱은 말한다.
교양도 중요하지만 시니어 세대에게 우선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실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학'이거든요. (...)
덧붙여서 말하면 제가 생각하는 노인 초등학교의 필수 과목은 이과 계열과 사회 두 과목입니다. 이과 계열 중에서는 특히 물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점점 더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어갈 텐데,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이 바로 물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시니어 세대는 건전지의 병렬과 직렬에 관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실험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일본에서는 이과 계열 여자는 '이계녀'라 부르는데 이과 계열 노인 '이계노'를 늘려가는 게 저의 야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부분 하나 더.
흥미 있는 일이나 해 보고 싶은 일에 제동을 걸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제일 큰 벽은 자기 자신일지도 몰라요. 물론 해 보고 싶은 일을 죄다 반드시 시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걸 하지 않은 덕분에 시간이 생겨서 다음 날 해 보고 싶은 다른 일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쪽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시작한들', '여자인 내가 뭘', '우리 회사에서는 어려워', '여기는 시골인데 뭐' 하는 식으로 자기 의지 이외의 요인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몇 살이 되었든 스타트라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할지 말지는 자기가 결정할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비웃거든 같이 웃어넘겨 버리세요!
'이렇게 나이 들어 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멋진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유쾌하고 재밌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게 무엇인지 '현타'가 온다면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또 남은 삶을 에너제틱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힘을 내기 위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는 게 어떨까.
'책을 읽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감상/책 추천] 안드레아 오언, <개떡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는 법> (0) | 2019.06.14 |
---|---|
[책 감상/책 추천] 김진아,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0) | 2019.06.12 |
[책 감상/책 추천] 매트 헤이그, <우울을 지나는 법> (0) | 2019.06.10 |
[책 감상/책 추천] 데이비드 셰프, <뷰티풀 보이> (0) | 2019.06.07 |
[책 감상/책 추천] 이동환, <나의 슬기로운 감정 생활> (0) | 2019.06.03 |
[책 감상/책 추천] 조원재, <방구석 미술관> (0) | 2019.05.31 |
[책 감상/책 추천] 조나 레러, <사랑을 지키는 법> (0) | 2019.05.29 |
[책 감상/책 추천]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0)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