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매트 헤이그, <우울을 지나는 법>
저자 매트 헤이그(내가 리뷰를 쓴 적 있는 <시간을 멈추는 법> 등을 쓴 소설가이다)의 우울증 경험에 대해 쓴 논픽션 에세이이다.
2018/07/1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매트 헤이그, <시간을 멈추는 법>
책 표지에 <선데이 타임스 논픽션 부문 1위>, <영국 아마존 16주 연속 베스트셀러>, <워터스톤스 올해의 책 최종 후보작>이라는 정보가 쓰여 있다. 흠, 대단한걸.
저자는 20대 초반부터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기 시작했다. 이 에세이에서 그는 그런 정신 질환을 앓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가고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등을 묘사한다.
3. 내가 밉다. 그건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싫어할 만한 이유에 대해 그 정도로 많이 생각하면 누구나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쓰레기이지만 멋진 종이기도 하다.
4. 나에게는 '우울증'이란 딱지가 붙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전문적인 진단을 받는다면 그런 딱지가 붙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5.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진다는 느낌은 그저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6. 마음에는 자신만의 날씨 체계가 있다. 나는 지금 허리케인 속에 있다. 허리케인은 결국 지나간다. 그러니 기다려라.
물론 희망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명압법이라고도 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를 뜻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에 예수의 그림에는 예수 주변의 밝은 빛을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그림자가 동원되었다. 죽음, 부패 등 모든 나쁜 것들이 결국 좋은 것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인인 동시에 때때로 불안과 광장 공포증에 시달렸던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삶을 더없이 달콤하게 만든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라는 꼭지에서는 이런 이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1. 내가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라.
2. 귀 기울여 들어 줘라. (...)
7. 인내심을 가져라.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해해라. 우울증은 나아지고 심해지기를 반복한다. 늘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좋거나 나쁜 순간을 호전이나 악화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마라. 이것은 마라톤이다. (...)
그리고 아래는 좀 길긴 하지만, "우울증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버즈 올드린(Buzz Aldrin)
핼리 베리(Halle Berry)
잭 브래프(Zach Braff)
러셀 브랜드(Russell Brand)
프랭크 브루노(Frank Bruno)
앨리스테어 캠벨(Alastair Campbell)
짐 캐리(Jim Carrey)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리처드 드레이퍼스(Richard Dreyfuss)
캐리 피셔(Carrie Fisher)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스티븐 프라이(Steven Fry)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존 햄(Jon Hamm)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빌리 조엘(Billy Joel)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스티븐 킹(Stephen King)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알 파치노(Al Pacino)
귀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
돌리 파튼(Dolly Parton)
다이애나 왕세자빈(Princess Diana)
크리스티나 리치(Christina Ricci)
테디 루스벨트(Teddy Roosevelt)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
브룩 실즈(Brook Shields)
찰스 슐츠(Charles Shulz)
벤 스틸러(Ben Stiller)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
에마 톰슨(Emma Thompson)
우마 서먼(Uma Thurman)
마커스 트레스토시크(Marcus Trestothick)
루비 왁스(Ruby Wax)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캐서린 제타존스(Catherine Zeta-Jones)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거나 앓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이름도 많이 보여서 놀라웠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우울증은 일국의 수상이나 대통령 혹은 크리켓 선수부터 극작가와 권투 선수, 할리우드의 코미디언까지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정도야 이미 아는 사실이다. 그럼 또 무엇이 있을까? 돈과 명예가 있다고 해서 정신 건강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사실 이것도 새롭지는 않다. 짐 캐리가 프로작을 복용한 시기가 있었다거나 <스타 워즈(Star Wars)>의 레아 공주가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되는 까닭은, 누구나 이런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실제 사례를 확인할 때 일종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사랑. 아나이스 닌(Anais Nin)은 불안을 "사랑의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반대도 성립된다. 사랑은 불안의 가장 큰 적이다. 사랑은 밖으로 향하는 힘이다. 불안은 자신의 악몽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병이기 때문에 사랑은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이기심이 아니다. 자기 다리에 불이 붙었는데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불에 대한 공포심이다. 불안도 마찬가지이다.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타고나게 이기적이어서 자기 자신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냥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을 느낄 뿐이다. 화살이 밖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게 만드는 것들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굉장한 힘이 된다. 반드시 로맨틱한 연애나 가족의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 세상을 의도적으로라도 사랑의 렌즈를 통해 보게 되면 건강해진다. 사랑은 삶에 대한 태도이다. 사랑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저자도 여자 친구(후에 아내가 된) 안드레아와의 사랑에서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아, 저자가 말하는 '마음챙김' 방법은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도 옮겨 적는다.
몇 년 뒤, 마음챙김과 명상에 관한 책을 읽고 항상 행복한 생각을 해야 행복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평온함을 얻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지구상의 아무리 지능이 높은 어떤 사람도 평생 행복한 생각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핵심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심지어 나쁜 것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을 받아들이되 그 생각이 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슬픈 생각을 끝없이 한다고 해서 내가 슬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풍 속을 지나며 바람을 느껴도 내가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가 마음 곁을 지키는 방법이다. 강풍과 폭우를 느끼되 이 또한 지나야 할 과정임을 알고 있으면 된다.
아직도 가끔 내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 때가 있지만 더 크고 강한 내가 가라앉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음을 믿으려 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 말이다. 한때 이런 나를 내 영혼이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살아야_할_이유(reasonstostayalive)>라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트윗을 모은 꼭지 중에서 제일 내 마음에 든 트윗 몇 가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포스트의 마무리를 갈음할까 한다.
@ilonacatherine 우울증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마치 내가 우주 쓰레기 같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들을 믿어 보세요. #살아야_할_이유
@jeebreslin 우리 안에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결국 이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자신이 있기 때문에. #살아야_할_이유
@HHDreamWolf 내 자살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우울증에 걸리면 안 되니까요. 우울증은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살아야_할_이유
@Teens22 살아야 할 이유라면 역시 사랑이죠.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것이죠. #살아야_할_이유
@gourenia 내 우울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언제나 출구가 있다는 걸 믿는 거죠. #살아야_할_이유
@Despard 이전에는 지금보다 나았으니 앞으로 다시 좋아질 거란 믿음. #살아야_할_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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