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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진아,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by Jaime Chung 201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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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진아,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카페이자 여성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인 <울프 소셜 클럽>을 운영하는 저자가 쓴, "자기 몫을 되찾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야망 에세이"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리뷰를 쓸 수 있겠는데, 그 세 가지란 다음과 같다.

1. 페미니즘/페미니스트 2. 야망 3. 광고

일단 첫 번째 페미니즘이란 키워드로 시작해 보자. 저자는 40대에 들어서야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인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자신이 광고 에이전시를 떠날 때(광고 이야기는 아래에 따로 하겠다) 퇴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남자 상사가 '수'를 써서 '퇴사 당했다'고 표현하는데, 그래서인지 직장 내 '보이즈 클럽'에 대한 문제도 다룬다.

직장 내에 남자들의 네트워크가 너무나 강하고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후배 여성을 끌어줄 상사의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에 '여자에게 일 몰아 주기'를 실천하고 있단다. 작가 말마따나 "은밀하고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누가 소개해 달라고 하면 일을 잘한다며 여자를 추천하고, 자신의 카페에서 사용하는 원두도 여성 사업가가 파는 것으로 바꾸고, 행사에 여자 필자를 초빙하고 여자 필자를 섭외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음모인가. 저자는 '외식업계에서도 여자는 푼돈을 버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런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도 가능하다면 같은 여성이 사업주인 사업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야망'이다. 그녀는 대구 출신인데, 여자애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다는 생각은 흔치 않던 시절에(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가? 내가 지방 출신이 아니라서 이건 잘 모르겠다) 다행히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덕에 꼭 자신은 서울에 가리라고 다짐했단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을 뿐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감만큼은 넘쳤다. "난 서울 가서 성공할 거야! 유학도 갈 거야!" 밑도 끝도 없는 나의 야망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친구는 없었다. 작은 동네, 작은 학교의 여자아이들은 대구를 떠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하지만 나는 여성스럽지 않은 것도, 정신적 남자도 아니었다. 그저 여자가 야망이 크고 그만큼 내 안의 여성 혐오가 강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남자 형제 있는 집 여자아이가 겪는 일상적 차별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 내 성차별로 인해 한국 여자들이 학습하기 쉬운 무기력과 포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남자아이들이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과장된 만능감을 키워가듯 나 또한 그러했다. 내가 남자였다면 나의 야망이 유난한 것이었을까? 중류층 부모의 기대와 지원을 받은 남자아이가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 아니었을까? 더구나 이 정도의 야망을 가졌다고 해서 친구들을 혐오하지도 나 자신을 혐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건 말할 것도 없고.

야망은 소년들의 몫. 소녀들은 야망을 키우고 드러내게끔 키워지지 않는다. 착하고 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배운다. 하지만 그건 가부장제가 잘 굴러가는 데 필요한 여성성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여성성'은 대개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야망이 큰 것과 여성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탁월한 재능도 재력도 없는 내가 서울에 올라와 지금껏 이런저런 일을 벌인 것도, 탈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야망 덕분이다. 야망이 평범한 여자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이 얼마나 멋진가. 나는 이토록 야망이 원대한 여성은 보지 못했다.

 

또한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일(광고)을 정말 사랑하고 열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저자는 일이 왜 자신에게 그렇게 중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집안일이 싫어서요."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기 위해 바깥일을 하는 쪽을 택했다. 농담이 아니다. 이때 집안일은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결혼 루트를 택했을 때 피할 수 없는 핵심 과제인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을 통칭한다. (...) 나는 저 티도 안 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집안일을 최대한 하지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선 확실한 직업과 커리어가 필요했다. 여자가 집안일을 등한시해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욕먹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그럴듯한, 집안일을 아웃소싱하고 남을 만한 돈벌이 말이다. (...)

내심 '그냥 원래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데다가 진심으로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지레짐작하던 나에겐 정말 충격이었다. 

정말이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인간'다운지 놀라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유롭고 자신만의 서사와 욕망이 있으며, 남녀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든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자신을 개입할 수 있는 개인을 말한다.

흔히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는 '남성'이 기본 디폴트 성(性)이고 '여성'은 그와 반대되는 개념이나 또는 어떤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예컨대 <햄릿(Hamlet)>을 보면 주인공 남성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뇌하는 인물이지만, 그에 비해 오필리어는 그냥 그에게 배신당하고 정신을 놓아 자살하는, 한마디로 '비련의 피해자'를 그냥 형상화한 것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에에이를 읽으면, 저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는 건 나도 의식하고 있다) 너무나 전형적인 여성답지 않은, 자유롭고 정말 혼자서 온전한 개인(보통 남성만이 보여 줄 수 있다고 여겨지는)이 모습을 보여 주기에 감탄이 계속해서 나온다.

영화 <에일리언(Alien)> 시리즈의 주인공 리플리나 <매드 맥스(Mad Max)>의 퓨리오사 정도가 잘 그려진 여성 캐릭터로 꼽히는데, 이 저자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다. 

남녀의 구분을 떠나 인간답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책을 읽다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광고. 나는 솔직히 광고라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치의 오른팔이었던 사람에게서 현대 광고학의 기초가 나왔다는 게 아이러니해서 싫어하기도 하지만, 광고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공포심, 두려움을 건드려서 돈을 벌어 먹는다는 게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성 위주의 광고업계에서 일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곳이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고가 만연한지(내적 분위기로나, 외적으로 사회에 끼치는 영향으로나)를 기탄 없이 밝힌다.

그리고 최근 들어 불기 시작한 여성주의적 광고 바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사실 좀 희망적이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광고업계에 바뀌어야 할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광고업계가 스스로 알아서 자정 노력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나는 한국 광고에 대해 말하는 이 부분이 좋았다.

하지만 범람이라기에 아직은 한국 미디어에 노출되는 여성의 다양성과 우먼 임파워링은 이슬 맺히는 수준이다. 더 살집 있는 여자, 더 주름 많은 여자, 더 똑똑한 여자, 더 근육질의 여자, 더 권력 있는 여자……. 아직까지 광고에서 보지 못한 여자들이 더 많다. 지금 각성한 야망 있는 20대가 결정권자의 자리에 올라 여성의 관점에서 만족스러운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승인하는 날이 올 때까지 좀 더 두고 봐도 늦지 않다. 우리에겐 보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보여 줄 책임이 있다.

 

이 외에도 '외모 권력'이나 여성 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정말 알차고 깨달을 점이 많은 책이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모두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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