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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데이비드 셰프, <뷰티풀 보이>

by Jaime Chung 201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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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데이비드 셰프, <뷰티풀 보이>

 

 

내가 리뷰를 쓴 적 있는 영화 <뷰티풀 보이(Beautiful Boy, 2018)>의 바탕이 된 논픽션 에세이이다.

2018/10/29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Beautiful Boy(뷰티풀 보이, 2018) - 약물에 아들을 빼앗긴 아버지, 애도하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Beautiful Boy(뷰티풀 보이, 2018) - 약물에 아들을 빼앗긴 아버지, 애도하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Beautiful Boy(뷰티풀 보이, 2018) - 약물에 아들을 빼앗긴 아버지, 애도하다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Felix Van Groeningen) 성공한 프리랜서 작가인 데이비드 셰프(David Scheff, 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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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이미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다른 출판사에서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로 분한 스티브 카렐(Steve Carrel)과 티모시 샬라멧(Timothée Chalamet)의 사진(바로 저 리뷰 썸네일에 있는 바로 그 포스터)을 커버로 하여 재출간했다. 번역 상태도 꽤 괜찮다.

실제 사건의 팩트 체크는 이미 영화 리뷰에서 했으니 여기에서는 마약 중독자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을 묘사한 표현에 좀 더 집중해서 리뷰를 써 보겠다.

 

이 책은 이런 인용구로 시작한다.

나는 너무 괴로워 그 아이를 구원하지도, 보호하지도, 해로운 길을 못 가게 말리지도, 고통을 막아 주지도 못한다. 고작 이런 것들도 해 주지 못한다면 아버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 토머스 린치, <우리의 본모습>

마약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는 굳이 영화 <레퀴엠 포 어 드림(Requiem For a Dream, 2000)>를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안다.

마약이 자신의 아들을 파괴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먹먹하고 비참할까.

책 후반에 나오지만,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는 아들 닉 걱정에 어찌나 애를 태웠는지, 뇌졸중이 발병하고 만다.

다행히 완치되어 퇴원하고 다시 글을 쓰며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뇌졸중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경험한 고통과 고뇌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았다.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서글프게도 예전의 처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오랫동안 닉을 기다려 왔다. 닉의 귀가 시간이 지나면 녀석의 차 엔진 소리를 기다렸다. (...) 어느 때는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안녕, 아빠. 뭐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닉일 수도 있었고, "셰프 씨, 우리가 댁의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찰일 수도 있었다. 닉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거나 전화를 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재앙을 떠올렸다. 닉이 죽었다고. 늘 닉이 죽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닉은 매번 집에 들어왔다. 손으로 난간을 스르륵 쓸면서 살금살금 복도 계단을 올라갔다. 아니면 전화벨이 울렸다. "죄송해요, 아빠. 나 지금 리처드 집에 있는데 깜빡 잠이 들었어요. 지금 이 시간에 운전하느니 그냥 여기서 자고 갈게요. 아침에 봐요. 사랑해요." 그러면 분노와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미 머릿속에선 아들 녀석을 땅에 묻은 뒤였으니까.

이런 걱정은 책 내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그 말인즉슨, 이런 걱정이 저자의 삶에서 끊임없이 그를 위협했다는 의미일 테다.

이건 위보다 백 페이지쯤 지나서 등장하는 한 문단이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갔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녀석이 어디 있을까?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소름 돋는 생각들을 밀쳐냈다. 나는 경찰서와 응급실로 전화를 걸어 닉이 유치장에 있는지, 혹시 사고가 났었는지 물었다. 전화를 걸 때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에 맞설 각오를 했다. 어쩌면 나누게 될 대화도 떠올렸다. 둔감하고 생소한 목소리가 말하겠지. "아드님이 사망했습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생각이 자꾸 그 상상으로 달려가 맴돌았다. 닉이 죽었다.

이것만 봐도 마약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로운 게 아니라 그 중독자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상대가 자식이라면 어찌 피하랴.

 

저자는 아들에게 재활, 그리고 재발이 엎치락뒤치락 싸움하듯 계속되는 세월을 묘사한다.

현실, 그러니까 책은 영화보다 훨씬 더 길고 재활 과정은 지난하다. 잘 버티는가 싶다가도 무너지고, 다시 재활원에 입소하고 하는 일들이 반복된다.

영화에서는 두어 번의 재발 후 정말 이제는 중독 생활을 청산할 거라는 희망을 주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아마 이 에세이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다면 영화 러닝 타임 4시간, 5시간은 우스웠을 것이다. 

그만큼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중독자를 가족의 일원으로 둔 가족은 평생 그 일원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상황이 더없이 안 좋을 때면, 중독자도 약을 하고 있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 한숨 돌린다는 이유로 닉에게 화가 치민 적도 있었다. 중독자의 부모나 자식, 남편, 아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순간도 그와 비슷한 안도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마약을 복용한 전적이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말한 것을 후회한다.

또한 자신이 전 아내, 그러니까 닉의 친모와 이혼했기 때문에 엇나가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점도 미안해한다.

아버지는 죄인이다. 아들의 잘못이 모두 자신의 탓 같기 때문이다. 

(...) 나 역시 답이 없는 똑같은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했다.

내가 아이를 망친 걸까?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을까?
내 관심이 부족했을까?
관심이 너무 지나쳤을까?
만약에 우리가 시골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마약을 한 적이 없었다면.
만약에 닉의 엄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죄책감과 자책은 중독자 부모가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

이 책을 읽으며 아들을 향한, 정말 '무한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달리 없는 애정을 느끼면서 '이런 게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인가' 싶었다.

그리고 정말 이런 게 자식 사랑이라면, 나는 자식을 가질 자신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통감했다. 

 

참 놀라운 건, 약을 하지 않을 때 닉은 참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청년이라는 거다.

자기의 배다른 동생들(재스퍼라는 남자아이와 데이지라는 여자아이)에게 어찌나 끔찍하게 잘하는지,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닉 때문에 허구헌 날 속을 끓이면서도 다정하고 익살스러운 그 모습에 어느새 무장해제되었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너그러운 닉, 그리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닉. 이 둘이 어찌 한사람일 수 있을까? (...)

닉은 마치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꼬맹이들과 놀았다. 닉이 체포된 이후 나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 당황하곤 했다.

마약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형/오빠가 가진 문제를 설명해 줘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는 이것이다.

데이비드는 '알아넌'이라는, 중독자인 가족 일원을 둔 가족들의 만남에 나간다. 그곳에서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한다.

"내 딸이 감옥에 있는 걸 매일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죠. 딸애는 6개월 전 마약 투여 및 거래, 매춘 혐의로 유죄를 받았어요."

그녀가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투로 말했다.

"이제 딸은 더 안전한 곳에 있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구나.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들 중 일부는 자식이 감옥에 있다는 걸 희소식으로 여기는 지경에 몰려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데, 이런 마약 중독자의 이야기를 접하니 참 심란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약 중독이란 자기 몸만 망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피 말리게 만드는 질병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도 마약 따위를 할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게 틀림없다.

자기 신세 망치는 거야 성인쯤 되면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망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족이나 친구들, 애인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마약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결심이 들었다(참고로 나는 이런 결심을 마약 중독자에 관한 콘텐츠를 접할 때마다 매번 새롭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덧붙이는 글'에서 저자는 트럼프 정권하에서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위해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분야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한이 없는지 깨닫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영화 <뷰티풀 보이>를 보고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분들도 원작을 한번 살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에는 미처 담지 못한 생생하고 두려운 진실이 가득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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