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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조영은, <마음의 무늬를 어루만지다>

by Jaime Chung 2019.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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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조영은, <마음의 무늬를 어루만지다>

 

 

이 책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프리 영(Jeffrey E. Young)이 개발한 '심리 도식 치료(Schema Therapy)'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제프리 영에 따르면 '심리 도식(schema)'이란 '광범위하고 만연화된 패턴'으로서 성장 과정에서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기억과 감정, 신체 감각, 인지로 구성되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상, 대인관계상 등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심리 도식은 결국 우리 성격의 근간을 이루고 행동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우리는 심리 도식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드라마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제프리 영은 심리 도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조명하면서 잘 변하지 않는 고질적인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치료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책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Reinventing Your Life)>에서는 심리 도식이 '인생의 덫(life traps)'으로 표현된 바 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정신 건강 진단에 다녀왔는데, 거기에서 '심리 도식'이란 이 틀을 이용해서 내 심리를 진단해 주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진단 결과를 들을 때만 해도 낯선 개념이었는데, 마침 딱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에 그 설명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이스 타이밍!

 

일단 '심리 도식' 18가지를 간단한 설명(각 장의 소제목이다)과 같이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1. 버림받음: 당신도 언젠가 날 떠나겠지
  2. 불신/학대: 저 사람이 날 속이는 게 아닐까?
  3. 정서적 결핍: 날 이해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어
  4. 결함.수치심: 내가 좀 한심한 인간이라……
  5. 사회적 소회: 역시 난 아웃사이더인가 봐
  6. 의존/무능감: 내가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
  7. 취약성: 언제 불행이 닥칠지 몰라!
  8. 융합/미발달된 자기: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요
  9. 실패: 나는 뭘 해도 실패할 게 뻔해
  10. 특권 의식: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
  11. 부족한 자기 통제: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래
  12. 복종: 당신이 원하는 대로 따를게요
  13. 자기 희생: 난 괜찮아, 널 위해서라면
  14. 승인-인정 추구: 남들에게 인정받지 않고는 못 살아!
  15. 비관주의: 결국은 다 잘못되고 말 거야
  16. 정서적 억제: 속마음을 들켜선 안 돼
  17. 엄격한 기준: 아직 멀었어, 완벽해져야 해
  18. 처벌: 실수는 절대 용서 못 해

 

2부에서는 이런 '심리 도식'에 한 장씩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1부에서는 도입 겸 해서 모든 심리 상담에 공통되는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의 친구가 자살한 후 충격을 받아 헤매일 때 상담자가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다려 준 사연과 그러한 수용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치유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또한 상담자는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아도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는 점도 밝힌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해답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대략 1부는 그런 내용인데, 그중에 제일 내 마음에 들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이 부분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마음속에 무늬처럼 자리 잡은 밑그림에 따라 계속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벗어나지 못함을 한탄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무늬를 좀 더 연하게 지워 나갈 수 있음을, 혹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 시작은 반복되는 드라마를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실 것이다. 정형화된 심리적 패턴을 가리키는 '심리 도식'을, 우리가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늬'로 비유한 게 참 놀라웠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무늬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꼭 그대로만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건 아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그 틀을 깨 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심리 도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던지.

 

 

각 '심리 도식'에 대해 우리는 '굴복'하거나, '회피'하거나, '과잉 보상'할 수 있다. 셋 다 '심리 도식'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인데, 굴복은 말 그대로 "마음의 무늬가 이끄는 방향 그대로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회피는 "마음의 무늬가 일으키는 생각과 감정을 피하고자" 하는 것, '과잉 보상'은 "마음의 무늬가 만드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것을 진실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융합/미발달된 자기'라는 '심리 도식'을 예로 들어 보자.

'굴복'의 경우,

  • 성인이 되었는데도 융합된 중요한 대상과 경계 없이 가깝게 지내면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결혼한 후에도 자신이 마치 부모님의 배우자인 것처럼 살아간다.

'회피'의 경우,

  •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회피한다.

'과잉 보상'을 할 때는,

  • 융합된 중요한 대상과 비슷한 모습을 지나치게 싫어하며, 그와 같이 되지 않고자 과도하게 노력하거나 정반대로 행동한다.

이런 식이다. 각 '심리 도식'을 설명하는 장마다 그에 해당하는 '굴복, 회피, 과잉 보상'의 모습을 간략히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각 장마다 예시 에피소드를 들어 '이런 심리 도식은 대개 이런 모습을 보인다'라는 것을 보여 주고, 그 뒤에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정말 알차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가 잘되게 잘 풀이해 주고, 무엇보다 '나에게 이런 심리 도식이 있다면 이렇게 대응하면 좋다'라는 것을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그걸 읽다 보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아, 나한테 이런 면이 조금 있어' 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정서적 결핍'이라는 '심리 도식'의 경우, 제시되는 접근법 중 하나는 '기원에 대해 이해하고, 아픈 감정을 깨닫는다'이다.

'정서적 결핍'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나에 대한 공감을 시작해 볼까요? 제대로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 보지 못한 기억, 공감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겁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바라보기가 선뜻 내키지 않지요? 하지만 괜히 과거를 들쑤시려고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내가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의 현실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지, 무엇이 무의식 속에서 나를 움직이는지 알아차리기 위함이지요. 결국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우선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출발점이 됩니다. 처음에는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억이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있고, 그 무엇이든 뚜렷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기억을 조금씩 돌이켜보세요. 따뜻함을 잃어버렸던 사건, 가슴속에서 뭔가를 상실한 것만 같은 경험,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던 기억……. 오늘 나를 아프게 하는 감정은 어떤 것이지요? 그 감정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그다음에 나오는 '나의 정서적 욕구를 받아들인다'라는 접근법도 큰 도움이 됐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안아 주듯 그 정서적 욕구를 인정하고 충분히 이해해 주니 오히려 그런 욕구가 쑥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것 외에도 살면서 여러 면에 적용이 가능한 접근법을 두루 제시하니 꼭 책 본문을 살펴보시라.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정신 건강 진단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분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시는 게 좋을 듯하다. '심리 도식'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혼자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 내 마음을 돌아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그런 분들에게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안내서가 될 수 있으니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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