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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키마 카길, <과식의 심리학>

by Jaime Chung 201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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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키마 카길, <과식의 심리학>

 

 

'우리는 왜 과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과식과 관련한 심리학, 철학, 경제학, 신경내분비학, 역사학, 노동문제, 정부 규제 등 다양한 관점을 모두 살펴보며 그 이유를 진단한다.

우선, '소비 문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영국의 문화 이론가 아이나스 가브리엘과 팀 랭은 소비주의를 이해하는 다섯 가지 틀을 만들었는데, 저자는 이 틀을 이 책 전반에서 사용한다.

  1.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는 개인이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2.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국민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성향의 보모 국가(nanny state, 개인의 복지와 선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정책과 정부를 일컫는 표현―옮긴이)와 반대로 현대 국가는 초국적 기업을 비호한다. 또 현대 국가에 팽배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소비자가 화려하고 멋진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자유를 찬양한다.
  3.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공산주의의 엄격한 금욕주의와 반대로 소비주의가 자유무역의 동인으로 찬양되며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는 일이 경제 발전의 열쇠로 여겨진다.
  4.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물질적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 지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친다.
  5. 사회 운동으로서 소비주의: 소비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종종 규제를 통해 가치와 품질을 보호하는 운동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는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를 개인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의 수단으로 본다. 이런 형태의 소비주의가 번성하면 소비자 선택의 심리적 중요성이 상품 생산에 기초한 과거 경제를 대체한다. 과거 경제에서는 소비보다는 일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였지만 지금 같은 소비 중심 사회에서는 정체성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보다 무엇을 소비하는가와 관련 있다. 소비 중심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여가 시간을 돈 쓰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과 물건을 소유하는 일이 행복의 주요 수단이라는 믿음이다. 소비주의가 도덕 원칙이 될 때 사람들은 물질을 소비해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길 뿐 아니라 소비를 자아 발전, 자아 실현, 자아 충족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소비주의가 '도덕 원칙'이 될 때 소비를 중심으로 우리의 내면과 자아가 형성되므로 구매는 무척 심리적 현상이 되는 것이다.

 

아직 소비주의와 과식의 연관 고리를 보지 못하셨다면, 소비자 지출이 계속 증가한 수십 년간 일인당 하루 칼로리 섭취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시라.

1960년데 미국 농무부(US Department of Agriculture) 경제 연구소는 미국인 일인당 하루 식량 공급량은 3,200칼로리로 추정했다. 3,200칼로리 중에서 약 1,000칼로리는 남기거나 상해서 먹지 않거나 그 밖의 다른 손실로 사라지기 때문에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은 1인당 2,200칼로리 미만이었을 것이다.

40년 뒤 행해진 같은 연구에 따르면 일인당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은 2,700칼로리였다. 30년간 칼로리 섭취량이 29퍼센트 늘었고, 주로 정제 곡류 가공품 섭취가 증가했다.

또한 전체 칼로리 섭취가 늘었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 자주 먹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이제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에 한 번씩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소득 자본의 증가는 또한 더 잦은 외식과 연결된다. 미국의 경우, 1972년 외식비 지출 비율은 전체 식비의 34퍼센트였는데 2006년에는 49퍼센트로 늘었다. 

간단히 말해 미국의 소비주의와 늘어난 칼로리 섭취량은 미국 농무부와 노동 통계국 기록에 잘 드러난다. 더 많이 먹는 것과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같은 현상이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욕'이라는 현상 말이다. 또한 이런 기록에 따르면 늘어난 칼로리는 대개 곡물과 정제 탄수화물로 섭취되며, 소비자 지출은 필수재가 아닌 사치품이나 선택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전 세계 소비 시장에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값싸게 만든 옷과 가구가 흩어져 있는 것처럼, 식품 소비 시장에도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질 낮은 사탕과 초콜릿, 정제 탄수화물이 가득하다. 내가 보기에 '텅 빈 칼로리(empty calories, 칼로리만 높고 필요한 영양소는 없는 칼로리―옮긴이)를 소비하는 일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소비하는 일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놀라운가?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소비주의가 만연하게 되면서 과식도 늘어났다니, 과연! 예전에는 배불리 먹고 싶어도 그럴 만한 음식이나 자본이 충분하지도 않았을 거고, 또 과식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금, 과식은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저자는 '앨리슨'이라는 가명으로 부르는 한 환자의 예를 소개한다. 그녀의 삶은 소비주의가 널리 퍼진 현대의 소비자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 준다.

나는 앨리슨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의 문제가 어느 정도는 소비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방어적 태도를 보이거나 화를 냈다. 앨리슨은 사치스러운 쇼핑 같은 물질주의에 갇힌 삶을 포기하는 것도, 단순하게 사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그런 삶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 그녀에게 소비주의적 삶이란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는 것으로 가득한 삶이다. 사치스러운 소비가 없는 삶은 그녀에게 공허한 삶이므로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근본적으로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돈을 쓰거나 소비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곧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를 뜻했다. 앨리슨은 사치품이 아니라 경험으로 풍성한 삶, 쇼핑 대신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자연과 문화를 경험하는 삶, 사랑하는 사람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차린 소박한 식사를 더 적게 더 맛있게 먹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정제와 가공, 맛을 표현하는 여러 용어가 있는데, 그중 '초기호성 식품(hyperpalatable food)'이라는 용어는 "높은 쾌락적 보상(즐거움)을 제공하고 그와 함꼐 도파민을 급증시키는 정제 설탕과 밀가루, 지방, 소금 함량이 높은 음식을 일컫는 신경 과학 용어"이다.

그리고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은 "자연 식품에서 추출하거나 정제한 가공 물질로 만든 오래 가고 기호성 높으며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이런 식품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특히 이런 제조 식품들은 효능을 강화하고 혈류에 빨리 흡수되도록 중독성 약물과 비슷한 방법으로 변형된다."

저자는 이런 식품들이 마약만큼이나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화학 변형이 마약의 주특기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코카 나무 잎은 가벼운 흥분제일 뿐이지만 코카인이나 크랙으로 고도로 정제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강한 쾌락적 보상을 제공하며 중독성이 훨씬 강화된다. 마찬가지로 마리화나는 가벼운 황홀경만 느끼게 해 주지만 이제는 농축유나 '식용'으로 흡수되어 굉장히 강력한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로 개량되었다. 설탕처럼 고도로 정제된 식품이 더 중독성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은 더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달콤한 용약의 보상 가치가 정맥으로 투여하는 코카인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헤로인보다 더 큰 경우도 있었다.

 

소비주의라는 문화적 이유 외에도, 저자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커진 '자아'의 개념이 어떻게 욕망의 바탕이 되었는지, '건강 후광 현상(health halo)'이 또 어떻게 소비와 과식을 촉진하는지, 제약 산업이 과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을 찬찬히 설명해 준다.

확실히 읽어 나가면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곧 자신의 무의식적인 소비 패턴을 돌아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

'나는 왜 과식을 멈출 수 없을까?'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참고로 과식이 늘 초과 체중과 연관된 것은 아니므로, 현재 자신의 비만 정도와 무관하게 모든 이들이 읽어 봄직하다.

현대 소비주의 사회의 생각지도 못한 영향을 알게 된다면 아무래도 식재료를 구입하거나 외식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건강한 소비와 식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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