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 제목처럼 '여자 둘'이 같이 사는 이야기이다.
김하나는 <힘 빼기의 기술>을 쓴 카피라이터고, 황선우는 'W 코리아'의 기자이다.
둘은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됐고,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둘은 같이 집을 사고 살림을 합쳤다.
각자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도 데리고 와서, 총 여자 둘과 고양이 넷(W2C4)이라는 분자로 구성된 가족이 탄생했다.
김하나는 이렇게 쓴다.
이제 동거인과 같이 산 지 2년이 넘었다. 만족도는 최상급이다. 동거인은 각종 요리와 어지르기, 빨래 돌리기를 맡고 나는 설거지와 청소·정리, 빨래 개기를 맡아 집안일의 배분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한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진다. 서로의 인기척에 자연스레 잠이 깨고 집에서 매일같이 인사(잘 잤어? 어서 와. 다녀올게!)가 오가는 게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혼자 살 때 '정서적 체온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데 비해, 둘이 사니까 그게 자연스레 이뤄진다는 점이 좋다. 물론 육체적 체온 유지를 위해 욕조에 몸을 담글 수도 있다.
게다가 최고로 좋은 점은, 우린 여전히 '싱글'이라는 점이다. 명절이면 각자 부모님께 다녀오거나 안부를 전한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함께 산다는 점에 매우 흡족해하신다. 훨씬 든든하다나. 요리를 잘하시는 동거인의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겨서 보내주신다. 나는 찾아뵙거나 효도 여행 계획을 짤 필요 없이 "맛있다!"라고만 하면 된다. 싱글 생활의 가뿐함과 동거의 유리함이 함께한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가 잘 맞는 운 좋은 케이스다. 혼자 살기 아니면 결혼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우리의 즐거운 동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까운가!
솔직히 결혼할 나이의 여성이 독신 생활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닌, 동성 친구와 동거를 하며 산다는 개념이 흔치는 않아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읽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번에 리디셀렉트로 올라왔길래 다운 받아 읽었다.
읽으면서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결혼과 비슷하게 힘들고 또한 즐거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다 다치면 마음 아파 하며 돌봐 주고, 또 한쪽이 청소를 하면 다른 한쪽은 요리를 하는 등, 주어만 '동거인'이다 뿐이지, 성별을 생각하지 않고 읽으면 그냥 부부의 이야기 같다.
정말 이렇게 쿵짝이 잘 맞기도 쉽지 않은데, 두 여자는 어쩜 서로를 만나 같이 사는 복을 받은 건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이 둘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건, 둘 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황선우는 이렇게 썼다.
어떤 차이는 이해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나는 김하나를 통해 세상에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대체로 잊어버리고 살다가 같이 장을 볼 때마다 새롭게 놀란다. 그리고 한 알 한 알 먹어 치우는 동안 의아하다가 조금 슬퍼진다. 어떻게 이런 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정말 맞는 말이다. 꼭 상대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르면 다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게 중요하다.
또한 같이 살다 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는데, 그들도 2년의 세월을 통해 잘 싸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황선우는 이렇게 썼다.
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누군가와 같이 살아 보는 경험을 거치고서야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부부 싸움뿐 아니라 같이 사는 친구끼리의 싸움도 꼭 칼로 물 베기 같다. 우리는 언제 싸웠나 싶게 다시 사이 좋게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칼로 물을 베는 그 몸짓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이 싸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 본다. 나의 가장 잘 드는 무기를 찾아 쥐고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게 적의 급소에 꽂는 것인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흠씬 두들겨 패서 밟아 버리는 것인가?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 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김하나와 황선우가 각자를 '안사람', '바깥사람'이라고 칭하는 것도 참 부부 같고 귀엽다(김하나가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황선우는 20년째 성실하게 출근하는 직장인이라 그렇다).
둘은, 황선우의 표현대로 "쓸모없고 시시한 말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가진 셈이다. 복 받은 여인들 같으니라고!
결혼하지 않고도 친구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 주어서 두 사람에게 무척 고맙다.
책 중간중간에 두 여자가 키우는 고양이 사진도 있고, 집 사진도 있다. 두 저자가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 편이라 어쩜 글을 잘 쓰는 사람 둘이 이렇게 만나서 살고 또 같이 책까지 쓰게 됐을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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