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송길영, <상상하지 말라>
소셜 빅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을 하는 저자가 빅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제목은 '(마케팅의 대상인) 사람들이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제멋대로 '뇌피셜'로 마케팅을 하지 말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사람을 관찰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기업이 무엇을 상상하든,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으로 시작해 마케팅 분야에 10년 넘게 종사해 오며 매 순간 느끼는 바다. 기업이 상상한 고객과 고객의 실제 행동이 전혀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
(...) 이 상황을 타개할 해법은 무엇일까? 미친 듯한 크리에이티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상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모여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는' 본래 의미로서의 상식(common sense)을 계속 현재 시제로 유지하려면, 상상하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창의성만이 세상을 구원할 것 같은 창조와 경제의 시대(?)에 상상하지 말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상상하지 말라는 것을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않기 바란다. 상상력은 물론 필요하다. 데이터는 결과가 아니라 씨앗일 뿐이므로,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 당신이 아는 것은 과거의 사회상이다. 세상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자. 보고 싶은 대로,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상상하지 말라. 지금까지는 당신의 지식이 당신을 지켜 주었을지 모르지만, 그 지식이 좁고 낡은 것으로 판명 나는 순간 당신의 지식은 회사가 당신을 버리는 구실이 될지도 모른다.
예컨대 우리나라 블로그에서 '부산의 먹거리'를 검색해 보면 1등이 씨앗호떡으로 나오는데, 부산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거리와 관련해 무엇을 가장 많이 말할까 조사해 보니 1등은 레스토랑이었다.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부산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씨앗호떡만 떠올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산 사람들이 1년 내내 삼시 세 끼 씨앗호떡만 먹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입장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부산 하면 호떡'이라며 호떡가게를 낼 생각만 한다면? 소수 관광객을 대상으로는 장사가 될지 몰라도 대다수 부산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상상보다 관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생각하는 것 말고 진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발견한 뒤, 거기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 제품을 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산복을 떠올려 보자.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게 아니라 동네 뒷산에 오를 때에는 방수 기능에 발수성이 있고 통기까지 잘되는 고어텍스 원단으로 된 비싼 등산복을 살 이유는 사실 없다.
하지만 기능성 원단일수록 고가이기 때문에 그런 원단을 사용한 등산복은 비싸고,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고어텍스 등산복을 입으면 돋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웃도어 시장이 6조 9천억 원 규모로 불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아웃도어가 팔리는 이유가 우리나라 지형의 70%가 산이어서 그렇다는 추측도 있었다지만, 150m 올라가는데 무슨 말씀.
그럼에도 아웃도어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통기성과 발수성을 말해야 한다. 그게 그 옷이 비싼 이유이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구실이 되어 주므로.
이것이 마케팅이다. 마케팅은 숨겨진 욕망을 끝까지 뽑아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을 에둘러 표현해야 한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품격이 떨어져서 그것을 사는 사람들까지 없어 보이게 만든다. 기업은 그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제대로 사람을 관찰하려면, 그리고 제대로 마케팅을 하려면 '꼰대' 기질은 버려야 한다. 꼰대들은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꼰대는 마케터로서 실패한다.
그래서 저자는 꼰대가 되지 말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관찰할 것을 강조한다.
관찰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원하는 R&D나 마케팅의 힌트를 얻는 것은 둘째 치고, 우선 내가 속하지 않은 상대방 집단에 대한 오해를 풀어 주는 효과가 있다.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상사들은 으레 '저 녀석은 행복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요즘처럼 실업난이 심각한 세상에 취업에 성공했으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막 굴린다.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감지덕지라는 듯이, 취업하기까지 죽을힘을 다한 사람이 마치 상사 본인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정작 신입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면 신입들의 고민을 '한가한 투정'이라 오해하는 기성 세대의 선입견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 아내가 남편에 대해 모르는 것, 부모가 자녀에 대해, 젊은이들이 노인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함의를 해석하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렇게 '꼰대가 되지 말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라'고 계속 말하기 때문에 마케팅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약간 반감이 있는 나도 큰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는 어린 딸(책 내에서 중2라고 나온다)이 있어서 더더욱 노력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또한 '판매'보다 '가치'에 중점을 두라고 주장한다.
판매는 목표가 아니라, 훌륭한 성과를 내면 받는 트로피 같은 것이다. 가치를 주면 판매는 저절로 따라온다. 그런데 가치를 주지 않고 판매만 독려하면 매출은 생기지만 이익은 줄고 미래가 사라진다.
강연을 하면 자기네 사업을 도와 달라고 하는 기업이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자체적인 데이터 분석이 힘드니 종종 연락이 오는데, 그들에게 사업 내용과 함께 비전을 물으면 숫자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5,000억'이 비전이라는 것이다. 자기네 기업의 존재 목적이 5,000억 달성이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는 '돈만 된다는 옳지 않은 일도 하겠다'는 말과도 다를 바 없다. 큰일 날 소리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고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트로피처럼 돈이 생기는 것이지, 돈이 목적이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것도 팔 것 아닌가. 어렵더라도 판매가 아니라 가치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옳은 말이라고 느꼈다. 내 교육업계에 있을 때, 상사가 이 일을 왜 하는 거냐고 묻기에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더니 내 대답에 코웃음을 치면서 "이 일은 돈이 되는 문제(문제집이라고 할 때 그 문제를 말하는 거다)를 파악하는 눈이 있어야 하는 거야" 하더라.
그때 나는 '아니, 어떻게 저렇게 단적으로, 가치나 어떤 명분은 싹 다 갖다 버리고 '돈'이라는 목표에 대해서만 말하는 거지?' 하고 충격을 받았다. 저 '5,000억' 기업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 그 상사가 떠올랐다. 그분은 잘 계시려나.
어쨌거나, 마케팅에 별 관심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약간 반감을 가진 나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케팅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상상하지 말라, 그리고 꼰대가 되지 말라)를 아주 강조해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두 가지가 딱 머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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