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제목부터 기가 막히다. 부제도 끝내준다. "진심, 긍정, 노력이 내 삶을 방해한다."
자기 개발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듯한 이 책은, 자기 개발서에 지친 작가 나부랭이가 분노에 가득 차 써 제낀 책이 아니다.
무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심리학 실험들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한다고.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동기이고, 때로는 유용하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이 두 가지 동기가 우리 삶에 반드시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두 가지 동기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랑, 결혼, 믿음, 예의, 노력, 좋은 관계, 긍정, 칭찬, 보상, 자유의지, 진심, 공유된 문화. 이 책의 열두 개 장에서 각각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고 우리의 삶에 귀한 의미를 던져 주는 단어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동기, 보이는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동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은 동기와 만나면 더 이상 우리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철저히 배신하고 망가트릴 것이다.
그래서 각 장의 제목도 "이제 아무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파트 1), "나는 나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파트 2), "더 이상 세상에 호구 잡히지 않겠습니다"(파트 3), "좋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파트 4)이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만 몇 가지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일단 첫 번째. 고부 갈등을 위계질서로 설명한 장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지위 자체가 두 사람을 불편한 갈등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이 위계질서의 아랫사람으로써 기대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사와 부하가 식사를 하러 가면, 부하가 상사 자리에 수저도 놔 주고, 물잔도 세팅해 주기를 기대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방석을 깔아 준다든가.
이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부하에게 그 일이 기대되기 때문에 부하인 사람은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상사와의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위계가 생기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절대 좋아할 수 없다. 갑이 등장하면 을은 항상 불편하고 답답하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갑의 존재 자체가 을을 힘들게 한다. (...)
그렇다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와 명절 때 한 번씩 찾아와 용돈을 주는 며느리 중 시어머니는 누굴 더 좋아할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를 더 좋아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이 살면 두 사람의 사이는 절대 좋아질 수 없다. 위계 구조 속에 살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싫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를 상대로 분노와 상처가 쌓일 수밖에 없다. 명절 때만 찾아오는 며느리가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그렇지 않은 며느리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며느리더라도 위계질서 아래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 나쁜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것이 위계질서의 핵심이다. 지켜야 할 예의와 도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종의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어떤 일을 하라는 명령을 들으면 하기가 싫어진다. 그 전까지는 멀쩡히 그 일을 하고 싶었거나 좋아했어도 말이다.
그러니 만약에 그런 위계질서, 기대치, 기준이라는 게 없었다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했을 수도 있는 일(예를 들어 부모님 모시기)을, 그런 것들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그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위계질서는 약할수록 좋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살면서 이런 고민은 다들 한 번씩 해 봤을 것이다. 타인에게 거짓 칭찬을 해 주어야 할까, 말까?
예를 들어 보자. 신혼 부부가 있다. 결혼 후 첫날, 아내가 요리를 했다. 남편은 들뜬 마음으로 맛을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이 없다. 아내는 남편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할까? 맛이 없다고 솔직히 말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맛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아내가 요리에 자신감을 얻어 더 요리를 연습하고 궁극적으로 더 요리를 잘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할까?
저자가 직접 동료들과 수백 명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해 본 결과, 최고의 방법은 '솔직하게 잘했으면 잘했다, 못했으면 못했다 피드백해 주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수학 문제 10문제를 풀었고, 연구자들은 이들에게 몇 문제나 맞혔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얼마나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그리고 그 관점이 학생들의 학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학생들은 세 부류로 나뉠 수 있었다. 자신의 실제 점수보다 못 봤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신의 실제 점수보다 잘 봤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리고 자신의 실제 점수를 정확히 평가하는 경우.
그렇다면 어떤 부류의 학생들이 가장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있었을까? 과대평가한 학생도 아니고, 과소평가한 학생도 아니었다. 가장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실력을 현실적으로 직시한 학생들이었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자기 평가를 한 학생들이 공부를 제일 잘했던 것이다. 더 충격적인 발견은 과대평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리고 과소평가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학점이 더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두어 번 더 언급되는데, 그것들도 결과는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이 실험을 통해 평가와 피드백 그리고 칭찬과 꾸중은 진실하고 정확할 때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잘한 사람에게는 꼭 잘했다는 피드백을 주어야 하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꼭 잘못했다는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의 수준에 맞추어 잘하면 잘했다, 못하면 못했다 피드백을 해 준다고 해도, 못한다는 말을 하면 상대와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자는 이것도 아주 명료하게 정료해 주신다. 크으, 역시 교수님.
첫째, 상대방과의 관계가 상관없이 성과가 중요한 환경이라면 반드시 정확하고 현실적인 꾸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꾸중 없이는 성과도 낮고 성취 동기도 낮을 수밖에 없다.
둘째, 매일 보는 사람이지만 당신이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라면, 당신 마음대로 해라. 정확한 꾸중을 하면 상대방은 꾸중의 정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겠찌만 당신의 정확한 꾸중을 겸허히 받아들일지 말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셋째, 매일 보는 사람이며 당신이 아끼고 귀하는 마음이 있다면 꾸중해도 좋다. 당신의 꾸중을 감사히 받아들일 것이고 둘 사이에 신뢰가 더 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제일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이자 큰 깨달음을 준 부분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저자는 강연에 나갈 때마다 잊지 않고 꼭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상식 게임'인데, 사람들에게 어떤 것도 상관없으니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서 아주 어려운 문제 열 가지만 내 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음악, 만화, 전자 기기, 스포츠, 부동산, 문학, 뭐가 되든 분야는 상관없다. 대신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어려워야 한다.
문제가 출제되고 나면, 임의로 질문자와 답변자를 뽑는다. 그리고 둘이 나와서 질문자는 문제를 내고, 답변자는 문제를 맞혀 보게 시킨다.
그러면 대개 답변자는 한 문제 정도 맞히는 데 그치는데, 심지어 교수인 저자까지도 한 문제 이상을 맞혀 본 적이 여태껏 없단다.
그러고 나서 청중들에게 질문자와 답변자의 상식이 얼마나 풍부한지 1점(상식이 거의 없음)에서 7점(상식이 풍부함) 사이로 점수를 매겨 보라고 한다.
청중들은 질문자의 상식 수준을 6점으로 평가했고, 답변자의 상식 수준을 3점으로 평가했다. 답변자가 열 문제 중 한 문제만 맞혔으니 상식 수준이 낮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에 설명한 게임 규칙을 다시 한 번 보시라. 질문자는 자신이 아는 분야 내에서, 그것도 최대한 어려운 문제로만 골라서 출제하도록 요청받았다.
무작위로 고른 답변자가 질문자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고 그 분야를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몇이나 될까? 아마 아주 낮을 것이다.
무엇보다, 청중들은 분명히 이 게임의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질문자가 일부러 가장 어려운 문제를 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자가 상식 수준이 낮다고 평한 것이다.
여러분이 답변자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상식'이란 것은 기껏해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을 범위로 해야지, 질문자 개인이 임의로 선택한 분야의 지식을, 그것도 일부러 틀리라고 만든 가장 어려운 문제를 틀렸기로소니, 단번에 상식 없는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바로 이것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왜 청중들은 상식 게임을 설명하면서 세 번이나 강조한 게임의 상황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인간의 심오하고 안타까운 심리가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프게도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노력도 하고 시늉도 해 보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 이 희망은 희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 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까? 첫째 이유는 신기하게도 남의 상황을 인식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상식 게임에서 청중들은 답변자와 질문자가 어떤 게임 상황에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세 번이나 설명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 경연에서 이 두 개의 주의 사항을 여섯 번이나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질문자는 똑똑하고, 문제를 거의 맞히지 못한 답변자는 멍청하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행동과 결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동과 결과를 발생시킨 처지가 눈앞에 보여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많은 심리학 실험에서 밝혀진 것처럼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것이 물리적으로는 보여도 심리적으로는 처리하지 않는 원리와 같다.
둘째 이유는 한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과 상황을 인식했더라도 그 환경과 상황이 그 사람의 행동과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의 영향력을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조금 어렵게 보이기는 하지만 한 문제밖에 못 푼 건 네가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멍청해서 그런 거지." 또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없었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네가 멍청해서 그렇지.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고 다 공부 못하니?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혼자 끙끙 속으로만 앓지 말고 말하시라. 말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모른다.
남을 배려한답시고 자기가 힘든 것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게 애써서 해 주는 배려인 줄도 모르고 그냥 받아 먹을 뿐이다. 자기가 괜찮은 거니까 나에게 해 주는 거겠지, 하면서.
진짜로 너무 억울해 죽을 거 같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애초부터 말을 해야 한다. 꾹 참는 건 절대 미덕이 아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받아 마땅한 것도 받지 못하는 수가 있다. 필요하다면 지랄 발광도 해야 한다.
그 첫째 이유는 나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이 없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묵묵히 일하면서 누군가 알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런 경우는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일 뿐이다. 정말로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면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쓰이지도 않을 것이다. 묵묵히 일하면 할수록 당신의 믿음이 배신당할 확률이 높은 이유다.
둘째 이유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안다고 해도 나의 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수고스럽고 힘든 일인지 알기 어렵다.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정보의 부족과 경험의 부족이 타인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혼자 묵묵히 일하면서 억울해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너무 생색내는 거 아니냐고? 10 일한 걸 50쯤 일한 것처럼 부풀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노력이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마땅한 인정을 받을 정도로 나를 PR할 필요는 반드시 있다.
정말로 이 "진심의 배신"이라는 꼭지는 내가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저자에게 충분히 감사한다.
이외에도 노력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느냐에 관한 동서양의 관점 차도 무척 흥미롭다.
보상이 어떻게 대상에 대한 흥미를 빼앗아가는지는 이미 다들 경험을 통해 알겠지만, 그래도 이 꼭지의 소제목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읽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긍정, 노력, 진심 같은 단어에 질렸고, 더 이상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건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역시,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 것이고, 좀 더 현실적인 감각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아주 속이 시원해진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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