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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조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by Jaime Chung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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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조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내가 어릴 적에 재밌게 읽었던 '돈 까밀로와 뻬뽀네' 시리즈가 10권 모두 재출간되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 시리즈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돈 까밀로라는 열혈 사제와 공산주의자 읍장 뼤뽀네가 티격태격하는 이야기이다.

어릴 때 정말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서, 리디북스에서 이걸 발견하고 나서 1권('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무료로 다운 받아 읽었는데, 그 재미는 그대로였다.

 

돈 까밀로는 힘이 센 거구의 사제인데, 공산주의자인 읍장 뻬뽀네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돈 까밀로는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은 돈 까밀로네 성당에 영으로서('귀신처럼'이라고 쓰려다가 그건 신성모독인 것 같아 표현을 바꿨다) 살고 계신다.

그렇다고 놀라지는 마시라. 저자 과레스키는 이 예수님이 실제 종교적 인물인 그 예수님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라고 밝혔으니 말이다.

돈 까밀로는 주로 예수님께 뻬뽀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지만, 예수님은 예수님답게 만인을 사랑하셔서 돈 까밀로가 정치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뻬뽀네나 다른 공산당원에게 부당한 행동을 할 때 따끔하게 일침을 놓으신다.

하느님을 모시는 사제답게, 정치적 이념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옳은 일을 하라고.

그리고 이런 예수님 말씀은 언제나 옳아서, 돈 까밀로는 거진(한 열 번에 여덟 번 정도) 예수님 뜻대로 공산주의자들도 포용한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돈 까밀로:

제단 위의 예수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를

 

 

'돈 까밀로와 뻬뽀네' 시리즈의 매력은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실은 정말 그 누구보다도 진한 우정은 나눈다는 사실이 아닐까?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싫어하는 것 같아도 중요한 때에는 협력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의 뜻을 저지할까 궁리하면서도 상대에게 한 대쯤 시원하게 맞기를 기대하는 그런 관계. 말하자면 '내가 인정한, 나의 유일한 맞수'랄까?

그런 데서 재미가 유래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돈 까밀로는 두 손을 모은 채 예수님을 바라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손은 축복하라고 있는 것이지만 발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구나." 제단 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돈 까밀로, 부탁이다. 딱 한 번만 차라."

예수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돈 까밀로는 번개처럼 날아가 뻬뽀네의 등짝을 걷어찼다. 뻬뽀네는 제단 앞으로 발랑 나자빠졌다. 그런데 그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몸을 일으키며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10분째 이걸 기다리고 있었소. 나도 이제야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소이다." 뻬뽀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 돈 까밀로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마음도 맑게 갠 하늘처럼 후련하고 시원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도 속으로는 흡족해하셨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1권에서 돈 까밀로가 그토록 바라던 커다란 종을 포기하고 그에 쓰려던 돈을 보육원 짓는 데 쓰는 에피소드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심지어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든 게, 가난해서 빼빼 마른 공산당원의 아들이었다는 게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나중에는 뻬뽀네의 아들도 그 보육원에 보내는 대인배 돈 까밀로ㅜㅜ!

 

<로미오와 줄리엣> 뺨치는, 원수 집안 딸과 아들의 사랑 이야기도 훈훈하고 웃겼다.

이탈리아인들 아니랄까 봐, 결혼하려는 이 커플은 이렇게 싸운다:

"흥, 곧 있으면 당신네 식구들이 재판을 받고 모두 감옥으로 가게 될 날이 올 거예요! 당신 눈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라도 당신과 꼭 결혼하고 말 거예요!" 다시 지나가 맞받아쳤다.

"나야말로 당신 따귀를 후려갈기기 위해서라도 꼭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청년이 대꾸했다.

돈 까밀로가 일어서서 고함을 질렀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내 발길질에 쫓겨날 줄 알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니 다행!

 

어릴 적에 이 시리즈를 읽을 때는(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한 두세 권밖에 출간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10권이 모두 재출간되어서 너무너무 기쁘다. 다 읽어 보고 싶다!

 

이 재밌는 책에 딱 하나 아쉬운 점은, 편집 상태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다. 

내가 본 e북 버전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종이책은 구해 볼 방법이 없어서 비교할 수 없었다), 정말 초보적인 수준의 교정교열 실수가 너무 많다.

교정교열을 한 번이라도 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번역도 썩 괜찮게 해놓고 교정교열을 이따위로 하면 좋은 책이라는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라는 거 모르나?

'가톨 릭'이라든가 '지나 였다', '어린양이여', '내 버려두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기초적인 띄어쓰기 오류는 물론, '영강님', '거릴 낄'('거리낄'을 의도한 것 같다) 같은 우스운 오타도 존재한다.

제발 1권의 e북만 그런 거기를. 2권부터 10권까지 전부 이 모양이면 빡쳐서 내 돈 주고 못 사 읽을 것 같다.

2권부터 10권까지의 편집 상태애 대해 아시는 바가 있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관대하게 눈감아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단연코 '돈 까밀로와 뻬뽀네' 시리즈를 추천한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법하다. BBC에서 라디오 시리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이니 재미는 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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