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다시 로크먼,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책 제목은, 책 커버에 쓰인 문구처럼, 남자들은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데 여자들은 '모든 걸 다 잘해야' 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다시 말해 남성은 자기 일만 잘하면 되지만 여성들은 자기 커리어 이외에 집안일과 육아까지 잘할 것을 기대받는 현상을 말한다. 그것도 일종의 성차별이기 때문이다.
여성 운동으로 인해 이제는 여성들이 고등 교육을 받거나 자신만의 일, 직업을 갖는 일은 전혀 이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 운동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 여성들은 '일'도 잘하고 '집(집안일 + 자녀 양육)'까지 잘 돌보기를 기대받기 때문이다. 그냥 해야 할 일이 늘은 것뿐이다. 남성들은 여전히 집안일이나 육아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내가 리디북스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보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이 책을 떠올리고 다운 받아 읽은 거라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예전에 미리보기로 읽었던 부분이 기억 속에 조금 남아 있어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리디북스에서 미리보기로 보여 주는 일정 분량을 넘어섰는데도 뭔가 어디에서 이런 내용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떠올렸다. 내가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에서 읽은 내용과 정확히 똑같은 상황을 저자가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1.12.1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애너벨 크랩, <아내 가뭄>
<아내 가뭄>은 호주의 정치부 기자인 저자가 써서 호주를 중심으로 통계라든지, 저자 본인 또는 주위 친구들 등의 경험이 제시되는데, 이 책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미국인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통계나 인터뷰 내용 등을 싣고 있다.
각 저자들의 출신과 글의 배경이 되는 국가는 다른데도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기시감이 들게 만들다니,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바로 성차별이 미국이고 호주고, (그리고 한국인인 나도 공감할 수 있으니) 한국에도 만연하다는 의미이다.
내 말이 의심된다면,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라.
일단 책 읽기를 시작하자 관련 자료는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2015년 말 <뉴스위크>는 오하이오주에 사는 부부 2백 쌍을 대상으로 한 "남자는 첫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가사노동에 각각 주당 15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자 여성이 육아데 들인 시간은 22시간인 데 비해 남성은 육아에 고작 14시간을 들였다. 남성은 육아에 대한 보상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5시간 줄어들었지만 여성은 15시간을 그대로 유지했다.
여러 사회과학 간행물에서는 <결혼과 가족 저널(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에서 발췌한 다음 문단처럼 수차례 이 문제를 지적한다. "가사 분담으로 잠재 이득이 생기고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가 급속히 증가했으며, 또 이상적이고 평등한 결혼 생활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많은 이들은 가사 분담에서 남녀의 구분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연구 결과는 이런 예측을 거의 뒷받침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은 연구자들에게 답이 없는 큰 문제를 남겼다. '왜 남자들은 일을 더 하지 않는가?'
남성들의 집안일 및 육아 참여가 적은 게 내가 생각하는 현재 우리나라가 출산율이 극히 낮은 원인들 중 하나이다(물론 자신만의 집을 갖기 어려운 것과 좋은 일자리가 없어 스스로를 부양하기도 어려운 것도 그 원인에 속한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여자들은 이제 일도 하는데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하라고 하면 당연히 두 배로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성들이 자신의 몫을 하지 않으니, 다시 말해 실질적인 성 평등 지수가 상승하지 않았으니, 여성들도 육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모니크와 주변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성 평등이라는 미사여구를 들으며 자랐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우리는 교육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는 수정 법안 제9조를 쟁취했고 대학원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미사여구는 딱 여기에서 멈추었고, 이런 명백하고 당연한 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가 하는 일을 뭐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모니크는 변호사이지만, 모니크의 남편은 주양육자가 아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사례의 '모니크'와 마찬가지로, 한국 여성들도 성 평등이란 말을 들으며 자랐는데 실제 커 보니 남성들이 집안일이나 육아를 '50 대 50'으로 나눠서 하지 않는 걸 보고 분노하며 좌절감을 겪는다.
이건 꼭 당사자가 결혼을 해 봐야만 아는 게 아니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하다못해 남성 동거인(오빠나 남동생 같은 혈육)만 있어도 알 수 있는 거다.
여자들에게는, 예컨대 빨래도 돌려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며 당장 저녁에 먹을 거리가 없으니 장도 봐야 한다는 식으로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인다면,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빨래는 입을 옷이 다 떨어지면 그때 부랴부랴 하고(그럼 그동안은 뭘 입는데?) 설거지는 나중으로 미루며, 먹을 게 없으면 시켜 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렇게 하면 집안이 얼마나 잘 돌아가겠나, 쓰면서도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요, 알겠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고요. 그래서 어떡해야 하죠?'라고 질문하신다면, 일단 나는 이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싶다.
그러나 성 이데올로기가 행동과 전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의 경우에만, 성 이데올로기는 행동과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전통적인 성 이데올로기에 덜 얽매일수록 가사를 더 많이 분담한다. 이런 결과는 대만, 이스라엘, 중국, 캐나다, 스웨덴, 영국, 미국의 표본 연구 집단에서 확인된다. 이 논문의 결론을 인용하자면, "남편의 성 이데올로기는 아내의 성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력한 가사 분담 결정 요인일지도 모른다."
위의 논문과 기조를 같이하는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엄마가 아닌) 아빠의 평등에 대한 믿음이 아빠의 양육 참여와 긍정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고 믿는 여성의 결혼 만족도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낮은 경향이 있고,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결혼 만족도가 더 높다는 사실이 놀랄 만한 일인가?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보다 더 평등을 추구하는 경우, 가정 불화는 더 적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평등을 추구한다면 가정 불화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방법적인 면에서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 (당신이 입법자나 교육자나, 언론인, 또는 이런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양성 평등 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성들에게 양성 평등 교육을 실시한다.
'남성다움'을 강조하며 여성 혐오를 재생산하는 개인들 및 사회 문화 전반에 경종을 울리고 양성 평등을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도입한다.
예컨대, 남성에게도 육아 휴직을 강제로 일정 기간 사용하게 한다. '너, 애 태어났으니까 회사에 일하러 오지 마'라고 하라는 게 아니고, 육아 보조금을 지급하되 남성이 육아 휴직을 사용해야만 받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유도하라는 것이다.
아이아 태어난 직후부터 아이를 돌보는 데 많이 참여한 남성일수록 아이에 대한 친밀감도 높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이후에도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육아 및 가사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남성 육아 휴직을 권장하는 게 좋다.
두 번째, (당신이 '독박 육아', '독박 살림'을 피하고 싶어 하는 미혼 여성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양성이 평등한, 다시 말해 가사와 육아 분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결혼 생활을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그것을 정확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이에 대해 (예비) 남편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라는 것.
저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들은 한 인상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책임은 보통 엄마에게 떨어지기 십상이다. 도이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등하게 분담하는 관계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한 여자들은 대부분 집안일 하나하나 얘기할 때도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못된 사람들이 아니고 정의감도 있고 들을 줄도 알지만, 여전히 한 번 이상 말을 해줘야 할 때가 있어요. 제가 목격한 이런 역학관계는 말하자면 여자가 하고, 하고, 또 하다가 폭발하면 남자가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내가 좀 할게' 이런 식이죠. 이런 평등이 아니고 평등하게 되지도 않아요. 제가 아는 한 여성은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이 대단히 보수적이었어요. 그런데 이분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죠. 이 여자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냥 남편을 앉혀놓고 말했어요. '우리 생활은 이렇게 돼야 하고 나는 이렇게 될 때까지 계속 밀어붙인다'고요. 인내와 이게 옳다는 믿음과 이를 계속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러니 일찌감치 (예비) 남편에게 이 점을 알리고 대화를 많이 해서 조율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이건 정말 여성 쪽에서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계속되어야 가능한 일일 테다.
왜냐하면, 이걸 강력히 피력하지 않는다면 '독박 육아', '독박 가사'로 빠지기 너무 쉽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가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은 상대(남편)이 집안일과 육아에서 자신의 몫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필요하다면 이혼을 할 각오라도 되어 있는가? (책에도 집안일과 육아를 혼자 다 하는 것에 지치고 남편에게 분노해 이혼한 여자들 이야기가 몇 번 나오긴 한다).
옥시덴탈대학교 사회학자 리사 웨이드 말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바보 같은 남자가 아이의 아버지인데, 그가 아이 가방을 싸지 않는다고 정말 결혼을 뒤집을 겁니까?"
물론 이혼을 하느니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굳이 여성이 자기 한몸을 다 희생해가며 원래 두 사람(=부모)이 공평히 나눠서 해야 할 일을 혼자 다해야 할까? 그럴 가치가 있을까?
나라면 차라리 평등한 결혼 생활이 안 될 것 같다면 아예 결혼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아래 통계 결과를 참고하시라.
앤더슨과 콜러는 다음 두 가지의 상호작용을 궁금해했다. 첫째는 맥도널드가 보는 출산율과 성 평등의 상관관계와 둘째로는 남성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남편의 무임 노동 비율이 훨씬 높다는 연구, 즉 여자 대비 남자가 많으면 남자의 가사 참여 비율이 높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산업혁명 이후의 전 세계 인구 자료와 가정 내 성 평등 정도를 분석했다. 이들이 발견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경제가 발견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는데, 각 연령대 집단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보통 4세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들의 경우 이들이 속한 결혼 인구 성비는 여자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졌다(결혼 적령기 여자가 적어짐). 남자들이 점점 가능성의 한계를 체감하면서, 또는 여자들이 결혼 시장에서 권력의 강화를 체감하면서 성 평등 수준이 향상되었다.
지금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남자들이 딱히 정신 차리는 거 같지도 않지만... 출산율이 더욱 낮아져서 인구 성비가 여성들에게 더욱더 유리하게 기울어진다면 뭔가 바뀔 수도 있지 않나. 아니면 말고.
어차피 인구 부족으로 인해 지방이 붕괴하고, 노동력이 낮아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들은 '윗사람'들이나 신경 쓰는 법이지. 우리가 알 게 뭔가. 그게 두려우면 정신 차리고 양성 평등 교육에 더욱더 노력을 기울여야지. 내 알 바인가.
물론 내가 제시하는 두 가지 방법이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두 번째 방법만. 첫 번째는 아주 이성적인 방법이니까) 다행히도 이 책의 저자가 그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라.
이 책은 내가 요약 정리하지 못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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