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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민혜영, <여자 공부하는 여자>

by Jaime Chung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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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 수업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위해 읽은 페미니즘 서적들을 간략히 요약하고 감상을 표현한 글을 모은 것이다. 내가 이미 읽은 책도 많지만 내가 몰랐던 좋은 책들도 있어서 대박 ‘노다지’를 캔 기분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왜 자신이 이 늦은 나이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일과 육아로 분주해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걸까?’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번갈아 드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행의 검은 글자, 그 빛에.”

저자는 ‘문제를 덮어두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발견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에 말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드디어 찾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는 일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 삶의 고민과 의문과 바람을 설명해줄 언어가 ‘페미니즘’에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어버렸고 이제 이것을 내 이야기로 고쳐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쳐 읽으면 고쳐 쓰지 않을 수 없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사사키 아타루의 말대로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옥 같은 책들을 여러 권 소개하는데, 그중 내가 제일 공감하거나 제일 ‘오!’ 하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책들 위주로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가가 있는 엄마를 찾습니다: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 <타임푸어>, <아내가뭄>’:

만약 여성들이 남자들처럼 까다롭지 않게 가사 노동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예 모든 것을 타인과 기계에 맡긴다고 가정하자.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빨래는 세탁소에서, 청소는 가사 도우미가, 설거지는 식기 세척기가, 요리는 마트에서 즉석 요리를 사 먹는다고 치자. 그러면 신경 쓸 일이 사라지나? 가사 도우미를 섭외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세탁소에 빨랫거리를 가지고 갔다가 날짜에 맞추어 가지고 오고, 만들어진 반찬을 사고, 찬거리 배달을 주문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는 그 모든 것은 노동이 아닌가? 왜 여성이 저녁거리를 사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쇼핑이 되는 걸까?

<아내 가뭄>의 저자는 여자들이 가사 노동을 덜할 수 없는 건 남들의 시선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가사 노동과 재생산 노동은 여성의 역할 규범 내 핵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가사 일을 못하는 것은 유머로 보지만, 아내가 가사 일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 무능력, 나아가 혐오로 인식된다. 남편이 육아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생계부양자로서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육아를 하는 것 자체가 남자들끼리만 사회적 관계를 맺는 그들의 세계에서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인식되어서다. 이는 남성이 육아 휴직을 쉽게 내지 못하는 직장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이런 사회에서 가사 노동은 모두가 필요하지만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된다.

(…)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반찬은 뭘 할지, 아이들이 학원에 늦게 가지는 않는지, 아이를 제시간에 픽업하려면 동선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이 모든 일은 언제 끝날지, 끝이 있기나 한지. 그렇다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퉁치고 싶지는 않다. <아내 가뭄>의 추천사에서 정희진이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치우는 것이다. 자기가 입은 옷은 자기가 빨래하는 것이다. 이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 (개인) 미달’이다. 그러므로 ‘주부’나 ‘아내’는 정체성도, 직업도, 지위도 될 수 없다. ‘아내 가뭄’은 모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반대로 어느 누구도 ‘아내를 가질’ 특권은 없다는 뜻이다.”

 

‘내 안의 콤플렉스를 고발합니다: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가부장제란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낳은 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멸시하도록 기르는 시스템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착한 남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맨박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내게 “피해자 놀이를 하고 있냐”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자리에서는 따라 웃었지만 서서히 기분이 나빠졌다. ‘피해자 놀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과연 피해자 놀이인가? 우리는 피해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더더욱 그것이 놀이일 리가 없지 않은가!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고 화를 낸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한국의 남성이 다 ‘일베’이거나 ‘몰카’에 찬성하거나 강간과 섹스를 혼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들은 선한 의도를 가졌고, 여성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여성을 때리거나 강간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도 많다는 것을. 아직도 이수많은 남성들이 이런 선하고 평범한 ‘착한 남자’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토니 포터의 <맨박스>는 이런 착한 남성들을 위한 책이다. 그는 첫 장에서부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런 ‘착한 남자’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것은 남자들만의 특권과 그릇된 남성성의 사회적 학습이 가정 폭력, 10대 데이트 폭력, 성폭력, 성매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딱히 페미니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공감되는 말이라 꼭 여기에 옮겨 공유하고 싶다.

일본의 지성이라 불리는 우치다 타쓰루는 자신의 책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서 ‘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히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면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 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맘충의 정치경제학: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김지영 씨를 맘충으로 만든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첫째 평일 오후, 둘째 커피, 셋째 유모차 끌고 산책. 나는 맘충이 더 정확하게는 일하지 않으며 혹은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소비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한다. 소비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에는 이미 유구한 역사가 있다. ‘김 여사’가 그러하다. 1990년대 김 여사가 자가용을 타는 중년 여성에 대한 혐오였다면 지금의 맘충은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유모차를 미는 좀 더 어리고 만만한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맘충인가? ‘김 여사’와 ‘직업 여성’처럼 소비하는 여성이 혐오의 주된 대상이었던 적은 많았지만 엄마였던 적은 없었다. 왜 지금 혐오의 스펙트럼에 엄마가 포함되었을까?

나는 거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결혼으로 여성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지금 세대에게 여성은 그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경제력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되는 듯하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할 때 돈도 안 내고, 결혼하고 직업도 안 가져도 되는데 남성은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이다. 지금같이 어려운 세상에서 경제력을 확보해야만 남성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데 여성은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받는다는 것. 아마도 역차별이라는 말은 이런 감정에서 표현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 남성의 억울함이 가장 쉽게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곧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이다.

맘충은 남편을 생계 부양자로 지정하고 (남성은 밖에 나가 힘들게 일하는데) 남편이 번 돈으로 (생각 없이 펑펑 쓰면서) 아침에 카페에 모여 수다나 떨면서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고, 몰려다니며 육아용품이나 쇼핑하고 아이를 사교육으로 내몰면서, 내 아이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개념 없는) 여자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남편이 주는 돈을 받아 ‘주체적으로 일하지 않고 소비하는 여성’ 즉 전업주부란, 근대 정상 가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여성에게 부여된 유일한 역할이었다. 여성 돌봄 노동자와 남성 생계 부양자의 조합, 그것이 우리나라를 만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아니던가. 이 사회가 규정해놓은 정상이라는 범주는 이미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여성 노동에 대한 몰이해가 동반된다. 여성의 육아, 돌봄, 가사, 재생산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집에서 노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두 번째, 엄마에 대한 혐오는 곧 이 시대를 사는 중산층 가부장제의 엄마 역할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에서 가족은 철저하게 정상 가족만을 위한, 정상 가족에 의한, 정상 가족을 향한 리그이다. 그 정상 가족은 이제 계급 재생산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아내’를 둘러싼 대연정: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별분업>, <캘리번과 마녀>’:

1920년대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의 급료를 올려주는 조건으로 결혼 증명서를 요구했다. 게다가 그 증명서가 맞는지 확인할 조사관들을 각 가정에 파견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하며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산업주의는 일부일처제를 필요로 한다. 노동자들이 무질서하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아무 때나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 격정적인 하룻밤의 날아갈 듯한 기분은 가장 완벽하게 자동화된 생산 라인의 규칙적인 움직임과 함께 갈 수 없다.”(<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서 인용)

’가족 임금’은 남성에게는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권위를 부여해줌으로써 하루 여덟 시간도 넘게 두말없이 일하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통해 가부장의 권위를 강화됐으며 국가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귀속되는 길을 터주었다. 이제 여성이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노동 계급의 하녀’가 되었다. 거기에 여성의 의견은 왜 없었을까?

이즈음부터 ‘낭만적 사랑’과 그에 기반한 결혼제도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남성에게 주는 당근이 ‘남성 생계 부양자로서 지위에 따른 가족 내 여성 노동의 종속’이었다면 여성에게 주는 당근은 ‘낭만적 사랑과 결혼을 통한 안정적 지위의 획득’일 것이다. 그것이 진짜이든 아니든 여성들은 그 길만이 행복이라고 주입받았다. 이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에게는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남녀 차별적인 위계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낭만적 프로파간다로 작동했고,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광고와 미디어를 통해 낭만적 사랑과 운명의 결혼, 사랑받아야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환상(그리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예쁘고 젊고 섹시해야 한다는 강박까지)을 주입받는다. 이것의 바탕에는 여성이 가정에서 적절한 과제를 계속 수행해주길 원하는 누군가들이 있었다.

(…)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에서는 현대자동차에서 시행했던 (지금도 시행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족 경영에 대해 이야기한다. 회사는 생산직 노동자의 아내들을 초대해 남편이 하는 일을 견학하게 한다. 남편이 회사에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동하는지 학습시키고, 가정이 우선 편안해야 남성이 회사에서 좋은 노동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곧 남성 노동자가 생계 부양자 역할에 충실할 뿐 아니라 부양가족을 보호, 통제하고 건실한 가족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곧 이상적 노동자의 자질로 여겨지게끔 만드는 과정이다.

 

현대자동차 경영진이 이렇게 가부장제에 찌든 제도를 운영했었다니,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런 사고에서 혁신? 가능할 리가 없지.

저자가 의도했듯 (”그래서 이 책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나의 지도를 건네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페미니즘 또는 여성을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길라잡이로 삼아 보시라.

✚ 이 책에서 소개한 브리짓 슐트의 <타임푸어>는 ,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은 나도 읽고 서평을 남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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