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정율리, <비디오 키드의 생애>

[책 감상/책 추천] 정율리, <비디오 키드의 생애>

 

 

<비디오 키드의 생애>는 어릴 적부터 비디오를 빌려 보며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 한 ‘영화 덕후’의 에세이이다.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작이라고 한다.

저자는 <백발마녀전>(1993), <빅>(1988), <구니스>(1985) 등으로 시작해 <희생>(1986), <타인의 삶>(2006), <타인의 취향>(1999) 등 어려운, 또는 예술 영화까지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길에는 언제나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소소하지만 읽다 보면 ‘아, 나도 저 영화 봤는데!(또는 좋아하는데!)’라며 공감할 수 있고, 또 좋은 영화를 많이 알아 갈 기회가 되기도 한다(이 책에 언급된 영화를 최소 80%는 다 본 사람으로서 거의 다 좋은 영화라고 보증할 수 있다).

사실 나도 예전에는 에세이, 그러니까 수필을 싫어했다. 제일 쉽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인간 혐오증에 걸린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내가 편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과 접촉할 수 있다면 그렇다는 거다). 수필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뀌었다. 나도 그럤지만 사람들이 수필을 싫어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대단치 않은’ 삶의 일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 보자. 타인이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한 경험을 했다면 (대필 작가를 이용해서라도)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필은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쓸 정도는 아닌데 놀라운 경험이라 한다면 뭐가 있겠는가? 아마 배우 이상우 씨가 말했던, ‘집 가는 길에 찻길에서 코끼리를 봤다’ (이 이야기를 모르시는 분은 여기를 보시라) 하는 경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일을 지극히 드물다.

그래서 수필은 뻔하디 뻔한 경험을 다룰 수밖에 없다. 친구 이야기, 연애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회사 이야기, 술 마신 이야기, 영화 본 이야기, 운동한 이야기, 기타 등등.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흔한 경험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수필의 미덕이 아닐까. 게다가 흔한 경험이더라도 저자가 그 일을 얼마나 색다른 시선으로 그걸 바라보는지(예컨대, 다른 이들은 곧바로 떠올리지 못할 법한 독특한 교훈을 얻는다든지)와 어떻게 재미있고 흥미롭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독자들에게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이 책 자체는 ‘영화 덕후의 수필’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고, 또한 이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내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별거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아는 맛이어서 더 맛보고 싶은 요리도 있게 마련이니까. 공감할 수 있는 ‘옛날’ 영화 이야기와 볼만한 영화 추천을 찾는다면 이 수필이 바로 여러분이 찾는 ‘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