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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조선영, <책 파는 법>

by Jaime Chung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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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조선영, <책 파는 법>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 꿈을 꿔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드물 것이다. 작가부터 시작해 편집자, 교정﹒교열자, 출판 디자이너, 서점 주인 또는 직원까지, 책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이 있지만 ‘책’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직업이 바로 ‘책 MD’이다. 저자는 예스24의 도서 MD로서 잔뼈가 굵은 인물인데, 책 MD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일과 관련된 애환을 털어놓는다.

도서 MD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자는 “(팔기 위해선) 뭐든지 다 한다의 줄임말입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MD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의 약어로 상품화 계획과 상품 구입, 가공, 진열, 판매 등의 업무 전반을 책임지는 사람을 일컫는다. 어떤 제품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생산﹒유통할지를 예상해 판매 촉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의류업과 유통업에서 먼저 쓰이다가 2000년대 초반에 서점업계에도 도입되었다. 도서 MD의 업무는 서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은 출판사에 책을 주문하고 구매한 다음 독자에게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현재 ‘도서 MD’라는 불리는 이 직군은 저자가 온라인 서점에 첫발을 디딘 2001년에만 해도 원래 ‘편집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마 온라인상의 매대에 책을 진열하고 소개하는 것을 일종의 편집으로 본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당시 온라인 서점 편집자의 주 업무는 자신이 맡은 분야의 도서를 살펴보고, 서지정보팀에서 등록한 도서 정보를 바탕으로 책 소개 글을 새롭게 작성하거나 수정하며, 간혹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소개 글보다 좀 더 긴 리뷰를 작성하고, 독자가 관심을 갖고 구매할 만한 책을 추천하는 것이었다. 또한 매주 회의를 통해 서점 사이트 첫 페이지에 띄울 책이나 그 외 각각의 코너에 소개할 책을 선정하는 일, 담당 분야 페이지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일도 있었다. 책 소개 글을 작성하고 리뷰를 쓰는 게 주된 업무이기는 했으나, 출판사와 소통하며 책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상에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기에 상황에 따라 주력 업무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직무명이 ‘도서 MD’로 전환된 지금, 오전은 대체로 도서 발주 업무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서점 메인 페이지에 올릴 책들을 결정하는 도서 선정 회의를 한다. 오후에는 출판사와 식사 약속을 잡거나 본격적으로 출판사 마케터와의 미팅을 한다. MD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미팅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나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도서 MD라면 무엇보다 ‘잘 팔리는’ 책을 보는 눈이 중요할 텐데, 저자는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을 이렇게 선정했다.

1️⃣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는가

2️⃣ 책 읽는 이들에게 생각할 만한 문제를 계속 던져 주는가

3️⃣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지는가

참으로 훌륭한 기준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기준에 모두 공감했다. 새롭고 참신한 시각, 생각할 거리, 그리고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까지, 내가 좋은 책에 바라는 모든 것들을 잘 정리했다. 이런 책들만 매일 만날 수 있다면 바랄 바가 없겠다(불가능하겠지만, 일단 꿈을 꿔 볼 수는 있는 거잖아요!).

온라인 서점 이야기를 할 때 굿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온라인 서점 MD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도서 판매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 진행’인데,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이벤트는 “불특정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개최하는 잔치”를 의미하며 ‘기획 행사’, ‘행사’ 등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매일 열리는 잔치가 과연 잔치가 맞을까. 이벤트라는 건 어쩌다 기대치 않게 벌이는 사건 같은 것인데 일년 내내 하고 있는 걸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지만 뭐, 그렇다고 하자. 분명 어딘가에는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의 구매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 테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이 책을 안 사고는 못 배기도록 온라인 가판을 벌인다. “자 골라 봐요, 골라 봐. 저쪽은 머그잔을 준다고요? 우리는 (3천 원만 차감하면) 어깨에 멜 수도 있고 들 수도 있는 가방을 드려요.” 정말 머그잔을 샀더니 책이 딸려 왔다, 사방을 샀더니 책이 딸려 왔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서점 초창기만 해도 서점 전체를 통틀어 이벤트라곤 십여 개 정도였던 때도 있었는데, 그 시절엔 이벤트 담당자가 한 명이었다고 얘기해 주면 지금 후배들은 기절초풍할 거다. 현재는 책 한 권에 십여 개의 이벤트가 연결된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이게 온라인 서점인지 잡화점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이런 것에 혹해서 책을 충동구매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 온라인 서점을 이용할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그냥 구경만 하고 ‘응 예쁘네~’ 하고 넘어가게 된다. 도서 MD들이 “이번에 제작할 에코백의 재질이 캔버스인지 광목인지, 노트에는 어떤 지종(紙種)을 써야 고객들이 필기감이 좋다고 할지 등을 고민하고 있노라면 내가 서점에서 일하는 건가 선물 가게에서 일하는 건가 (내가 이러려고……) 잠시 헷갈리며 자괴감이” 드는 것도 이해가 된다.

도서 MD의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 줄 몰랐는데 덕분에 내 세상도 조금 더 넓어졌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제목이 ‘책 파는 법’으로 정해졌지만 정확하게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 파는 법, 혹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팔며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나는 이 책을 온라인 서점 MD가 냉정한 깍쟁이들로만 여겨져 담당 MD와 미팅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초보 출판인들이 읽어 주길 바란다. 또한 책 만드는 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자부하나 정작 책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는 막막해하는 편집자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며 가끔 모니터 뒤에서 무슨 일이 궁금했던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슬며시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온라인 서점에 접속한 순간 마주하는 모니터의 반대편에 MD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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