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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해파랑,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

by Jaime Chung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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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해파랑,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

 

 

⚠️ 아래 서평은 해파랑의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두 가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들어가기 #1 상업적인 성공이 중요한 대중음악 판에서 프로듀서는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 일례로, 비틀즈를 발굴하고 프로듀싱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라고 불릴 정도였다. 비틀즈가 조지 마틴을 만나지 못했다면, 비틀즈가 그만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들어가기 #2 글쓰기의 첫 번째 규칙은 “보여 줘라, 말하지 말고(show, don’t tell)”이다. 이는, 감각이나 이미지를 통해,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감정을 독자들이 직접 추리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작법을 말한다. 예컨대, “그는 너무 배가 고팠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의 배가 우르르꽝꽝 천둥 같은 소리를 냈다. 그는 소리를 막아 보려 배를 감싸안았지만 텅 빈 배는 밥 달라는 아우성을 그칠 줄 몰랐다.”라고 묘사할 수 있고, “그녀는 화가 났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녀의 얼굴은 점점 시뻘개졌고, 호흡은 씩씩 거칠어졌다.”라고 ‘보여 줄’ 수도 있다. 모든 장면을 ‘보여 줄’ 필요는 없지만 ‘말하기’와 ‘보여 주기’를 적절히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것이 독자를 글에 몰입시키기 좋다.

오늘 서평을 쓸 해파랑의 SF 연작 소설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을 읽으며 마음 깊이 새긴 두 가지 사실이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나라서 제목을 보고 혹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아이디어는 정말 기발하고 놀랍다. 논의를 위해 잠시 이 소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이자 줄거리를 소개해야겠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어떤 망해 가는 연예 기획사를 캐리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는데, 그중 센터가 난 놈 중의 난 놈이라, 외모며 노래며 춤이며 끼며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하다. 문제는 성격이 너무 개차반이라 연습생일 시절에 원래 있던 연예 기획사에서 방출될 정도였다는 것. 현재 그가 속해 있는 연예 기획사의 사장은 이 센터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센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치는 사고를 수습하느라 미칠 것 같다. 다행히 지금 이 센터는 군대에 갔는데 제대가 코앞이다. 말을 안 들어처먹는 이놈이 제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장은 답답한 마음에 무당을 찾아간다. 그 무당은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로 가면 된다며 주소를 적어 준다.

그 주소는 충남 태안군 바닷가였고, 거기에 가 보니 웬 보트에서 중국어로 ‘나 살려 달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중국인은 인간 유전자 편집 및 인간 복제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그 연구소는 외국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을 꼭 닮았지만 지능은 심히 떨어지는 복제 인간(‘메롱 인간’)을 만들어서 돈 많은 공산당 공무원들에게 팔아먹는 무시무시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소장이 공산당 간부들 중에서도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얼마 전에 잡혀 갔고, 곧 사형당할 것 같아 연구원이 자기 목숨만큼이라도 부지하고자 그 연구소가 존재했다는 증거와 몇 메롱 인간들을 챙겨서 보트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사장은 거기에서 골칫덩어리 센터를 꼭 닮은 메롱 인간을 보고, 얘를 데려가 진짜 센터 대타로 세우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연구원을 대충 도와주다가 국정원에 신고하고, 센터를 닮은 메롱 인간을 빼돌린다. 진짜 센터는 회사 지하실에 감금시키고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넣어 연명시키되, 메롱 인간에게 노래와 안무를 가르친다. 메롱 인간은 지능이 떨어져서 한국어도 어눌했고 안무나 노래는 틀리기 일쑤였지만 적어도 성격만큼은 순하디 순했다. 놀라운 건 메롱 인간을 만난 진짜 센터의 가족들도 자신들이 만난 게 자기 가족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못 알아봤다는 것. 다만 원래 센터의 지독한 사생팬, 딱 한 명만이 ‘대인기인 연예인이 그를 닮은 짝퉁 인간으로 대체되었다’라는 거짓말 같은 사실을 간파한다.

정말 기막힌 발상 아닌가. 너무너무 흥미롭고 ‘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눈을 빛내며 읽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게 놀랍게도 첫 번째 장(章)에서 이미 밝혀지는 내용이다. 이 책에는 총 15개의 장이 있는데 각각 다른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시점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고백’한다. 문제는, 15개 장에서 최소한 첫 10개 장 정도는 방금 내가 요약 정리한 이 내용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앞에서 이미 여러 번 들어서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니 새로운 내용도 없고, 지겹기만 하다.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사건이 묘사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같은 얘기를 서술자만 바꾸어서 조금씩 다르게 하다가 마지막 두세 장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급하게 전개되더니 끝나 버린다. 그러지 말고 이야기 진도를 잘 나눠서 한 사람이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어 진행하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예컨대 나라면 사장이 자신의 망해 가는 연예 기획사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고 답답한 마음에 바닷가를 가는 데까지 이야기를 진행시킨 후, 그다음 그 기획사의 매니저가 바통을 받아 사장이 어떻게 연구소 사장의 입을 통해 내막을 듣게 해서 독자가 미심쩍은 경악감을 느끼게 하겠다. 그러고 나서는 사생팬의 입장에서 자신이 따라다니는 ‘오빠’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독자의 관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센터 아이돌의 입장에서 이제 지하실에 갇혀 분통을 터뜨리다가 사생팬을 구슬려 자신의 탈출을 돕게 만드는 장면을 보여 줄 수도 있다.

이야기의 페이스를 적당히 밀고 당기고 하며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점 외에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이게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글에는 대화체가 하나도 안 나온다. 내가 위에 ‘들어가기 #2’에서 ‘말하기’와 ‘보여 주기’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네이트 판에 글을 올려도 자기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상대와 나눈 대화를 짤막하게라도 보여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그런 대화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을 그냥 줄글로 설명한다. 이건 뭐, ‘음슴체’ 글에서 말 어미만 바꾼 것 같다. 예컨대, 이런 묘사가 있다.

그놈을 복제한 메롱 인간을 서울로 데려와서 대화를 해 보니 상태가 정말 좀 메롱이긴 하더라. 한국어도 잘 못하고 애가 좀 맹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데뷔를 시켜 달라고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던 그놈처럼 애가 착하고 순하고 천사 같았다. (…)

이걸 대화와 각 인물의 표정, 몸짓 등을 ‘보여 줘서’ 독자로 하여금 ‘와, 정말 저 메롱 인간 정말 상태가 메롱이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순 없었을까? 뭐 대략 이런 식으로 말이다.

“너, 노래할 줄 알아? 춤은?” 내가 메롱 인간에게 물었다. ”춤…?” 메롱 인간은 소처럼 크고 맑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답답해서 노래해 보라는 뜻으로 마이유크를 건네주었는데 메롱 인간은 어정쩡한 몸짓으로 마이크를 받더니 그냥 꼬옥 쥐고만 있었다. 마치 방금 막 손을 발견한 사람처럼. 내가 “노래할 줄 알아? 춤은 좀 추냐고?” 하고 이번에는 (마치 이러면 그 애가 더 잘 알아듣기라도 할 것처럼) 더 크게 말하며 트위스트 춤을 추는 흉내를 냈더니 그게 우스운지 배시시 웃고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한다. “춤? 춤!” 아, 나 미쳐 버리겠네.

인터넷에 쓰는 글도 아니고 어떻게 소설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하기’로 때워 버리고 정성 들여 ‘보여 주기’는 하나도 안 할 수가 있지? 하, 정말 이 좋은 아이디어를 이렇게밖에 구현을 못한단 말인가. 작가에게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편집자가 노력을 조금도 안 한 것 같다. 정말 이 글을 읽고 완벽하게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고칠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 이걸 그대로 출판한 건가? 아니면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보자고 제안했는데 그 결과가 이 정도인 건가? 바꾸기 전은 어땠길래? 아니면 이런 점을 제안했는데 작가가 거절했나? 출판사가 황금가지던데, 황금가지에 이렇게 쓸만한 편집자가 없나? 음반을 만드는 데 프로듀서의 역량이 큰 영향을 끼치듯이, 책을 만드는 데에도 편집자의 능력이 지극히 중요한 법인데. 정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많은데 답을 들을 방법이 없다.

내 의견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분명히 또 있을 것이고, 또 실력이 좋은 편집자라면 내가 생각한 것 정도는 다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아무래도 좋고, 그냥 이 책의 편집자와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난 술 안 마심) 어떻게 이 책을 편집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나요? 책이란 게 작가 혼자 으쌰으쌰 노력해서 잘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편집자도 책 만드는 데 참여해서 서로 아이디어와 제안을 주고받으며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출판 과정인 건데… 이젠 정말 모르겠다. 이 좋은 아이디어가 이렇게밖에 구현되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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