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시미즈 메리, <블랙 기업의 사원이 고양이가 되어 인생이 바뀐 이야기 1, 2권>
솔직히 이 만화책에 대해 포스트를 쓰기 전에 고민했다. ‘만화책을 읽은 걸 독서 기록에 올려도 되나? 그런 식으로 하면 만화책은 하루에 열 권도 읽을 수 있는데, 읽은 책 권수 늘리려는 속셈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내가 감히 뭐라고 무엇이 ‘바람직한’ 독서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독서인지 게이트키핑(gatekeeping)한단 말인가. 그냥 각자가 좋아하는 거 읽으면 되지. 나는 그래서 ISBN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 웹사이트에서 검색해서 도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면 다 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자, 그러니 만화책도 책이냐는 논쟁은 이렇게 마무리하겠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빵도 먹어 줘야 하고 면도 먹어 줘야 한다. 나는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늘 보던 장르만 보는 게 아니라, 때로는 안 읽어 본 장르도 시도해 볼 수 있고, 매번 진지한 것도 읽다가 가끔 가벼운 걸 읽으며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다. 시미즈 메리의 <블랙 기업의 사원이 고양이가 되어 인생이 바뀐 이야기>는 그렇게 입가심이 필요할 때 읽어 볼 만한 아주 사랑스러운 힐링 도서이다.
<걸리버 여행기>부터 이어져 온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문장형 제목’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각 권 맨 앞에 ‘프롤로그’식으로 이번 권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간단히 몇 쪽으로 정리해서 미리 알려 주기까지 한다. 1권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모후타라는 블랙 기업(’악덕 기업’이라는 뜻의 일본식 표현)의 사원은 “야근수당도 안 나오는 회사에서 14시간 근무를 연일 계속하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고양이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당황했지만 블랙 기업의 사원으로서 ‘학습된 무기력감’을 느꼈기에 상사에게 연락한다. 상사는 고양이가 됐다는 게 무슨 헛소리냐며 납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출근하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 크기의 고양이가 된 모후타가 정말로 출근했더니 상사는 놀랐고, 어쨌든 고양이가 되어도 일은 했다. 다소 카프카스러운 이 설정은 급작스럽지만 다행히도 모후타는 “트위터 등에서 유명해”져 “회사의 마스코트로 정중히 다루어졌고 흐리멍덩하니 탁한 눈을 했던 사원들은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나의 지명도와 함께 유명해진 회사는 실적이 쑥쑥 올라 악덕 회사는 복리후생이 좋아지고 급여도 개선돼 완전 클린해졌다.” 게다가 모후타는 사장의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이게 4쪽짜리 ‘프롤로그’에서 요약해 준 1권의 내용이다. ‘자, 배드 엔딩은 없으니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이 고양이(들)의 귀여움을 즐기세요!’라고 독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인 듯하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내용은 정말로 프롤로그에서 요약한대로다. 모후타는 회사 내에서 귀여움을 받고(때로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부장님으로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회사는 조금씩 개선된다. 모후타를 비롯해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듯하다. 이렇게저렇게 귀여운 장면들이 많은데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으니 참겠다. 하지만 정말정말 귀엽다!! 인터넷에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나 동영상이 하도 많아서 인터넷은 고양이가 지배한다는 농담도 있지만 이 만화책은 고양이가 지배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괜찮다. 귀여우니까. 고양이를 실제로 키우지 않더라도 (또는 못하더라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책으로 대리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고양이 사진은 좋아하는데 이걸 보면서 정말 영혼까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2권에는 모후타처럼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로 변해 버린 ‘스코 군’의 이야기가 조금 더 다루어지는데 (1권부터 등장하긴 한다) 이것도 나름대로 감동적인 포인트가 있달까. 읽어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것이다.
1권 뒤에 부록으로 딸린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이 만화는 사실 정식 만화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고양이가 된 회사원 만화’를 그려 트위터에 올렸는데 이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고, 여러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 제의까지 받게 된 것이다. 정말 인생 한 방… 물론 귀여운 고양이의 매력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얻은 건 요즘 일본인들도 힐링이 필요하다고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전 세계가 다 같이 살기 힘들어진 것도 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어쨌거나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지고 온갖 귀여움이 가득한 ‘치유계’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면 시미즈 메리의 <블랙 기업의 사원이 고양이가 되어 인생이 바뀐 이야기>를 추천한다. 아무렴 오늘도 수고한 당신이 30분의 힐링도 누릴 자격이 없겠는가. 모후타의 사랑스러움으로 마음을 달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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