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홍만춘, <웰컴 투 패닉 에어포트>
‘공황 장애’를 가진 ‘공항’ 지상직 직원의 에세이. 저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가 극심해진 경우인데, 공항에서 공황 발작을 보인 적도 있지만 어찌어찌 견디며 밥벌이를 하고 있었건만 코로나19 때문에 공항에서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도 그래픽 디자이너로 재취업에 성공. 이건 그런 그녀가 공항에서 웃고, 울고, 공황 증세를 보이고, 잘리고, 그 이후에 또 살아나간 이야기이다.
저자는 처음엔 자신이 공황 장애를 겪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한 테스트를 해 보고 나서야 자신이 느끼는 ‘월요병’이 사실 공황 장애임을 알았고,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 난 공황이 공황인지도 몰랐고 불안이 불안인지도 몰랐다. 매일이 불안하고 너무 불안해진 나머지 까무러칠 정도가 되었지만 그게 내 정신 상태 때문에 까무러치는 것인지 아니면 내 건강 상태가 너무나 연약한 나머지 주기적으로 119구급 대원들을 괴롭히지 않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는 지경이 된 것인지는 몰랐다. 그러니까, 난 그게 월요병인 줄 알았다. 남들은 1주일에 하루 오지만 나한테는 1주일에 7일 오는 변이 월요병. 나는 매일매일을 내일이 월요일인 것처럼 살았는데, 내가 공황장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인터넷에 있는 한 테스트를 해보고 나서였다.
고대 하와이안들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는 책, 미움받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책, 고민이 많아서 고민인 당신을 바꿔주겠다는 책 등등 불안 증세를 잠재우기 위해 그럴듯해 보이는 건 다 읽어보았고 그냥 일기, 감사 일기, 별의별 일기란 일기는 다 써보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이 했다던 무슨 무슨 말, 스티브 잡스가 무슨 무슨 강연에서 했다던 말, 명언이란 명언은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수집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새벽이면 새벽이라고, 출근이면 출근이라고, 쉬는 날이면 다음날 출근이라고 끝끝내 서글퍼지고 불안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월요병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 발로 정신건강의학과라 불리는 곳에 찾아가는 날이 그리 먼 훗날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에도 그랬다.
‘불안장애의 일종인 우울증을 포함한 공황장애.’
이것이 내 병명이었다. 오. 왠지 모르게 힙하고 멋있어 보이는 예술가가 된 것만 같았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공황장애 하나쯤은 앓고 있어 줘야지.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예술가가 아닌 일개 서비스업 종사자였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일개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공황장애란, 몰려오는 승객들을 보며 프로페셔널한 안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어, 보다는 일순간에 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도망을 생각하고,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무력감에 몸부림치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결국은 파괴해 버리고야 마는 종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직장이 돼버린 공항 특유의 낯선 냄새는 불안을 일깨우는 촉진제가 되었고 미로 같은 길은 게이트 위치를 헷갈리게 만들어 안 그래도 혼날 일 많은 신입 홍만춘의 기를 푹 꺾어 놓았으며, 오지게 비싼데 그렇다고 엄청 맛있는 것도 아닌 식당 밥은 내 주머니 사정과 입맛을 동시에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공황 발작을 묘사하지만, 이조차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글이 술술 읽히니 내용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공황 장애가 무엇인지도 배우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참 좋았다.
당시 나는 이상하게 뭐라도 씐 것마냥 교대역 근처만 가면 픽픽 쓰러져대기 일쑤였고 교대역 역무실 내 직원용 휴게실을 내 단골 휴게실처럼 들락날락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공황이 오면 온 정신을 부여잡고 죽을 것 같은 압박감을 참고 견디다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면 한 마리의 네발짐승이 되어 밖으로 기어나가 개찰구 근처에 드러누웠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역무실에 전화도 해주고, 아가씨 술 많이 드셨냐며 친절하게 말도 걸어줬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물병이 쥐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공항에서 근무하다 보면 비행기라는 특수한 매개체 때문에 공황장애가 두드러지는 사람을 더러 볼 수 있다. 공황발작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일단 죽을 것 같은 압박감과 함께 한 바가지의 식은땀이 나고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착각이 일고(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 본 적은 없지만 피가 빠져나간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그런’ 느낌인 것이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심장이 세차게 뛰며 구토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 과호흡 때문에 손발이 굳을 때도 있다. 나는 처음에 이게 공황발작인지 몰라서 심장 검사를 받아보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아주 얄미운 병인 게 뭐냐면 진짜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응급실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홀랑 나아 버린다. 구급차라도 타는 날엔 베드에 누워 멀뚱멀뚱 응급실로 옮겨지는 게 수치스러워서 더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헐레벌떡 달려온 간호사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멋쩍은 웃음으로는 커버가 안 된다. 하루는 검사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이래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약간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교수님이라 불리는 두 분이 오셔서 다음에 내원해서 심장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백화점이나 지하철 같이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말라고도 하시기에 예, 예, 하고 대답한 뒤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지극히 멀쩡한 채였다.
또 공황발작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공항에서 발작 때문에 쓰러져본 적은 없었다. 지하철도 평소엔 괜찮지만, 출퇴근길 지하철은 조금 힘들다. 최근에도 괜찮겠지 싶어 퇴근길 9호선 급행 라인을 탔다가 심박수가 190까지 치솟고 또다시 네발짐승이 되어 계단을 기어오른 적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와, 이 정도면 심박수 몇일까? 하고 궁금해서 애플워치를 눌러보게 되는 것은 스마트워치의 좋은 점일까 나쁜 점일까.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확인하고 나면, 보나 안 보나 내 심박수는 변함이 없는데 뭐하러 봤나 싶기도 하고 그거 눌러 볼 시간에 숨이라도 한 번 더 고르겠다 싶다가도 다음이 되면 어김없이 스마트워치를 눌러보게 되는 건 변함이 없었다. 계단을 기어 올라가 신선한 공기를 쐬니 공황은 좀 괜찮아졌지만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은 채였다. 왜 남들 다 타는 지하철이 나는 이렇게 힘들까? 비행기, 지하철 등은 너무나 편리하고 좋은 교통수단이지만 공황장애가 있어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누리지 못하는 동지들, 약을 먹어도 언제 나아질지 알 수 없어 오늘도 답답함을 호소할 많은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이 책의 미덕이라 한다면, 공황 장애를 겪지 않은 이라 하더라도 저자의 삶에 공감할 만한 부분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하기 싫은 마음이나 소중한 사람(저자의 경우 어머니)을 잃은 슬픔 같은 것. 일례로,
그래도 나는 주인님께 계약서를 바친 노비이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한다. 월급은 공황도 이긴다.
이 문장을 보고 공감하지 않을 현대인이 있을까? 🥲
아니면, 사랑니를 발치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 일을 쓴 꼭지는 어떤가.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구강 검진을 받게 되었고 사랑니가 썩었으니 뽑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문득 사랑니의 일본어 뜻인 ‘오야시라즈(親知らず)’ 가 궁금해졌다. 오야시라즈는 직역하자면 ‘부모님이 모르는’ 정도의 뜻이다. 왜 사랑니를 ‘오야시라즈’라고 할까? 우리나라 말인 ‘사랑니’도 첫사랑을 할 때쯤 나는 치아, 또는 첫사랑의 아픔이 사랑니의 통증과 비슷하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오야시라즈’도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려 휴대폰을 들었고, 결과가 나온 화면을 가만 바라보았다.
‘부모님 모르게 자라는 치아.’예전엔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50세 정도라 자녀의 사랑니가 자랄 때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하여 ‘부모님 모르게 자라는 치아’라는 의미가 붙었다고 했다.
슬플 때는 다 지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우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거라고. 그런데 너는 아직 나이만 먹었지 전혀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듯 눈물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예전 생각이 났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 책꽂이에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거기엔 차마 우리에게 말하지 못했던 엄마의 수많은 속마음들이 담겨있었다.
‘내가 이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한 번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엄마가 하늘나라에 간 지 꼬박 3년째가 되던 봄, 나는 사랑니를 뽑으며 엄마를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공황 장애에 대한 교육이라든지 의식 고취라는 것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걸 우리가 귀기울여 듣기만 해도 ‘아, 저런 일도 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또 주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이에 조금 더 빨리,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텐데. 인간은 알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는 법이고, 또 무언가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인지에 끼치는 영향력도 크게 마련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중 하나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좀 더 잘 알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가 실제로 내 주위에서 동성애자인 사람을 실제로 안다면 동성애자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될 테니 말이다. 공황 장애든 우울증이든, 그 어떤 장애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책은 자연스럽게 그걸 도와주면서 재미있기까지 하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재미있는 에세이를 찾는 이에게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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